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 JSA> 관람과 GV를 위해 관을 가득 메운 160여명의 관객. 폭우를 뚫고 파주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그들의 열정이 뜨겁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와 배우 송강호가 <공동경비구역 JSA>의 주연 송강호, 이병헌, 김태우, 신하균 사진이 커버로 실린 2000년 발행된 <씨네21> 제296호를 들어보이고 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네 배우가 이런 포즈로 사진을 찍던 시절이 있었다”는 심재명 대표의 말.
명필름 영화관 앞에 전작들의 스틸 사진과 포스터, 소품, <씨네21>을 비롯한 오래된 영화잡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건축학개론>(2012)의 ‘GEUSS’ 티셔츠를 비롯해 이제훈, 수지, 조정석이 입었던 의상도 전시되어 있으니 놓치지 말 것.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영화사 명필름의 ‘명필름 전작전: 스무살의 기억’ 영화제가 시작됐다. 이번 전작전은 8개의 섹션을 통해 명필름이 제공, 제작한 36개의 작품을 상영하는 영화제. 7월25일, 영화제의 두 번째 날은 이른바 ‘송강호 Day’였다. 이날 송강호가 출연한 명필름의 세 영화 <YMCA 야구단>(2002), <공동경비구역 JSA>(2000), <조용한 가족>(1998)이 상영됐으며, <공동경비구역 JSA> 상영 이후엔 배우 송강호의 GV가 진행됐다.
모더레이터로 나선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올해는 명필름 20주년인 동시에 송강호의 배우 인생 20주년이기도 하다”라며 배우 송강호를 소개했다. 송강호는 “첫 GV를 맡게 되어 영광이다. 전작전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첫 번째로 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신 걸 보니 떨린다. (웃음)”며 GV에 참석한 소회를 밝혔다. 7월24일 시작한 명필름 전작전은 9월16일까지 계속되며, 배우 문소리, 박원상, 이제훈, 수지와 임상수, 김지운, 김현석 감독 등 17명의 감독들, 정성일 평론가와 주성철 <씨네21> 편집장을 비롯한 비평가들과의 대화가 마련되어 있다. 자세한 일정은 명필름 아트센터 홈페이지(mf-art.kr)를 참조할 것.
심재명_박찬욱 감독은 송강호의 연기를 ‘모더니티’, 즉 한국영화 연기의 현대성으로 정의했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 <공동경비구역 JSA> 등 1990년대 한국영화 모너니티의 시작에 배우 송강호가 있더라.
송강호_과찬이다. 한국영화 모더니티의 시작엔 명필름도 함께했다. 명필름의 창립작 <코르셋>(1995)은 신선한 시도였다. 모더니티는 소재주의적인 측면에서 새롭다는 것이 아니라 관점의 새로움을 말하는 것이다. 명필름이 영화를 만드는 관점과 태도는 늘 나에게 자극이 됐다.
심재명_초기 작품을 할 무렵 송강호는 촬영 후에도 제작사와 편집실, 사운드 믹싱실에 자주 나타나는 열정적인 배우였다. 마케팅팀에 와서 예고편 시안 선택을 도와주기도 했고, 편집실에 편집감독보다 먼저 와서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파전 등 음식을 사와서 나눠주고 한쪽에서 묵묵히 지켜보다, 의견을 구하면 좋은 아이디어를 줬다. <공동경비구역 JSA> 사운드 마스터링 때, 마지막 초소 총격 신에서 이수혁(이병헌)이 총을 겨눌 때 묵음 처리한 것도 송강호가 제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더 센 장면이 됐다.
송강호_요즘엔 그렇게 못한다. (웃음) 그때는 영화작업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GV 대기하면서 마지막 부분 음악을 들었는데, 당시 찾아갔던 사운드 믹싱실에서 마지막 엔딩 신을 봤던 감동이 떠오르더라.
심재명_송강호는 리딩을 못하는 배우로 유명하다는 얘기가 있다. 읽는 행위만으론 그 인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고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15년 전 <씨네21>과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크랭크인 전 판문점 견학을 갔을 때 망원경을 통해 북한군을 바라본 순간 오경필이라는 인물을 알 것 같았다고 답했는데.
송강호_실제로 판문점에 가니 벅차더라. 망원경을 통해 18살 정도된 듯한 앳되고 통통한 북한군과 눈이 마주쳤다. 그 모습을 보고 오경필이라는 인물이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살아가는 데 중요한 건 이념이나 제도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영화이지 않나. 거기서 나와 눈이 마주친 북한군 형사도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재명_<공동경비구역 JSA>는 배우들이 만든 장면이 많다. 마지막에 헤어질 때 구두약을 꺼내는 신에서, 서랍이 아닌 액자 뒤에서 꺼내는 게 어떻냐고 먼저 제안하지 않았나.
송강호_최전선에서 몰래 만나는 상황인데 선물을 눈에 잘 띄는 서랍에서 꺼내는 건 조심성이 없어 보일 것 같았다. 액자 뒤 같은 경우가 그들만이 아는 공간 아닌가. 즉석에서 제안했고 박찬욱 감독도 좋아했다.
심재명_이제 관객의 질문을 받겠다.
관객1_감독을 지망하는 데 모두가 말린다. 배우 송강호도 그런 일을 겪었나.
송강호_나는 경상도 김해 출신이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그 동네에 TV가 거의 없었다. 거기선 연극영화과라는 말 자체를 처음 들어봤을 거다. 고등학생 때 원서 쓸 당시 연극영화과를 접수하려고 하니, 학교 사무실에 근무하는 분이 벌레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원서를 줬던 기억이 난다. 당시 배우라는 직업은 잘생긴 사람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내가 배우를 한다는 것은 주변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배우로서 성공하기 힘든 조건을 가졌는데도 잘된 이유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객2_연기하기 어려웠던 캐릭터가 있나. 그럴 땐 어떤 노력을 하는가.
송강호_전형적인 대답이지만 매번 힘들다. 처음 밝히는 것인데, 개봉 전인 <사도>라는 작품을 앞두고 몰래 합숙소 같은 데로 2박3일간 연습을 갔다. 그리고 연습 안 한 것처럼 촬영하고. 매번 그렇게 노력해도 힘들고 어렵다. 재능도 필요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좋은 연기를 만든다. 오늘 정말 비밀을 얘기한 거다. <사도>팀 아무도 모른다. (웃음)
관객3_다시 한번 연기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송강호_<공동경비구역 JSA>. 해당 작품 GV라 하는 말이 아니다. 이병헌, 김태우, 신하균, 이영애 같은 좋은 친구들과 즐겁게 작업했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친구들과 다시 한번 함께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지금도 그런 꿈을 꾸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