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씨네스코프] 꾸밈없는 풋풋함이 만든 첫사랑 교본
2015-09-04
사진 : 최성열
글 : 윤혜지
‘명필름 전작전: 스무살의 기억’ <건축학개론> 이용주 감독, 수지 GV

<건축학개론>의 팬인지, 수지의 팬인지? 명필름 아트센터 영화관의 객석이 가득 찼고, 화기애애한 팬미팅 분위기로 GV가 이어졌다.

관객의 열렬한 요청으로 즉석에서 <기억의 습작>을 한 소절 부른 수지. “아이, 죄송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연습해올걸 그랬어요!”

“이 배우와 뭔가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때 연출자로선 무척 고맙죠. 연기력이 만개했을 때 헤어져서 아쉬웠어요.” 이용주 감독이 다정한 감사를 전하자 수지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수지 덕에 명필름이 수지맞았죠.” 명필름 심재명 대표가 만면에 미소를 띠고 <건축학개론> 관객과의 대화(GV)에 참석한 수지를 반겼다. 8월23일, 파주 명필름 아트센터에서 명필름 창립 20주년 기념 영화제 ‘명필름 전작전: 스무살의 기억’ 상영작 <건축학개론>이 상영됐다. 뒤이은 GV엔 이용주 감독, 배우 수지가 참석했다. 심재명 대표의 진행으로 <건축학개론>의 촬영 비하인드가 낱낱이 밝혀졌고, ‘팬심’ 가득 담긴 관객의 질문도 마구 쏟아졌다. 쏜살같이 지나간 한 시간의 대화를 짧게 싣는다. 더불어 <해피엔드>(9월5일), <공동경비구역 JSA>(9월6일)를 포함한 앞으로의 일정은 명필름 아트센터 홈페이지(mf-art.kr)에서 확인 가능하다.

심재명_메인 카피가 ‘우린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다. 사실 거짓말이잖나. 어떤 이에겐 아닐 수도 있을 텐데. (웃음) 아무튼 첫사랑은 다들 왜곡해서 기억할 거라 생각하고 제작자로서 반드시 아름다운 배우를 캐스팅해야 한다는 지상과제가 있었다. 운좋게 한가인, 수지를 캐스팅해서 영화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모습을 남겼다. 배우로서 소감이 어떤가.

수지_첫 영화라 정말 애틋하다. 기억하기로만 서른번이 넘게 돌려봤다. 처음엔 연기하는 내 모습만 보이다가 나중에서야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신기했다. 다시 저런 풋풋한 모습으로 연기할 수 있을까 싶다. 다신 못 찍을 영화다.

심재명_촬영장에 교복 입고 온 수지가 기억난다. 영화 현장이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랐지만 나름대로 정성을 다했다. 스탭 모두에게 손글씨로 편지를 써서 돌렸고, ‘현장편집’이란 말을 몰라서 ‘즉석편집’이라고 말한 걸 듣고 다들 웃었다. (웃음) 제법 담대한 신인배우였다.

이용주_나중에 수지 어머니가 고맙다고 김치까지 보내 주셨다. 배우 어머니에게 김치를 받은 적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웃음) 데뷔작 <불신지옥>(2009)의 심은경과 수지가 동갑인데 둘 다 나에게 딸뻘이다보니 배우 어머니와 친해지게 되더라. 은경씨보다 은경씨 어머니랑 더 친하다. (웃음)

수지_그때 열여덟인가, 열아홉살이었는데 대학생 연기를 해야 해서 부담이 컸다. 잘해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감독님과 이제훈 선배님이 자신감을 많이 주셨다.

이용주_이른바 ‘멘탈이 강하다’고 하잖나. 수지가 그랬다. 현장이 처음이니 스탭도, 촬영도 다 낯설었을 거다. 당시 스케줄이 빡빡해서 잠도 못 자고 촬영장에 오더라. 너무 힘들 것 같아 매니지먼트에 적어도 네 시간은 재워주라고 했다. 다행히 수지의 첫 촬영은 대사가 없는 버스 장면이었고, 두 번째는 수업 듣는 장면이었다. 대사를 처음 할 때도 4, 5테이크 정도 가고 나니 그 뒤론 알아서 감을 딱 잡더라.

심재명_이건 내가 봐도 좀 잘했다 싶은 장면이 있나.

수지_“꺼져줄래?”라고 말하는 장면. 지인들이 ‘평소의 너 같다’는 말을 많이 해줬다. (웃음) 툭툭 던지듯 말하는 모습이라 그랬던 것 같다. 편하게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좋았다. 승민(이제훈)이랑 얘기하면서 걷던 장면이나 “멍멍” 하던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이용주_시나리오를 쓸 때 서연이는 원래 여리여리하고 여우 같은 여자애였다. 그런 캐릭터가 수지라는 배우를 만나 실존 인물이 되어가는 걸 보면서 마치 키우던 자식을 시집보내는 기분이 들었다. 수지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서연과 섞이면서 꾸밈없는 서연이 됐다. 군인 걸음걸이만은 고쳐달라고 했는데 끝까지 못 고치더라. (웃음)

수지_뒷모습 보이면서 걷는 장면을 정말 많이 찍었다.

이용주_많이 찍을 필요가 없는데 많이 찍게 된 장면이다. 과거 서연, 현재 서연이 가장 다른 게 걸음걸이다. 한가인씨는 발레를 해서 뒤꿈치가 땅에 안 닫는 느낌으로 걷는데, 수지는 뒤꿈치부터 땅에 닫는 느낌으로 지나치게 씩씩하게 걷는다. (웃음)

관객_두 배우가 서연이란 한 사람을 연기했다. 서로 감정을 이어받기 위해 어떤 얘기들을 나눴나.

수지_2인1역이라고 해서 꼭 같아 보여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서연이도 변했을 테니까. 다만 한가인 선배님의 촬영분을 보고 말투를 비슷하게 해보려고 했다.

이용주_두 배우에게 현장편집본을 따로 보여줬다. 한가인씨는 나중에 키스하는 장면에서 수지 손모양을 흉내냈다고 하더라.

관객_제주도에 서연 집이 지금도 남아 있다. 부지를 매입하고 촬영한 건가.

심재명_<조용한 가족>(1998)을 할 때 오픈세트를 짓고 촬영 끝난 뒤에 돌려준 게 아쉽더라. 다음에 세트를 짓게 되면 꼭 영구히 보존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건축학개론> 들어갈 때 제주도에 부지를 사서 서연 집을 지었는데 지금까지 온전히 남겨두고 갤러리 겸 카페로 운영 중이다. 첫사랑의 기억처럼 오래 남기게 된 것 같아 뿌듯하다.

이용주_이전까진 고용불안에 시달리다가 <건축학개론> 개봉 뒤에 다음 작품을 찍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웃음) 심은경씨와 수지씨 모두 촬영 당시 미성년자여서 쫑파티에서조차 술을 같이 못 마셔봤다. 올해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은경씨를 만나 술 한잔했는데 수지씨와도 언제 한번 술 한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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