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14 <미라클 벨리에>
“도망치는 게 아니에요. 날개를 편 것뿐. 부디 알아주세요. 비상하는 거예요. 술기운도, 담배 연기도 없이 날아가요. 날아올라요.” 소녀의 씩씩한 고백은 기어코 보는 이를 울리고야 만다. 영화 <미라클 벨리에>에서 파리의 합창학교 입학 오디션 중 폴라가 부르는 노랫말의 일부다. 가족의 품을 막 벗어나려는 폴라가 자신과 가족에게 전하는 응원이기도 하다.
루안 에머라가 연기한 폴라는 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코다(A Child of Deaf Adult, CODA,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비장애인 자녀)다. 학교의 음악교사는 폴라가 가창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폴라를 파리의 합창학교로 유학시키려 한다. 하지만 폴라는 가족 중 유일하게 음성언어를 쓸 줄 알기 때문에 가족과 세상을 자신이 연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 폴라는 꿈과 가족 사이에서 고민한다. 당연히 주인공 폴라를 연기할 배우는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여야 했다. 에릭 라티고 감독은 폴라를 연기할 배우를 고르지 못해 고심하던 중 루안 에머라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그를 폴라 역에 캐스팅했다. 에머라는 오디션 프로그램 <더 보이스 프랑스> 시즌2에서 준우승했고, 데뷔 앨범 《Chambre 12》로 프랑스 가요차트에서 5주 연속 정상을 차지한 프랑스의 신예 가수다. 노래하는 소녀의 성장기를 다룬 시나리오는 “노래 말고 다른 일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에머라의 마음까지 “크게 흔들었다”.
평소 영화를 많이 보는 편도 아니고, 연기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고 했지만 의외로 에머라는 영화 현장에 쉽게 적응했고, 첫 연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해냈다. 폴라의 성장담이 가족을 떠나 홀로 파리에 정착해 가수로 활동한 자신의 경험과 비슷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처음엔 모든 것이 복잡하게 느껴져서 연기도 시나리오에 쓰인 대로만 했고, 감독님의 지시만 믿고 따랐다. 3개월간 수화도 배워야 했다. 매일 네 시간씩 연습했다. 그렇지만 수화 공부가 현장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다. (웃음)” 촬영장이었던 프랑스의 작은 북부 도시 닐은 에머라가 살던 파리 중심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마을이었다. 현장에서 몇 개월간 합숙하며 에머라는 “폴라의 삶을 살았다”. “나는 도시에만 살았기 때문에 소나 닭, 토끼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무척 특별했다. 그런데 토끼는 줄기차게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 프랑수아 다미앙)를 아프게 긁어댔다. 그다지 친절한 친구가 아니더라. (웃음)” 프로 가수로 활동하는 에머라에게 오히려 어려웠던 것은 “노래를 못하는 척하는” 연기였다고.
<미라클 벨리에>로 제40회 세자르영화제 신인여우상과 제20회 뤼미에르상 신인여우상을 한꺼번에 수상하며 프랑스영화계의 기대주로 떠오른 데다 《Chambre 12》의 투어 일정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에머라는 최근 버거운 날들을 보내는 중이다. “바빠서 지난해부터 학업을 미뤄두고 있다. 소속사에선 3월이면 학교에 갈 수 있겠다고 했는데 이래서야 올가을 다 지나도록 학교에 못 가게 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하지만 이제 막 “연기에 재미를 느끼게 된” 에머라는 자부심 가득한 포부를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샬롯 갱스부르, 바네사 파라디, 마리옹 코티야르가 나의 선배다. 더 열심히 연기하고 싶다. 모두가 알다시피 프랑스의 배우들은 무척 훌륭하니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