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나의 절친 악당들>(2015) 소품 <열한시>(2013), <돈의 맛>(2012) 푸드 <하녀>(2010) 푸드 스타일링, 테이블 세팅 <그때 그사람들>(2004)
<하녀>(2010)의 푸드, <돈의 맛>(2012)의 소품, <나의 절친 악당들>(2015)의 미술. 필모그래피만 보면 도통 종잡을 수 없는 행보다. 유진경 미술감독은 얼마 전까지 푸드 스타일리스트였다. 방송, 광고, 잡지 등 여러 매체에서 소개하는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세팅하는 게 그녀가 해온 일이다. 푸드 스타일리스트로서 참여한 <그때 그사람들>(2004)이 첫 영화 작업이자 임상수 감독과 처음 맺은 인연이다. 영화의 후반부, 궁정동 안가 총격 시퀀스에서 최후의 만찬으로 올라간 로브스터 요리가 그녀의 작품이었다. “검은색 접시에 로브스터 요리를 올렸다. 당시 아무나 먹을 수 없는 음식이기도 하고, 로브스터의 붉은색이 피를 상징하기도 해서 직접 요리해 세팅했다.” 독특하고, 새로운 해석이 임상수 감독의 마음에 쏙 들었나 보다. 이후, 그녀는 <하녀>에서 상류층 대저택의 테이블을 세팅했고, <돈의 맛>에서는 소품을 도맡았으며, <나의 절친 악당들>에서는 미술감독으로 데뷔했다.
대학 때 전공은 피아노. 미술 전공자가 아닌 데다가 영화 미술팀에서 일한 경력이 없는 까닭일까. <나의 절친 악당들>에 등장하는 주요 공간은 과감하다. 벽을 허물고, 벽 여기저기에 그래피티가 그려진 나미(고준희)의 집은 자유분방하면서도 외로운 나미를 상징한다.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줄곧 혼자 자란 나미의 외로움과 세상에 대한 증오심을 실외와 실내를 구분해 표현했다. 집 외벽엔 페인트를 집어던진 흔적이나 ‘주먹 쥐고 일어서’ 같은 문구로 채워넣었고, 집 안은 그래피티 작가와 함께 벽 여기저기를 그래피티로 채웠다.” 돈과 권력을 모두 갖춘 회장(김주혁)의 저택에 전시된 명화도 눈에 띈다. 대부분 신흥우 화백의 그림이라고 한다. “회장의 저택은 운동도 할 수 있고, 밥도 먹을 수 있고, 섹스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제멋대로인 공간이다.” 불법 환전소인 음부키(양익준)의 호랑이 소굴도 일반적인 환전소와 다르다. “음부키가 아프리카 출신의 불법노동자들을 등치는 상황에서 착안해 음침한 소굴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벽에는 아프리카 문양이 새겨진 패브릭을 걸었다.”
촬영 전, 임상수 감독이 미술감독을 제안했을 때 그녀는 “미술감독은 아무나 하냐”며 손사래를 쳤다. 한 작품을 무사히 끝낸 지금은 피아노 교습 강사, 피아노 연주자, 푸드 스타일리스트 등 다양한 사회 경험이 영화 미술에 많은 도움을 주리라 기대하고 있다. “공간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것만큼 좀더 새롭고, 독특하게 해석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그런 공간 설계를 시도하고 싶다”는 게 바람이다.
꼬챙이와 분무기
푸드 스타일리스트이기도 한 유진경 미술감독이 항상 가지고 다니는 꼬챙이와 분무기. 음식을 그릇에 담은 뒤 모양을 아름답게 다듬고,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게 하기 위해 가니시(곁들이는 음식)를 올리는 데 꼭 필요하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