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 한점 없는 시골길을 걷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다. 농담의 차이만 있을 뿐 천지가 어둡기는 매한가지여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내 그림자가 남의 그림자 같고, 혼자인데도 다른 이의 기척이 느껴진다(이게 제일 무섭다). 거기에 물안개까지 깔리면 그 자체로 <전설의 고향>이지. 농활 가서 제대로 씻지도 않고 일주일을 부대끼는 대학생들이 그 더러움을 극복하고 괜히 정분이 나는 게 아니다, 밤길 걷다 보면 옆에 있는 게 누가 됐든 손잡고 싶어지거든. 그런 밤길을 홀로 걷고 돌아온 후배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폐가에서 도란도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느니 헛소리를 하며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호소했지만, 그것 또한 헛소리로서 자리 깔고 5분 만에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후배는 여전히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누나, 여기 이상해요, 엉엉.” 간밤에 잠깐 눈을 떴는데 옆에 머리가 긴 사람이 누워 있었다는 거였다. 그러려니 하고 다시 잤는데 새벽녘에 잠이 깨어 보니 아무도 없었고, 게다가 “우리 과엔 머리 긴 남자애가 없잖아요, 엉엉” 한다. 그건 그래, 하지만… 머리 긴 여자애는 있지. 미안하다, 내가 잠깐 들렀다.
남자들은 마을회관 시멘트 바닥에 종이 상자를 깔고 자고, 여자들은 장판이 있는 조그만 골방에서 잤는데, 그 방이 한여름에도 너무 추워서 나만 몰래 남자애들하고 자다 온 거였다. 술 취해서 노숙한 친구가 세상에서 종이 상자하고 신문지가 제일 따뜻하다더니 진짜였어. 나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원래 시골에 귀신이 많아, 땅과 물의 기운이 살아 있잖아. 이 동네엔 농약 먹고 자살한 사람도 많고. 지난해에도 한명이 말이야….” 그렇게 괴담은 태어난다. 아, 그리고 어젯밤 그 폐가 말인데, 그거 그냥 허름한 집이야, 폐가 아니야.
불행하게도 농활 전날 참가 신청을 했던 후배는 남은 8박9일 동안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다가(마을회관 화장실이 가득 차서 도보로 2분 거리 논두렁 한가운데에 <학교괴담: 저주의 언령> 스타일로 새로 팠다) 치루가 폭발하는 처참한 사태를 맞았지만, 무서운 귀신과 웃기는 귀신 사이의 거리는 의외로 가깝다. 무섭고 싶었지만 여기저기 널린 머리카락이 왠지 미역 같아 완도로 피서 가고 싶게 만든 공포영화 <가발>처럼.
그러하기에 수많은 귀신은 고뇌해왔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제대로 겁을 줄 수 있을까. 영화 <비틀쥬스>의 초보 유령 부부처럼 연습과 실험과 배움을 거듭하며 귀신의 도(道)를 연마해온 것이었다.
몇번을 시도했지만 스틸만 보고 무서워서 아직도 못 본 일본영화 <링> 이후 숱한 아시아 귀신은 네발로 기어다니다가 관절을 꺾는 버릇을 들였는데, 대부분 맥락이 없어 욕을 먹었지만, 이게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만큼 어울리는 영화도 없었다. 주인공이 걸그룹이잖아, 원래 꺾는 게 일이라고. 하지만 꺾는다고 무서울 거면 영화 <전설의 고향>의 키 커지는 귀신이 한국 공포영화 90년 역사상(한국 최초의 공포영화는 1924년작 <장화홍련전>이라고 합니다) 최고의 놀림감으로 전락하진 않았겠지. 키 커지려고(키가 커지니 왠지 머리도 커지고) 장대 타고 올라서서 얼마나 힘들게 꺾었는데.
사실 귀신이 무서우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섭다. 영화 <팔로우>의 귀신(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들은 뛰지 못하고 걷기만 해서 엄청 느리다며 사람들이 마구 깐보지만, 멀리 보이기만 해도 기분 나빠, 무서워, 도망치고 싶어. 100미터 복도를 점프 두번으로 결승선 끊는 <여고괴담>의 귀신이 부럽지 않아. 그 비결은 무엇일까. 옛말에 과유불급이요, 하다 그만두면 안 하느니만 못하며, 앉아서도 천리를 본다고, 아니 이건 빼고, 했으니, 정말 무서운 귀신들은 단순하고 간결하며, 과하다 싶더라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고집이 있다. 그것이 <주온>, 아무것도 모르고 봤다가 머리 감겨주는 귀신이 나오는 바람에 몇달 동안 5분 만에 머리 감고 욕실에서 뛰쳐나오게 만든 극한의 공포영화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자면 어쩌다 원혼이 되어 무차별 저주를 내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꼬마 토시오는 전혀 꾸미지 않고 분칠만 엄청 한 채로 그냥 뛰어다니는데도 포스터를 꿰차고, 인터넷 팬카페가 생기고, 말괄량이 삐삐 배우가 나무 타다 추락사했다는 식의 사망 괴담까지 양산한 공포영화계의 슈퍼스타, 일본 호러의 조르디. 아무리 괜히 나온다지만 어엿한 주요 캐릭터가 칠판 긁는 소리 내면서 뛰어다니기만 하다 보면 부끄러울 법도 한데, 다 무시하고 끝까지 밀어붙인 찬란한 뚝심의 열매다.
하지만 토시오도 명색이 배우이니 실물은 귀엽다. 그래, 귀신들도 살아 있을 적엔 멀쩡한 선남선녀였겠지. 귀여운 코미디영화여서 반전 따위 기대하지 않았다가 호되게 당한 <꼬마 유령 캐스퍼>의 반전은 이런 것이었다, 저런 금발 미소년도 죽으면 전구 머리 캐스퍼가 되는구나. 살아서 가꿔봤자 아무 소용없으니까 이번 생은 그냥 망한 채로 살아버릴까, 가꾸기엔 이미 늦기도 했고.
세상엔 무섭고 웃기고 귀여운 괴담이 많고 많지만, 가장 무서운 괴담은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이야기, 그러니까 ‘업계’ 괴담이다. 이를테면 어떤 기자는 자기 사무실에 한밤중에 몰래 기사를 고쳐놓는 귀신이 있다고 주장하며 두려움에 떨곤 했다. (그러니까 술 먹고 기사 쓰지 말랬지, 부모도 몰라보고 자기가 쓴 것도 몰라봐.) 출판계엔 이런 괴담이 있다, 오자(誤字) 인쇄기 기생설. 아무도 모르게 인쇄기에 숨어 있던 오자들이 기계만 돌아갔다 하면 원한을 품고 종이에 스며들어 교정을 다섯번이나 거친 완벽한 필름에 오자를 낸다는 것이다.
최근 나의 갑께서 이런 엄명을 내리셨다, 단 한자의 오자도 허용치 않겠노라. 인간이 할 수 있는 걸 요구하셔야지요. 자꾸 그러면 나도 인쇄기에 기생하는 원한의 오자 귀신이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내 오자는 오직 너에게만 줄 테야.
귀여워서 망했네
무서운 귀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아니, 이런 딜레마가) 필요한 두세 가지 것들
만만한 희생자
귀신은 무섭지 않아도 괜찮다, 대신 사람이 겁이 많으면 된다. <귀신이 산다>의 필기(차승원)는 <주유소 습격사건>의 박영규가 조용필 노래를 부르다 말고 TV에서 기어 나오는데 반갑다고 악수라도 청할 일이지 울면서 도망다닌다. 이봐, 인사해야지, 선배잖아. 세상에 이런 사람만 있다면 귀신으로 살기(이미 죽긴 했지만) 편할 텐데. <비틀쥬스>의 유령 부부가 겁 한번 주려고 한편의 뮤직비디오를 찍은 것을 생각하면 귀신 팔자 뒤웅박 팔자일지도.
만만한 주물
어릴 적에 눕히면 눈을 감는 인형을 무척 무서워했던 나는 여섯편인가 나온 <사탄의 인형> 시리즈를 한편도 못 봤다. 그러니 내가 바로 살아 있는 증거다, 어설프게 분장하고 나오느니 대역을 써라. 하지만 고양이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양볼에 연지 찍은 고양이를 데리고 나왔다가 귀여워서 망한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을 보면 그도 만만한 것만은 아니다. 무서운 것과 웃기는 것과 귀여운 것의 거리는 진정 멀고도 가까우니….
만만한 지형지물
<가발>은 가발이 미역 같아서 웃겼지만, 한밤중에 교내 7대 불가사의 따위가 얽힌 교정에 널어놓으면 미역도 무섭다. 그래서 끝나고 나니 참으로 재미없었던 듯도 싶었던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을 눈 가리고 봤다. 무용실 거울 괴담, 이걸 아는 사람은 그냥 무용실 거울만 보여줘도 무서우니까. 하지만 깨로 목욕한 여자 괴담을 아는데도 <전설의 고향>은 웃기기만 했으니, 다시 말하지만 무서운 것과 웃기는 것과 귀여운 것의 거리는 진정 멀고도 가깝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