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마크 월버그] 문제의 남자
2015-06-30
글 : 장영엽 (편집장)
<⑲곰 테드> 마크 월버그
<⑲곰 테드2>

영화 <⑲곰 테드2>(2015)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2014) <론 서바이버>(2013) <⑲곰 테드>(2012) <파이터>(2010) <위 오운 더 나잇>(2007) <디파티드>(2006) <아이 허트 허커비>(2004) <이탈리안 잡>(2003) <혹성탈출>(2001) <더 야드>(2000) <쓰리 킹즈>(1999) <부기 나이트>(1997) <바스켓볼 다이어리>(1995) <르네상스 맨>(1994)

세스 맥팔레인의 <⑲곰 테드> 시리즈 같은 작품에 출연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F워드와 정치적, 윤리적, 성적으로 아슬아슬한 수위를 오가는 금기의 대사, 약쟁이 이미지는 기본이다. 거기에 얼굴에 정액을 뒤집어쓰거나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미식축구 선수 톰 브래디의 ‘그곳’을 마치 금은보화를 발견한 듯 황홀한 표정으로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주인공은 곰돌이다. 동심의 얼굴을 하고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는 이 곰돌이는 문제를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지만 대개 관대하게 용서받는다. 귀엽기 때문이다(<⑲곰 테드>에서 테드가 무슨 짓을 해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결국 이 영화의 위험한 수위와 신랄한 유머에 대한 부담감은 곰돌이와 ‘영원한 우정’을 맹세한 그의 영원한 친구, 존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 <⑲곰 테드> 시리즈에서 존을 연기하는 마크 월버그가 느껴야 할 부담감이란 바로 그런 것일 거다.

그런데 이 시리즈를 통해 마크 월버그가 감수해야 할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존이라는 인물의 면면은 배우 자신에겐 떠올리고 싶지 않을 수도 있을, 문제 많은 과거를 상기하게 한다. 보스턴 출신, 블루칼라 계층, 약물, 기행. 존을 둘러싼 이 모든 키워드가 80년대 10대 소년이었던 마크 월버그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열세살에 이미 코카인 중독자였고, 열여섯살 되던 해에는 한 베트남계 미국인을 죽기 일보 직전까지 때려 한쪽 눈을 실명케 한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까 <⑲곰 테드> 시리즈에서 마크 월버그는 배우가 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의 미래가 되었을지도 모를 한 중년 남자의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배우가 되려면 모든 종류의 다양한 배역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역할로 인해 상처받게 된다 하더라도.” 이 대답이 마크 월버그가 <⑲곰 테드> 시리즈에 출연하게 된 이유에 대한 멋진 버전의 답변이라면, 이 시리즈의 연출자 세스 맥팔레인의 대답은 좀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마크는 게임에 능한 남자다. 그는 프로다. 재밌고 그게 관객에게 먹힌다면, 그는 그게 무엇이든 할 사람이다.” 마크 월버그가 <⑲곰 테드>에 출연하게 된 건 먼저 이 영화에 먼저 합류한 배우 밀라 쿠니스의 추천 때문만은 아니었다. 감독 세스 맥팔레인의 인기 드라마 <패밀리 가이>를 보지 못했던 그는 아이들과 함께 150번째 에피소드를 본 뒤 맥팔레인의 세계에 매료됐다고 말한다. “아기 기저귀에 묻어 있던 똥을 개가 먹고 있었다. (중략) 이 모든 미친 짓들이 그 드라마에서 벌어지고 있었고 아내가 내 웃음소리를 듣고 옆방에서 오더니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거 애들이랑 같이 봤냐고. 아내가 화를 내고 떠난 뒤 아이들과 나는 ‘그래, 우리 이거 또 보자’라고 말했다. 그건 정말이지 우스꽝스러운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귀엽고 순수한 존재로 인식되는 캐릭터들을 절대 그대로 내버려두는 법이 없는 세스 맥팔레인의 심술궂고 재기 넘치는 유머에서 마크 월버그는 할리우드 코미디영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어떤 신선한 기운을 느꼈나보다. 그렇게 그는 <⑲곰 테드>에 출연하게 되었고 6월25일에 국내 개봉한 속편 <⑲곰 테드2>의 출연을 결정짓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되바라진 절친, 테드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여자친구 로라(밀라 쿠니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존이 마침내 방황을 끝내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며 <⑲곰 테드>는 마무리되었지만, 이 영화의 속편인 <⑲곰 테드2>에서 존은 다시금 성장하지 못한 어른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약’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끝내 이해하지 못한 아내와 갈라선 뒤, 존은 하드코어 포르노를 벗삼아 외롭게 살아가지만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테드를 도우며 그 역시 활력을 되찾아간다. 지난 1편에서 존의 여정이 테드와 로라 사이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었다면 <⑲곰 테드2>에서 그의 목표는 ‘물건’으로 분류되어 모든 인간적 권리를 잃어버린 친구 테드의 정체성을 찾는 걸 돕는 것이다. 1편보다 진지한 테마와 소재로 무장했지만, 세스 맥팔레인의 세계에 놓인 이들의 여정이 순탄할 리는 없다. 특히 테드를 위해 자신의 정자를 기증하러 간 존이 실수로 정자보관실에 있던 수많은 정액을 뒤집어쓰는 장면은 압권이다. “(시나리오를) 정자은행 부분까지 읽고 미친 듯이 웃었다. 잘못된 결과까지도 너무 웃겼으니까. 그러다 갑자기 나는 깨달았다. ‘아, 이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구나. 내가 존이구나. 이런 젠장!’” 도대체 이런 일을 지금 여기서 왜 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얼빠진 표정은 <⑲곰 테드> 시리즈에서 존 베넷(마크 월버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남을 듯하다. 몇몇 시퀀스는 정치적으로 다소 논란의 여지가 되리라 짐작할 만큼 세지만, 마크 월버그의 ‘당하는 유머’를 누리는 즐거움만큼은 이번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사실 마크 월버그는 코미디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인물은 아니다. <⑲곰 테드> 시리즈를 제외하면 20여년간 그가 쌓아온 필모그래피에서 코미디영화란 데이비드 O. 러셀의 <아이 허트 허커비>, <데이트 나이트>(2010), <디 아더 가이스>(2010) 정도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의 존재감은 거칠고 비열한 남자들의 세계에서 더 찬란하게 빛났다. 가족을 짐덩이처럼 안고 있는 <파이터>의 한물간 복서, <디파티드>의 비열하고 냉철한 형사 디그냄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나는 터프한 동네에서 자랐고, 터프가이를 연기하는 건 멋진 일이다”라고 말하는 마크 월버그가 본질적으로 끌리는 건 “나쁜 남자”들이다. ‘나쁜 남자’에 끌린다는 그의 말은 단순히 악인을 일컫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했고, 그것을 가질 환경이 뒷받침되지도 못했으며, 자신이 빠진 시궁창에서 스스로 빠져나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남자들. 마크 월버그가 연기해온 그 ‘남자들’은 무엇이든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아메리칸 드림’의 뒤틀린 얼굴들이다. 보스턴 빈민가 출신으로 뮤지션(마키 마크 앤 더 펑키 번치), 모델을 거쳐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다시 말해 스스로 ‘아메리칸드림’을 일궈낸 마크 월버그가 아직도 그 꿈을 이루지 못한 결함 있는 인물들에게 더 끌린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의 필모그래피와 경력을 생각하면, 뭇 할리우드 스타들이 한번쯤은 도전하곤 한다는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물에 마크 월버그가 한번도 출연하지 않았다는 점은 의문이다. 뉴욕 코미콘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⑲곰 테드2>의 촬영 경험에 대해서도, 마크 월버그는 이 모든 것들이 “낯설고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쫄쫄이 코스튬보다는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에서처럼 직접 총을 들고 CG 캐릭터들을 상대하는 편이 더 낫다고 믿는 이 남자는 앞으로도 당분간은 현실세계를 벗어날 생각이 없다. 미국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로 평가받는 2010년의 멕시코만 일대 유조선 폭파 사고를 다룬 <딥워터 호라이즌>이 그의 차기작이니까.

<⑲곰 테드>

약물중독자 캐스팅 1순위?

영화 속 캐릭터로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려고 하는 것인지, 혹은 할리우드 캐스팅 디렉터들이 그의 전적을 참고했기 때문인지, 마크 월버그는 약물중독과 관련된 영화들에 끊임없이 출연해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출연했던 <바스켓볼 다이어리>, 한때 약물중독자였던 복서 미키 워드로 출연했던 <파이터>, 아예 대놓고 수많은 약을 탐닉하는 남자로 분한 <⑲곰 테드> 시리즈 등이 있을 것이다. 특히 <⑲곰 테드2>에서 정액을 뒤집어쓰는 장면과 더불어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약에 취한 마크 월버그가 벽을 짚고 거의 기어다니다시피하는 대목이다. 마치 자신이 옥상 난간에라도 매달린 듯 벽에 붙어 괴성을 지르며 힘겹게 발걸음을 떼는 존의 모습을 연기하는 마크 월버그는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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