[obituary]
[obituary] 그의 완벽한 존재감은 영원하리니
2015-06-19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크리스토퍼 리(1922~2015)
<슬리피 할로우>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사루만’, <스타워즈> 시리즈의 ‘두쿠 백작’ 크리스토퍼 리가 지난 6월7일 향년 93살로 별세했다. 심부전과 호흡기 질환으로 런던 첼시에 있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으며 결국 호흡곤란과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퍼 리는 195cm에 달하는 거구의 몸으로 1950년대 영국의 해머사가 제작한 공포영화에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로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큰 키에 강렬한 눈빛, 그리고 창백한 표정과 굵직한 음성으로 루마니아 출신 배우 벨라 루고시 이후 최고의 드라큘라 백작이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영화평론가이자 SF소설가인 듀나가 그의 특별한 존재감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영화사에 남는 위대한 배우로 기억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죽는 날까지 전성기의 쿨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지난 6월7일 93살로 작고한 크리스토퍼 프랭크 카란디니 리는 후자의 영역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반세기가 훌쩍 넘어가는 긴 연기 경력 동안 그가 거친 다양한 세대의 관객은 그를 전혀 다른 영화에 나온 전혀 다른 캐릭터로 기억한다. 50년대 관객에게 그는 드라큘라였다. 70년대 관객에게 그는 본드 악당이었다. 21세기의 젊은 관객에게 그는 시스 로드였고 사루만이었다. 비록 그의 과거 영화들이 나이 든 관객의 향수 속에 묻혀도 그는 언제나 새로운 영화와 새로운 캐릭터로 현재의 관객에게 다가갔다.

크리스토퍼 리의 쿨함은 그가 완벽하게 연기한 쿨한 캐릭터들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자연인 크리스토퍼 리는 그가 연기한 어떤 인물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에는 핀란드의 겨울 전쟁에 자원해 싸웠고, 2차대전 때에는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의 전장에 있었고, SAS 요원이었으며, 전후에는 나치 사냥꾼으로 활약했다. 그가 당시 어떤 일을 했는지 우리가 자세히 알 수 없는 것은 그의 활동과 관련된 자료들이 아직까지 기밀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 감독은 사루만이 등에 칼이 찔려 죽는 장면을 연출할 때 그의 과거를 슬쩍 엿볼 기회가 있었다. 잭슨은 리에게 비명을 지르며 죽는 연기를 요구했지만 그는 칼에 찔려 죽는 사람은 결코 그런 소리를 내지 않는다며 그런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정확한 소리를 실연해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크리스토퍼 리는 연기에 도전한다. 처음 10년 동안 그는 다양한 조연 연기로 경력을 이어갔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특히 195cm를 넘는 그의 큰 키는 무대에서 치명적인 핸디캡이었다. 그에게 영화 스타의 문을 열어준 것은 해머 영화사였다. 1957년작 <프랑켄슈타인의 저주>에서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이름 없는 괴물을 연기하면서 그와 이 호러영화 전문 제작사와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연기한 피터 쿠싱과 그가 본격적으로 합을 맞춘 영화이기도 했다(그들이 처음으로 같이 출연한 영화는 로렌스 올리비에의 1948년작인 <햄릿>이었지만 둘이 만나는 장면은 없었다). 이후 그들은 <바스커빌가의 사냥개> <미라> <고르곤> <스컬> <호러 익스프레스> 같은 섬뜩한 제목을 가진 22편의 영화에서 함께 공연한다.

그에게 불멸의 명성을 안겨준 작품은 다음해에 나온 <드라큘라>(1958)였다. 그가 연기한 뱀파이어는 모든 면에서 벨라 루고시의 드라큘라와 정반대의 존재였다. 가냘프고 작았던 루고시와 달리 그는 크고 건장했다. 이국적이고 시적이었던 루고시와 달리 그는 사무적이고 현실적이고 이성적이었지만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피에 굶주린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가 피묻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등장하는 첫 번째 장면을 본 관객은 그가 그들 시대의 드라큘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속편들은 점점 질이 떨어져갔고 그는 이렇게 많은 드라큘라 영화에 출연했던 것을 후회하게 된다.

대규모 영화의 주연을 맡고 고액의 출연료를 챙기는 배우를 일급 스타로 분류한다면, 크리스토퍼 리는 그런 의미의 일급 스타인 적이 없었다. 그가 주연을 맡은 해머의 호러영화는 대부분 저예산이었다. 그의 큰 키와 위압적인 베이스 바리톤은 주인공보다는 최종 보스 악역이나 인상적인 조연쪽에 더 어울렸다. 그는 TV와 영화를 오가며 미치광이 과학자, 악마, 슈퍼히어로물의 악당, 이집트 왕, 셜록 홈스, 셜록 홈스의 형인 마이크로프트 홈스(그는 영화에서 이 두 역할을 모두 연기한 유일한 배우이다), 유보트 선장, 라스푸틴, 푸만추, 그리스신화의 예언자와 같은 역할들을 연기했는데, IMDb에 실린 작품들만 모아도 278편에 달한다. 이들 상당수는 말도 안 되는 캐릭터, 설정, 대사들의 조합에 불과했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는 완벽한 존재감과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이를 극복했다. 그는 영화의 장르뿐만 아니라 국적도 가리지 않았는데,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스웨덴어까지 포함하는 초인적인 외국어 실력이 여기에 큰 도움을 주었다. 무명 시절에 갈고닦았던 펜싱 실력 덕택에 그는 심지어 에롤 플린보다 더 많은 검투 장면을 찍은 배우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이 시기의 작품 중 우리가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것은 두편이다. 하나는 그의 먼 친척이었던 이언 플레밍 원작의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1974)로, 그는 이 로저 무어 주연의 007 영화에서 타이틀롤인 악당 프란시스코 스카라망가를 연기한다. 다른 하나는 최근에 복원판이 발견된 앤서니 셰퍼의 컬트호러영화 <위커맨>(1973)으로 그가 연기하는 서머아일 경은 마을의 이교 신앙을 이끄는 교주이다. 이외에도 그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호스트로 깜짝 성공을 거두기도 했고 영국과 파키스탄 합작영화인 <지나>(1998)에서 파키스탄의 건국영웅인 무하마드 알리 지나를 연기하기도 한다. 이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만들어질 당시에는 드라큘라 전문 배우가 건국 영웅을 연기한다는 이유로 말이 많았지만, 지나는 리가 가장 애착을 갖고 연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록버스터 시대가 오자,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의 감독들이 마치 세례라도 받으려는 것처럼 크리스토퍼 리의 존재감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팀 버튼은 그의 새 영화 여기저기에 그를 일종의 오마주처럼 삽입했고,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그를 악역인 두쿠 백작으로 캐스팅했으며, 피터 잭슨은 그를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사루만으로 캐스팅했다. 사루만 역 덕택에 단 한번도 그의 <드라큘라> 영화를 보지 못한 수많은 젊은 관객이 그의 새로운 팬이 되었지만, 톨킨을 직접 만난 적 있는, 평생에 걸친 <반지의 제왕> 팬이었으며 늘 간달프를 연기하길 꿈꾸었던 리는 조금 아쉬웠을 것이다.

오페라 가수 마리 카란디니의 후손이었던 리는 그 자신이 재능 있는 가수이기도 했다. 전설적인테너 유시 비올링으로부터 제자로 들어오라는 제의를 받았던 그가 정말 오페라 가수의 길을 갔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그는 결국 배우로 남았지만 말년에 모계 조상인 샤를마뉴 대제를 테마로 한 메탈 앨범을 내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가 2014년에 낸 헤비메탈 크리스마스 앨범은 전천후 연예인이었던 크리스토퍼 리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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