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흥순 감독 필모그래피
장편 <위로공단>(2014) <비념>(2012)
단편 <숭시>(2011) <긴 이별>(2011) <잘 가시오>(2006) <추억록>(2003) <내 사랑 지하>(2000) <이천 가는 길>(1998)
공공미술 프로젝트 금천미세스(2010~2014) 보통미술 잇다(2007~2011) 믹스라이스(2002~2005) 성남 프로젝트(1998∼1999)
박찬경 감독 필모그래피
장편 <고진감래>(공동연출 박찬욱, 2013) <만신>(2013)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2010)
단편 <청출어람>(공동연출 박찬욱, 2012) <파란만장>(공동연출 박찬욱, 2010) <신도안>(2008) <비행>(2006) <파워통로>(2004)
<위로공단>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면서 임흥순 감독은 영화계와 미술계가 주목하는 뜨거운 이름이 되었다. 미술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는 박찬경 감독과 임흥순 감독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났다. 마주 앉은 두 감독은 착석하자마자 각자의 노트를 펼쳤다. 인터뷰어로 나선 박찬경 감독은 임흥순 감독의 두 번째 장편다큐멘터리 <위로공단>에 대해 날카로운 감상평을 전했고 임흥순 감독은 차분한 어투로 자신의 예술적 지향을 밝혔다. 생산적 비판과 따뜻한 지지가 오간 그날의 대화를 전한다.
“(<위로공단> 보도자료집을 보며) 네가 변방의 아티스트야? (웃음) 광주비엔날레에서 전시도 세번이나 했는데? 변방의 아티스트가 전혀 아니에요.” 박찬경 감독의 말이 끝나자, 박찬경 감독과는 <만신>(2013)을 함께했고 임흥순 감독과는 <비념>(2013)과 <위로공단>(2015)을 함께한 김민경 프로듀서가 웃으며 거든다. “현재 임흥순 감독의 포지션이 그래요. ‘변방의 아티스트’, ‘시다의 아들’ .” 임흥순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위로공단>이 올해 5월 열린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 작가로선 최초의 은사자상 수상이었다. 본전시에 한국 작가가 초청된 건 6년 만이었고, 90여분짜리 ‘영화’가 비엔날레에서 상영된 것도 이례적이었다. 게다가 은사자상은 35살 미만 젊은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임에도 불구하고 40대의 임흥순 감독이 심사위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봉제공장 시다로 살아온 어머니와 백화점 의류 매장, 냉동식품 매장에서 판매원으로 일한 여동생의 삶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수상 후 발언은 ‘시다의 아들’ 임흥순 감독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위로공단>은 ‘여공’으로 불렸던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에서부터 마트 점원, 콜센터 상담원, 승무원 등 다양한 노동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성, 노동, 역사는 임흥순 감독이 그림을 그리던 시절부터 관심 있게 파고든 화두다. <이천 가는 길> <추억록> <내 사랑 지하> 같은 초창기 단편에서 “도시의 빈민이자 노동자였던 부모님”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꾸준히 “개인사와 사회사의 연결”을 시도해왔다. 제주 4•3 사건과 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마을의 현재를 들여다보는 첫 번째 장편다큐멘터리 <비념> 역시 4•3 때 남편을 잃은 강상희 할머니(김민경 프로듀서의 할머니)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보통 사람들의 언어, 보통 사람들의 표정 위에 일상의 풍경을 낯설게 배치하면서 풍부한 상징을 만들어냈던 <비념>과 <위로공단>은 모두 위로와 위무의 시선을 담은 작품이다.
오랫동안 임흥순 감독의 작업을 가까이서 지켜봐온 미술가이자 영화감독인 <만신>의 박찬경 감독이 <위로공단>을 보고 임흥순 감독을 만났다. 두 감독은 임흥순 감독이 경원대학교 회화과에 재학 중이던 때, “젊은 선생과 저항적인 학생”으로 처음 만난 사이(그 친분을 살리기 위해 최대한 그들의 어투를 살렸음을 밝혀둔다). 닮은 듯 다른 두 감독의 만남은 8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에 이루어졌다.
박찬경_한국의 전통적인 사회적 다큐멘터리에 익숙한 사람들이 보기엔 <위로공단>이 굉장히 스타일리시한 사회적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싶어. 지나치게 미디어 아트스러운 게 아니냐는 얘기도 들을 것 같고. 일반적인 사회적 다큐멘터리가 가지고 있는 답답함과 강박적 시선에선 자유롭다고도 할 수 있겠지.
임흥순_그 두 가지를 접목하는 게 제 역할이기도 한 것 같아요. <위로공단>이 전시장에서 보면 쉽고 영화관에서 보면 미학적으로 다가오는 거라고도 할 수 있겠죠. 다른 시각, 다양한 표현방법들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단순히 미학적으로 멋있게 보이려는 건 아니거든요. 물론 미술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들이 작품에 녹아나긴 하겠죠.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의 삶, 그들의 바닥에 깔린 심리, 그 내면을 보여주는 방식으로서 다양한 이미지들을 활용했다고 생각해요.
박찬경_<위로공단>이 전시장에서 상영되는 버전과 극장에서 상영되는 버전이 다른가?
임흥순_구분하진 않았어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시 준비할 때 싱글 채널로 가는 게 좋을지 다채널로 가는 게 좋을지 고민은 있었어요. 전시장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사람들이 한 시간 반 동안 한자리에서 영상을 감상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가 싱글 채널로 가도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박찬경_오쿠이 입장에서도 90분짜리를 그대로 튼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 볼 사람은 보고 말 사람은 말아라, 하는 큐레이터로서의 입장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고. 그런 점에서 훌륭한 큐레이터라는 생각이 들어. 일반적인 큐레이터라면 당연히 시간을 줄여달라고 했을 텐데. 전시장에선 작품 감상의 처음과 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니까 긴 영상을 잘 틀지 않잖아. 사실 <위로공단>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봐야지 재밌는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기승전결의 구조가 있다거나, 앞을 봐야 뒤가 이해되는 인과관계가 분명한 영화는 아니니까. 그래서 90분짜리를 전시장에서 틀어도 감상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어. 영화의 편집이나 구성이 그 자체로 멀티 채널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인데. 한편으론 그게 극장에서 보는 관객에겐 피로감을 주지 않을까 싶기도 해. 물론 섬세하게 영화의 요소들을 들여다보면 이미지들이 서로 연결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겠지만.
임흥순_기승전결의 구조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제 장점은 아닌 것 같아요. <비념>도 굉장히 파편적인 작품이잖아요. <위로공단> 역시 삶과 노동의 조각들을 모아낸 작업이죠. 틀을 먼저 만들고 그 안을 채운 게 아니라, 조각들을 수집해 하나의 큰 틀을 만들어나갔어요. <민족미학>에 채희완 선생님이 쓴 마당극에 관한 글에 제가 고민하던 것들을 이론적으로 얘기해주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채희완 선생의 마당극을 봐도 기승전결의 구조가 아니라 병풍식이잖아요. 따로따로 독립하는 이야기가 하나로 만들어지는 방식이 흥미로웠어요.
박찬경_민담이나 신화가 그런 수평적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지.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시나리오에서도 그런 구조를 생각하고 있어.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이 두서없이 연결되는 영화를. 그런데 서양의 신화와 동양의 신화는 그 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 서방에선 기본적으로 신이 위에 있기 때문에 수직적인 구조가 만들어지는데 동양, 특히 동아시아에선 극락이나 외부의 세계가 산 넘으면 있는 존재인 거야. 서방정토라는 말처럼.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아라비안 나이트>(1974)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영화가 그런 수평적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도 그런 편이고. 그런데 영화 속 특정 이미지들은 굉장히 추상적이더라. 곤충이 등장하고 새가 날아가는 장면 같은 경우 말야. 추상적 이미지는 다양한 내용과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포용력이 있지만, 한편으론 역사적 사실을 감상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계기도 제공하는 것 같아.
촌스러움의 정서, 체념의 정서
임흥순_개미나 새의 이미지가 상투적이긴 한데 노동자들의 불안한 심리 같은 것을 징후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울산 태화강의 까마귀떼 같은 경우는, 공업도시 울산의 자연이 파괴와 회복을 거듭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다가왔거든요. 2000년대 들어 생태공원이 조성되면서 여름철새와 겨울철새가 공존하게 되는데 그런 현실이 신기했고, 공존을 상징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노동과 삶의 문제를 자연과 생물에 빗대 보여주려 했던 거죠.
박찬경_이런 게 어느 정도 상투적인 표현이라면 심하게 상투적으로 갔어도 좋았겠다 싶어. 영화 초반에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에 나오는 노래 <야근>이라든가, 마지막에 포크듀엣 둘다섯의 <긴머리 소녀>, <희망가> 같은 노래가 나오는 게 재밌었거든. 이런 건 정말 촌스러울 정도로 상투적이잖아. (웃음) 임흥순 감독의 작품에 흐르는 촌스러움의 정서가 난 좋은 것 같아.
임흥순_제 영화에서 정서는 중요한 부분 같아요. <위로공단> 작업을 할 때도 노동 문제, 역사 문제 그 자체를 주제화한 건 아니거든요. 정서나 분위기에 끌려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정서가 일종의 민초, 민중, 가난한 서민들의 정서라고 생각하는데, 10대 때 이미 그 정서가 제 안에 만들어졌죠. 그런 정서를 어떻게 미학적으로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고민을 최근에 많이 하고 있어요.
박찬경_미술작품에서도 그렇고, 임흥순의 작품에는 체념의 정서 같은 게 녹아 있지. 투쟁의 정서는 확실히 아니야. 억지로 이데올로기적으로 무언가를 넘어서려고 하지 않는 그 태도가 임흥순의 작품을 강하게 만드는 힘인 것 같아. 본인이 민중적이란 표현을 썼는데, 투쟁적인 민중은 아니고 인내하는 민중, 저개발의 기억을 간직한 민중인 거지.
임흥순_현실에선 투쟁하기보다 체념하고 견디는 분들이 다수잖아요. 저희 어머님도 그렇게 살아오셨고. 포기와는 다른 체념과 인내 그리고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 그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보려고 하는 거죠. 그런데 촌스럽다는 표현 말고 좀더 멋있는 표현은…. (웃음)
박찬경_지식인들이 흔히 보고 싶어 하는 노동자의 모습과 임흥순이 그리는 노동자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잖아. 체념이란 표현이 정치적으로 패배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지기 쉬워서 조심스러운데, 그것이 결국 일상을 버티는 힘인 거지.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버텨야만 하는 상황들이 주는 정서를 임흥순의 작품이 잘 전달하는 거고. 다음으로 궁금한 건, 본인이 남성이잖아. 남성으로서 여성 노동자를 다루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려움은 못 느꼈어? 난 <만신>을 다 만들고 보니 내가 여성이었다면 다른 지점을 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임흥순_제가 여성이 될 순 없지만 여성의 입장이 되려는 노력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억지로 하는 노력은 아니에요. 여동생과 어머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지지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했는데, 그게 제 안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감수성이 여성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게 하는 것 같고요. 그리고 여성의 정서, 여성의 어법들이 민중의 시각하고 맞물리는 지점이 있어요. 역사는 대개 남성들의 기록이고, 여성들의 이야기는 문자화되지 않은 역사인 거죠. 제게는 기록되지 않은 그 마음들이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박찬경_<위로공단>은 박경근 감독의 <철의 꿈>(2013)과 정반대에 놓인 작품 같아. <철의 꿈>은 제철의 현장, 생산의 장관에 집중하잖아. 그런데 <위로공단>은 개미 이런 데…. (웃음) <철의 꿈>에도 노동자 얘기가 나오지만, 문명의 차원에서 거대하고 숭고한 생산의 이미지를 보여주지. 반면 <위로공단>은 생산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이야기니까.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크레인에 올랐던 김진숙씨 인터뷰를 했잖아. 김진숙씨 인터뷰를 보니 <철의 꿈> 생각이 나더라.
임흥순_말씀하신 것처럼 <철의 꿈>이 문명, 기계, 산업화를 얘기한다면 전 사람을 얘기하고 있죠. <위로공단>에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분만 22명이에요. 전체 66명 정도 인터뷰를 했고요.
박찬경_인터뷰할 때의 원칙 같은 건 뭐였어? 난 인터뷰할 때 대상이 울면 카메라를 끄게 되더라.
임흥순_그게 박 감독님하고 저의 차이죠. (웃음)
박찬경_TV의 영향인 것 같아. 카메라가 참 이상한 물건이어서,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증폭하는 효과가 있어. TV는 그걸 너무 좋아하지. 관객한테 호소력이 크니까. 그래서 난 인터뷰이가 울면 마음을 식히고 얘기하라고 시간을 따로 주는 편이야.
임흥순_그런데 인터뷰 대상자 역시 울면서 풀게 되는 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에 등장하는 강명자 선생님(전 구로공단 대우어패럴 노동자)도 인터뷰를 하면서 마음이 더 좋아졌다고, 고맙다고 하셨거든요. 그런 기록이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대신 이것을 왜 기록하는지의 고민은 항상 수반돼야 하겠죠. 장영선 선생님의 경우는 인터뷰라는 것을 처음으로 하셨는데, 그분의 얼굴, 그분이 낀 안경의 실밥 같은 것을 굉장히 클로즈업해서 담았어요. 선생님의 말 못함, 어색함들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예전에 (박찬경 감독이) 제게 너무 작은 것에 집중하지 말라는 얘기를 해주긴 하셨지만, 제 작업은 그렇게 미세한 것들이 모여가는 과정 같아요.
박찬경_내가 그런 얘길 했었나? (웃음) 아마 술자리에서 했겠지.
티켓도 팔고 예술도 하는 이중인격자
박찬경_어머님이 출연하는 장면은 직접 찍은 거야?
임흥순_초반의 자료화면은 15년 전에 카메라 막 배우기 시작할 때 제가 찍은 거고, 후반부 장면은 촬영감독이 찍었어요.
박찬경_영화에선 어머님이라는 사실을 따로 밝히진 않지?
임흥순_네. 한정지어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어요. 작업을 하는 동안 구로공단의 여성노동자들이 지금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생각해봤는데, 문득 저희 어머님이 생각나더라고요. 처음부터 어머니를 생각하며 <위로공단>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다보니 이게 내 어머니와 여동생의 이야기구나 싶었어요. 마트 냉동식품 매장에서 일하셨던 분을 인터뷰했었는데, 평소 손발이 굉장히 차갑고 아이도 잘 안 생기더라는 얘기를 했어요. 제 여동생도 마트 냉동식품 매장에서 일을 했었고 아이가 안 생겨 엄청 고생을 했거든요. 이런 게 다 연관이 되더라고요.
박찬경_<비념>과 비교해서 보면 <위로공단>에는 어깨에 힘주는 숏들이 확실히 덜한 것 같아.
임흥순_<비념> 때는 예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웃음)
박찬경_미학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은데, 장편을 한번 만들어봤기 때문인지 좀더 자유로워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임의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들과 내러티브를 조합하는 게 본인의 미학이라면 그걸 더 밀고 나가도 되지 않을까 싶어. 그러면 훨씬 더 개방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결국 우리가 이중인격자잖아. (웃음) 예술도 해야 하고, 영화 티켓도 팔아야 하고.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나가야 할 텐데, 방법은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 본인의 미학적 전략과 사람들의 기호를 연결하는 것, 그런 예를 만드는 게 중요해. 적당히 타협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건 스스로에게 던지는 얘기이기도 해. 지금 우리에겐 새로운 영화, 새로운 영화언어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
임흥순_세 번째 작품에선 좀더 자유롭게 섞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재 두편의 단편을 만들어놓았어요. 베트남전쟁으로 희생된 여성들의 이야기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투채널 비디오로 만든 <환생>이 올해 초 아랍에미리트 샤르자 비엔날레에서 상영됐고, 현재 MoMA PS1에서 상영 중이에요. <환생>의 장편 버전을 준비 중에 있는데, <환생>은 베트남전 참전 군인에 관한 프로젝트 <이런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에요. <이런 전쟁>이 남성 중심으로 풀었다면 <환생>은 여성 중심으로 풀어보려고 해요. 또 다른 작품은 7월에 일본 국립신미술관에서 상영된 단편 <다음 인생>이에요. <비념> 이후 미처 다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극실험영화로 만들었어요. 4•3으로 남편을 잃은 강상희 할머니가 올해 93살이에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22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할머니의 남편)를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든 작품이에요. 어쨌든 제 바람은 아름다운 작품을 계속해서 만드는 거예요. 아름다운 영화, 이 시대에 필요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박찬경 감독에게, 회화를 전공하던 대학생 시절의 임흥순 감독이 <비념> <위로공단> 같은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될 줄 알았느냐고 물었다. “작가들의 젊은 시절 작품을 보고 이 작가가 좋은 작가가 될지 어떨지 잘 맞히는 편이에요. 나 자신이 미술을 하는 사람이면서 기획자이고 평론가여서 작가의 소양을 보는 데 관심이 많아요. 한국의 미술 작가들이 허영이 많죠. 자신이 진짜로 마주한 주변의 문제에서 출발하지 않고, 서구의 미학적 흐름에 맞춰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신의 현실에 정직하고, 진지한 태도를 가진 작가들에 관심이 많은데, 임흥순 감독이 그랬어요.” 박찬경 감독은 “임흥순 감독이 사실 그림은 잘 못 그렸다”면서 농담처럼 말을 던져놓곤 이렇게 든든한 지지의 발언을 해줬다. 미술에서 출발해 영화로 영역을 넓혀온 두 감독의 새로운 영화언어 실험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희망해본다.
붓보다 카메라
임흥순 감독의 회화와 초창기 단편
임흥순 감독은 삼수 끝에 해병대에 갔고, 제대 후 스물다섯살에 경원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대학원에 들어가선 주로 카메라를 들었으니, 사실상 붓을 든 시간이 그리 길다고는 할 수 없다. “색은 칠하면 칠할수록 탁해지는데 빛은 섞으면 섞을수록 밝아지잖아요. (이 말을 들은 박찬경 감독 왈 “그건 못 칠해서 그런 거지.”) 아, 미술보단 영화가 제게 더 맞겠구나 싶더라고요. (웃음)” 회화를 하던 당시엔 사실적인 그림을 주로 그렸고 임옥상, 이종구, 신학철, 오윤 등 민중미술 작가들의 그림을 좋아했다고 한다. 부모의 모습을 화폭에 옮긴 <아버지와 어머니> <인사동 피크닉>은 자연스레 그의 단편 <추억록> <내 사랑 지하>와 포개진다. 두 단편은 마치 캔버스에 고인 시간을 늘려놓은 것 같다. <추억록>은 부모님의 사진을 나열한 하나의 영상과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에 모인 임흥순 감독 가족의 사진촬영 풍경이 2채널로 진행되는 작품이다. <추억록>의 ‘작가노트’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이러한 개인사적 사진의 보존을 통해 당시 국가와 개인이 갖는 일종의 모종관계 그리고 집단화된 ‘지루한’ 보편적 일상사를 읽을 수 있다. 한마디로 현실의 모순을 폭로하는 데 때론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이미지가 요긴하게 쓰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추억’이란 일상의 상투적인 면 너머에 위치한 구체적인 삶을 재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개인과 국가의 연결고리를 포착하는 임흥순 감독의 예리한 시선을 살필 수 있는 대목이다. <내 사랑 지하>는 1999년 9월, 9년간의 지하방 생활을 정리하는 임흥순 감독 가족의 이삿날 풍경을 담은 단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감독의 어머니와 여동생의 대화, 그들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감독을 향해 던지는 말들(“찍지 마 이놈의 새끼야”, “저 옘병할 놈의 새끼는 사진 찍으러 왔는지, 아침부터 무슨 짓인지 몰라”)이 아주 펄떡펄떡 건강하게 살아 있다. 초창기 작품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위로공단>의 탄생을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