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음악처럼 영화처럼 여름나기
2015-08-12
글 : 우혜경 (영화평론가)
제1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국내에 이처럼 색깔이 뚜렷한 영화제가 또 있을까? 음악과 영화, 모두를 즐길 수 있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올해로 제11회를 맞는다. 8월13일부터 6일간 메가박스 제천과 청풍호반무대 등지에서 진행될 이번 영화제에서는 한국 최초의 여성 보컬 그룹 ‘김시스터즈’의 삶을 담은 김대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다방의 푸른 꿈>을 개막작으로, 7개 섹션, 103편의 국내외 음악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다.

국제 경쟁 섹션인 ‘세계 음악영화의 흐름’에서는 노르웨이를 비롯한 중국, 대만, 터키 등 여러 국가에서 초청된 6편의 극영화와 1편의 다큐멘터리가 관객을 기다린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소년,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영화들이다. 1960년대 말, 비틀스를 동경하는 네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비틀즈>는 가족의 붕괴, 첫사랑의 아픔,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성장영화의 단골 요소를 비틀스의 음악과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배경으로 따뜻하게 담아낸다. <미라클 벨리에>의 주인공 폴라는 언어장애를 가진 가족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말을 할 수 있어 가족간의 의사소통을 돕는 씩씩한 소녀다. 폴라가 노래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합창부 교사는 폴라에게 더 큰 기회를 찾아 파리에서 오디션을 볼 것을 제안하고, 폴라는 자신의 꿈과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 사이에서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진다. 무엇보다 실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미 실력을 검증받은 폴라 역의 배우 루안 에머라의 매혹적인 목소리가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자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린 남매가 할아버지에게 선물할 나팔을 구하기 위해 작은 모험을 벌인다는 내용의 <할아버지의 나팔>은 따뜻한 에피소드 이면에 빠르게 산업화, 자본주의화되어가는 중국의 모습이 서늘하게 담겨 있다. 이러한 양상은 프랑스영화 <막스와 레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에 사는 아프리카계 이민자 소녀 막스와 레니의 팍팍한 삶의 탈출구가 되어주는 것은 오로지 랩뿐이다. 영화는 타협 없는 현실과 그 앞에서 작아져만 가는 두 소녀의 작은 꿈을 어떠한 수식도 없이 냉혹하게 묘사해낸다.

<비틀즈>

좀더 다양한 음악영화를 즐기고 싶다면 ‘시네 심포니’의 영화들을 추천한다. 음악이 곧 삶이던 전설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지미 헨드릭스: 올 이즈 바이 마이 사이드>는 지미 헨드릭스가 보여주는 화려한 무대와 무대 뒤에 숨겨졌던 그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실제 인터뷰 영상과 극영화로 재현한 영상을 적절하게 조합해 생생하게 그려낸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나 <친밀한 타인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파트리스 르콩트의 영화도 만날 수 있다. 벼룩시장에서 너무나 듣고 싶던 음반을 구한 중년 남자가 이 음반을 듣기 위해 집으로 향하는 ‘짧은 여정’을 그린 <한 시간의 평화>는 일상의 작은 사건이 주는 기쁨을 감독 특유의 능청스러운 유머로 풀어낸 작품이다. <데싸우 댄서스>는 냉전시대 동독, 미국에서 전해진 브레이크댄스 열풍에 빠진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정치가 곧 삶이었던 암울한 시기를 전복하는 댄서들 의 열정을 재치 있고 코믹하게 담아낸 작품으로, <스텝업> 시리즈를 방불케 하는 춤 대결이 가장 큰 볼거리 중 하나다.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터키영화도 함께 만나보자. 자신이 만든 ‘믹스 테이프’로 연인에게 청혼을 하려는 청년의 우여곡절 많은 사랑 이야기를 담은 <믹스 테이프>는 이제는 기억 속 추억거리가 되어버린 믹스 테이프의 ‘아날로그적 정서’와 낯선 터키의 음악이 적절히 ‘믹스’되어 첫사랑을 지키려는 한 남자의 사랑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지미 헨드릭스: 올 이즈 바이 마이 사이드>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아니라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음악 다큐멘터리들도 소개될 예정이다. ‘뮤직 인사이트’ 섹션에서는 다양한 장르, 다양한 국적, 다양한 시기의 음악가들의 삶과 그들의 공연을 담은 흥미로운 다큐멘터리가 관객을 기다린다. <에이미>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영국의 천재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영국의 작은 도시, 평범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에이미는 타고난 음악적 감수성과 한번 들으면 잊기 힘든 독특한 보이스 컬러로 젊은 나이에 일약 스타덤에 오르지만, 많은 뮤지션이 그러했듯 술과 마약으로 황폐한 삶을 살았다. 영화는 그녀와 친구들이 함께 찍은 짧은 영상과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가족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던 어린 소녀가 어떻게 전세계가 주목하는 가수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스물일곱 젊은 그녀의 삶을 앗아갔는지를 차분하게 담아낸다. 자신이 부를 곡은 직접 써야 한다고 믿었던 에이미의 노래들과 무대 밖 그녀의 실제 삶이 교차되면서 그녀가 남긴 노래들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전설적인 록 밴드, 스콜피언스의 마지막 무대를 담은 다큐멘터리 <스콜피온스: 포에버 앤 어 데이>는 2010년, 《스팅 인 더 테일》을 발표하면서 은퇴를 선언했던(물론 올해 새 음반 《리턴 투 포에버》로 은퇴 선언이 무색하게 다시 돌아왔지만) 스콜피언스의 3년간의 마지막 투어 과정을 담았다. 전세계를 돌며 진행하는 공연 모습과 함께 멤버들, 함께 활동한 스탭들이 직접 들려주는 40년이 넘는 스콜피언스의 역사에 예상치 않은 감동이 묻어 있다. 전설적인 뮤지션의 이야기가 좀더 보고 싶다면 <파코 데 루치아: 플라멩코의 여행>과 <수퍼두퍼 앨리스 쿠퍼>도 챙겨볼 만하다. 스페인의 기타리스트 파코 데 루치아의 일대기를 그린 <파코 데 루치아: 플라멩코의 여행>은 가난한 음악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로 성장한 파코의 음악적 삶을 그 자신의 인터뷰와 공연 자료 등을 통해 꼼꼼하게 재구성한다. 5년여의 시간 동안 그의 음악적 행적을 좇으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감독의 존경과 사랑이 화면 곳곳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마지막 공연날 아침, 호텔 방에 어린 손자와 앉아 연습하는 파코의 기타 연주가 무척 인상적이다. <수퍼두퍼 앨리스 쿠퍼>는 괴짜로 알려진 글램 메탈계의 대부 앨리스 쿠퍼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는 일인칭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띠고 있다. “웰 컴 투 마이 나이트메어!”라며 주문을 거는 앨리스 쿠퍼의 목소리를 따라 40여년 동안 그가 보여준 음악과 공연들이 차곡차곡 펼쳐진다.

<에이미>

무더운 여름밤, 색다른 ‘락페’를 즐기고 싶다면 <메탈의 성지 바켄 3D>를 추천한다. 세계적인 록 페스티벌인 독일의 ‘바켄 오픈 에어’를 담은 이 작품은 뮤직비디오로 오랜 경력을 쌓은 감독의 연출력을 기반으로 관중을 흥분케 하는 락페의 매력을 현장 못지않게 생생하게 담아낸다. 앤스랙스, 앨리스 쿠퍼, 딥퍼플, 모터헤드의 에너지 넘치는 공연과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전세계에서 몰려든 팬들의 열기가 뒤섞이며 자연스레 보는 이들까지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주제와 변주’ 섹션에는 ‘발레영화 특별전’이 마련되어 있다. 두명의 한국 감독이 기록한 <호두까기인형>과 <지젤>을 비롯해 중국의 세계적인 무용수 리춘신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마오의 라스트 댄서>,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러시아의 마린스키발레단 수석 무용수가 된 세계적인 발레리나 율리아나 로파트키나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마린스키의 전설, 율리아나 로파트키나>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따로 내지 않으면 좀처럼 만나기 힘든 발레 공연을 관람할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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