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배드시티’에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니는 뱀파이어 소녀(세일라 밴드)가 있다. 살풍경한 도시의 밤을 배경으로 검은 히잡을 둘러쓴 채 느릿느릿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은 자못 살벌하다. 마약에 중독되고 여성을 착취하는 남성들을 응징하는 모습은 하드코어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히잡을 벗으면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라이오넬 리치의 노래를 듣는 평범한 소녀인 그녀는, 도시에서 유일하게 타락하지 않은 남자(아라쉬 마란디)와 사랑에 빠진다.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는 여러 장르가 혼합된 스타일리시한 영화다. 흑백 화면의 묵직한 음영, 느리지만 강렬한 카메라 트래킹은 독일 표현주의의 미장센을 떠올리게 하고 음울하고 하드보일드한 무드는 필름누아르의 그것이다. 긴장감이 흐르는 사운드트랙에서는 <황야의 무법자>(1964)를 위시한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들의 향취가 느껴지며, 기묘하게 정적이고 미니멀한 화면은 짐 자무시의 초기작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스타일리시한 뱀파이어 소녀의 패션과 트렌디한 음악 플레이리스트는 동시대를 사는 젊은 감독의 작품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지점이다. 히잡과 스케이트보드로 대변되는 이질적인 요소들의 믹스 앤드 매치는 독특한 키치의 맛을 낸다. 클래식하지만 현대적이고 무겁지만 장난스러운 작품으로, 힙스터들의 구미를 충분히 당길 만하다.
스타일에서 눈을 돌려 서사를 보면 흔한 뱀파이어 로맨스의 전형이다. 숙명적 비극의 전조가 감도는 가운데, 영화는 예상 가능한 결말로 흘러간다. 영화는 서사와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대신 미장센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대사가 최대한 절제된 가운데, 이미지들이 서사를 전개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뱀파이어 소녀 역을 맡은 배우 세일라 밴드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빨려들 듯한 검은 눈동자와 완고하게 다문 입술. 눈빛만으로 공포와 고독과 로맨스의 무드를 연출하는 그녀는 그 자체로 이 영화의 미장센이 된다. 빈약하고 관습적인 서사는 아쉽지만 스타일로 압도하는 작품이다. 2014년 시체스영화제에서 특별언급상과 주목받는 감독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