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바쁜 손, 예쁜 손, 슬픈 손
2015-08-27
글 : 김혜리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와 <암살교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라클 벨리에>

<미라클 벨리에>의 폴라(루안 에머라)는 천상의 목소리를 지녔지만 선천성 청각장애자인 부모와 동생은 폴라의 노래가 얼마나 특별한지 알지 못한다. 자신의 가장 빛나는 부분을, 가장 사랑하는 이들과 나눌 수 없는 것만 해도 10대 소녀에게 이미 큰 짐이다. 더구나 폴라는 가족의 귀와 입이 되어 외부 세계와의 모든 접촉에 동석해야 한다. 폴라의 첫 생리 장면에서 관객은 다른 이유보다 초경도 치르지 않은 앳된 소녀가 지금까지 영화에서 목격한 그 많은 일을 했단 말인가 놀라게 된다. 다행히도 폴라의 희생은, 천사병이나 부채감이 아니라 건강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때가 오면 소녀는 가족을 향해 입술과 손가락으로 담담히 노래할 수 있다. 이제 떠난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조금씩 더 멀어질 거라고, 또한 사랑한다고.

08/12

메이킹 필름만 모아 상영하는 영화제 어디 없을까? 영화 제작과정 기록물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두부, 유조선, 바자회, 뭐든 좋다. 온갖 사물과 이벤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찍은 영화들에 헌정된 페스티벌이 열린다면 꿀단지 만난 곰의 자세로 상주할 용의가 있다. 마지막에 꼭 번듯한 두부, 유조선, 바자회가 완성되지 않아도 좋다. 결과물이 구경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뉴얼을 중심에 두고 여러 사람의 머리와 손이 효율적으로 때로는 변칙적으로 작용하는 광경은 늘 매혹적이다. 동일한 기획에 연루돼도 인간이란 필연적으로 사적인 동기를 세우고 상이한 보상을 구한다. 결코 하나가 되지 않은 채 어쨌든 하나의 결과를 산출한다. 스펙터클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산문적이고 재미있다는 표현도 딱히 들어맞지 않는 이 풍경들에는 이상한 중독성이 있다. 왜일까? 자기가 사용하는 물건의 내막과 원리를 모르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쌓인 답답함 때문이라는 모범 답안이 떠오르지만, 실은 이런 ‘풀이’나 일삼는 문과생 습성이 진짜 이유일 터다. 내 손을 써서 생필품을 만들어본 경험이 드물고, 일상을 떠받치는 각종 기계의 원리에 무지하다보니 ‘공정(工程) 영화’- 방금 멋대로 지어낸 말이다- 를 접하면 홀딱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발레단, 학교, 미술관 같은 기관(institutions)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일체의 내레이션이나 인터뷰, 자막을 배제하고 드러내는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불문곡직 압도당하는 까닭도 비슷하다. 또 한명의 프레더릭, 프레더릭 청 감독의 <디올 앤 아이>는 와이즈먼식 다큐멘터리의 보급판처럼 보인다. <디올 앤 아이>는 와이즈먼 감독이 배제하는 내레이션, 인터뷰, 주인공, 행위의 최종 목표, 클라이맥스, 피날레, 에필로그를 고루 장착하고 있으며, 패션에 관한 관객의 판타지도 적당히 충족시킨다. 회사의 창업자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영혼과 신임 디렉터 라프 시몬스의 상상적 대화를 연출한 대목은 은근한 브랜드 프로모션이기도 하다(디오르 홍보 담당과 청 감독의 프로다운 회동에서 오갔을 ‘윈윈’을 거론한 대화가 들리는 듯하다).

08/13

패션 전문가들이 들으면 어이없겠지만 <디올 앤 아이>는 “마감 앞에 장사 없다”라는 8자 성어(?)로도 요약할 수 있다. 프레더릭 청 감독은 디오르의 디렉터로 2012년 급거 부임한 라프 시몬스와 스탭들이, 8주라는 이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첫 오트 쿠튀르 쇼를 준비하고 치러내기까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장사 없다’는 표현은, 아무리 높은 명성과 큰 재능과 방대한 경험이 있다 해도, 새로 다가오는 모든 데드라인은 ‘갓 짜낸’ 번민과 과로를 요한다는 냉엄한 진실을 가리킨다. 영화의 대상들과 마찬가지로 딱 8주의 촬영을 허락받은 감독은, 파리 디오르 사옥의 지상 사무실과 지하 아틀리에를 바삐 오르내리며 세계에서 가장 ‘시적인’- 그리고 비싼- 옷들이 지어지는 산문적 절차를 찍었다. 결과물은 패션영화가 분명한데 막상 영화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피스 정치학부터 괴담까지 이야기가 만발한다. 프랑스어가 서툴고 무뚝뚝한 라프 시몬스가 디렉터로서 제대로 기능하는 데에는, 적당한 시점에 재단사들에게 꽃을 보낼 줄 아는 보좌역 피테르 물리에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미디어 노출을 완강히 꺼리던 시몬스는, 홍보팀이 “그 잡지 표지는 죽어서나 나갈 수 있다”고 말하자 “쇼 끝나고 창문 밖으로 투신할까?”라고 농담한다. 사옥의 경비원들은 마지막 문단속을 할 때 죽은 디오르의 혼령을 느낀다는 소문을 내는데 직원들은 이 유령 이야기에 격려받는다. 사람들은 크리스티앙 디오르부터 라프 시몬스까지 이어지는 수석 디자이너들을 디오르 하우스의 영혼에, 작업장에 시침핀을 물고 틀어박힌 재단사와 재봉사들을 육체에 비유할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창작에 대한 통찰을 들려주는 인물들은, 구상하고 결정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그의 결정 한마디에 밤새도록 오간자 천을 뒤덮은 스팽글을 떼어내는 손의 주인들이다. “옷 만들기란 그런 거예요. 모든 것이 납작하게 널려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훅 올라오죠.” 나는 황급히 받아 적었다. 글쓰기에도, 작곡에도, 요리에도 훌륭히 적용될 만능의 격언이었다.

08/14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성실한’ 쪽은 나라가 아니라 앨리스(수남)다. 가만? 한번 더 생각해보니 ‘나라’도 대체로 성실한 것 같다. 수남(이정현)의 남편은 성실하게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을 잘렸고, 이익이 갈려 수남의 동네 재개발을 반대하는 도철(명계남)은 열심히 시위를 선동하는 틈틈이 성실히 파지를 줍는다. 수남을 납치한 세탁소 남자 형석(이준혁)도 노모를 부양하는 성실한 자영업자고, 남편의 의사도, 수남을 쫓는 형사들도 성실해 보인다. 비극은 모두가 성실한데 세계는 성실한 방향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불성실의 원인은 고장난 시스템이건, 탐욕스러운 지배계급이건, 인생의 부조리건, 이 영화의 가시권 바깥에 있다. 역시 벼랑에 몰린 가난한 자의 행위가 불운의 연쇄와 맞물려 사태를 비화시키는 이야기를 가진 <복수는 나의 것>과 이 영화의 다른 좌표 중 하나다. 수남은 먼저 결단하거나 복수하기보다, 대응하는 인물이다.

성실함 이외에 수남의 특징은 정보 부족과 막연한 현실 인식이다. 플래시백으로 복기되는 그녀의 과거사를 보자. 수남은 집 옆 공장에 들어갈까 고등학교에 가서 엘리트가 될까를 놓고 중대 고민을 한다. 상고 진학을 대학가는 길로, 대학을 곧장 엘리트 인생과 등가로 놓을 만큼 수남에게 주류의 삶은 멀고 두루뭉술한 경치다. 상업고등학교에서도 그녀는 주산과 부기를 포함해 열 몇개의 자격증을 딸 만큼 성실했지만, 졸업해보니 생산양식이 변해 싸구려 노동력 신세가 돼버렸다. 그녀의 성실은 맹목으로 판명된다. 물론 이 설정은 비유적 표현일 것이다. 수남이 어리석어 그릇된 선택을 반복했다기보다, 여건이 열악해 실제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을 동화적 생략법으로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영화적 화법에는 암담한 현실적 조건들로부터 눈을 돌리려는 주인공 수남의 무의식과 “성실이 모든 걸 이길 거야”라는 필사적 최면이 반영됐으리라 짐작한다. 혹은 그녀가 어떻게 인식했건 간에 결과는 마찬가지라고 영화가 말하는 것 같기도 한다. 수남에게 소중한 것은, 객관적 시점의 렌즈에 잡힐 때 하찮아 보인다. 그녀가 착한 애인의 프러포즈를 받는 소중한 장면에서, 배경을 이루는 시멘트벽에는 남녀 성기에 대한 외설적인 욕설이 휘갈겨져 있다. 역(逆)의 가능성도 떠오른다. 직시한다면, 성실히 사는 일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수남이 믿기로 한 세상은 동화적이다. 몽마르트르의 아멜리에나 이곳의 수남이나 자기만의 동화적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점은 매한가지지만 결과는 사뭇 다르다. 아픈 할머니(남편)를 보살피려는 ‘빨간 두건’ 수남은 가는 곳마다 나쁜 늑대에게 잡아먹히지만 숲 밖에서 구하러 와줄 사냥꾼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어느 날부터는 번번이 스스로 늑대의 배를 가르고 나온다. 그러나 늑대의 위장 밖에 무엇이 있는가? 식물인간이 된 남편의 회복? 자살했던 그가 깨어난다면 수남 곁에 머무르고자 할까? 혹시 그녀가 바랄 수 있는 것은 남편이 깨어나지 않고 오래도록 옆에 잠들어 있는 상태 아닐까? 영화의 결말은 수남을 넓은 세상으로 전송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엔 수남의 삶이 완벽한 정지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다. 이토록 좁은 바깥이라니.

<암살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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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소녀

달의 70%를 파괴한 문어 형상의 우주 초생물(超生物)이 지구마저 박살내겠다고 예고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일본 정부는 악당의 기이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쿠누기가오카 중학교 열등생 반 담임으로 자원한 악당은 이른바 살(殺)선생으로 불리며 아이들에게 암살의 기술을 손수 가르치고 표적이 된다. ‘자율사고 고정포대양’(하시모토 간나)은 분방한 상상의 뻔뻔스런 구현이 장기인 <암살교실>의 아이템 중 하나다. 아이들의 암살기도가 여의치 않자 투입된 전학생 ‘미스 포대’는 처음에는 수업 중 중화기를 난사하지만 여론이 악화되자 인공지능 진화형 로봇답게 전략을 바꾼다. 전학생의 1차 본분에 충실하게 친구부터 사귀기로 결심한 그녀의 선택은, 엄청 유용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의 변신! 호평받은 그녀는 리츠라는 애칭을 얻고 적응한다. 얼마나 잘 섞여드는지 체육복 입고 있으면 찾아내기 힘들다. 리츠로 분한 하시모토 간나의 얼굴이 눈에 익다 싶었더니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10대 스타를 연기한 배우다. “착해서 미워할 수도 없어”라는 전작 속 대사가 이번에도 들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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