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1명(김대명, 도지한, 배성우, 박신혜, 이범수, 박서준, 김상호, 천우희, 우에노 주리, 이재준, 김민재, 이현우, 조달환, 이진욱, 홍다미, 서강준, 김희원, 이동욱, 고아성, 김주혁, 유연석)의 배우들이 한 작품 안에서 한 인물을 연기하는 게 상상이 되는가. <뷰티 인사이드>를 보면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우진은 매일 얼굴이 바뀐다. 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엄마(문숙)와 친구 상백(이동휘)뿐이다. 이런 그가 우연히 이수(한효주)를 보고 사랑에 빠지고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기로 한다. 이 보통 아닌 설정을 현실적으로 풀어낸 사람은 오랫동안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해온 백감독이다(본명은 백종열.-편집자). 그는 “내가 제작자나 투자자라면 영화 연출 경험이 일천한 내게 투자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용기에 감사하다. 모든 사람들의 도움 덕에 지금까지 잘 이끌어온 것 같다”고 첫 영화 연출 소감을 말했다.
-제작사 용필름 임승용 대표로부터 처음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나.
=그전에 원작 광고를 보고 임승용 대표에게 한번 보라고 권했다. 그 뒤 임승용 대표로부터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엄두를 못 내다가 이렇게 기발한 소재를 한번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수락했다.
-원작 광고를 처음 봤을 때 어땠나.
=첫인상이 좋았다. 단편영화처럼 느껴졌고 아이디어가 신선했다. ‘아, 이렇게 옷을 입힐 수 있구나. 이걸 장편으로 확장해보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승용 대표에게 권한 것도 그래서다.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관객의 집중력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다인1역은 쉽지 않은 설정이었을 것 같다. 시나리오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가장 공을 들인 건 뭔가.
=우진과 이수의 만남을 어떻게 이루어지게 할까, 이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원작은 여자가 남자를 만나 남자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끝난다. 그 뒤 이들이 어떤 갈등을 겪고, 또 어떤 고민을 하는지 설정하는 데 주로 신경을 썼다.
-우진을 연기한 사람이 일반인과 전문배우를 포함해 모두 몇명인가.
=총 123명이다. 이중 배우는 21명이다.
-우진을 캐스팅할 때 기준은 무엇이었나. 최대한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가령 이 신에서는 우진이 여자여야 한다 같은 설정들이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정해져 있었다. 캐스팅 차트를 놓고 어떤 배우가 어떤 신과 잘 어울릴까를 고민하는 작업이 우선이었다.
-많은 배우가 우진을 연기해야 했기에 ‘우진은 어떤 사람이다’ 같은 기준이 있었을 것 같다.
=우진은 매일 얼굴이 바뀐다는 특이한 처지에 놓여 있어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고립되어 있고, 엄마와 친구 상백만이 그의 비밀을 알고 있으며, 그러다보니 대인관계도 제한적인 친구다. 누군가가 우진을 만난 뒤 다시 만나게 되면 바뀐 얼굴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니까 스스로 두드러지지 않는 성격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거다. 슬프거나 화나거나 기쁠 때도 누군가에게 표현하지 않고 혼자 속으로 삭였을 테고. 참여한 배우들이 그런 점에 신경 써서 감정들이 튀어나오지 않게 조율해야 했다.
-다양한 배우들이 한 캐릭터를 맡으면서 캐릭터의 성격이 풍성해지는 장점도 있었을 것 같다.
=매일 얼굴이 바뀐다는 설정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서비스 같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이 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듯이 다양한 연기 톤을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지 않나 싶다.
-그중 이야기의 중요한 대목이 되는 지점에서 등장하는 배성우, 김상호, 이진욱 같은 배우들이 인상적이었다.
=경중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만큼 21명의 우진과 이수, 그리고 상백 모두 중요했다.
-특정 배우를 언급하지 않는데.
=이야기의 앞쪽에 등장하는 우진이 없으면 뒤에 나오는 우진이 살아날 수 없으니까.
-상대배우가 매번 얼굴이 바뀌는 설정 때문에 이수를 연기한 한효주로선 감정을 집중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한)효주씨가 그 문제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배우들이 매번 달라지는데 어떻게 감정을 유지해야 하는가. 그때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게 맞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이수도 그랬거든. 우진이라는 낯선 남자를 만났는데 그의 얼굴이 매일 바뀌는 걸 알고 무척 당황했을 거다. 그때 움찔 놀라는 모습을 그대로 두는 편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우진이 매일 얼굴이 바뀌는 설정을 소개하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원작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오프닝 시퀀스는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명의 우진의 얼굴 몽타주만으로 우진의 얼굴이 매일 바뀐다는 설정을 보여줘야 했는데, 원작이 그걸 시각적으로 잘 표현해 적극 차용했다.
-매일 우진의 얼굴이 달라지는 데서 우진과 이수, 두 사람의 고민이 시작된다. 그 고민이 둘 사이에서만 그친다는 인상을 받았다. 가령 이수가 우진을 자신의 가족과 직장 동료에게 소개하고 고민을 털어놨더라면 둘의 고민이 좀더 현실적으로 와닿았을 것 같다.
=내가 이수라도 남자친구의 비밀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털어놓지 못했을 것 같다. 고민도 어느 정도여야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았을 텐데 우진의 상황은 현실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테니. 이수가 혼자서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직장 동료가 남의 속도 모르고 남자친구 좀 데리고 와 보라는 얘길 하잖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수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지 못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둘의 사랑이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랬듯이 내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해 혼란을 일으키는 게 맞는 것일까. 아마도 이수는 자신의 고민을 남에게 얘기하기보다 스스로 감싸안기를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광고 일을 하면서 언젠가 영화를 연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
=그런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올드보이>(2003), <그놈 목소리>(2007), <설국열차>(2013) 등 여러 영화에서 타이틀 디자인을 한다거나 예고편을 만든다거나 스탭으로 참여하는 것을 좋아했고, 또 열심히 했다. 우연히 찾아온 이 기회가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광고 연출을 하다가 영화를 해보니 어떻던가.
=장거리달리기 선수와 단거리달리기 선수는 스타일도, 사용하는 근육도 다르지 않나. 그런 것처럼 영화와 광고가 호흡이 무척 다른데, 해보니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라픽플라스틱이라는 안경 브랜드 사업도 하고 있고, 팬티도 직접 디자인하고 있다. 뭘 만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가보다.
=광고든 뮤직비디오든 영화든 안경이든 큰 맥락에서 무언가를 만든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어떤 스탭과 함께하는가가 차이일 뿐이다. 앞으로도 계속 무언가를 만들 것 같다.
-안경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뭔가.
=촬영 때문에 세계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는 편인데 어디를 가도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안경이 없다든 생각을 했다. 없으면 내가 만들어볼까. 이렇게 단순한 이유로 시작됐다. 안경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기에 5년 동안 안경 만드는 공장과 스탭을 찾아다니면서 모르는 것들을 배웠다.
-앞으로도 영화 연출을 계속할 생각인가.
=아직 구체화된 건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연출하고 싶다.
-신인감독으로 경쟁이 치열한 여름 시장에 나와보니 어떤가.
=지난주에 극장에 가서 보지 못한 영화들을 몰아서 봤는데 큰일났더라. (웃음) 어쨌거나 우리 영화는 처음 출발했던 기획 방향에서 큰 이견 없이 잘 진행됐다. 지금은 담담하게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