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마동석] 압도하는 남자
2015-09-08
글 : 윤혜지
사진 : 백종헌
<함정> 마동석

영화 <가족계획>(촬영 중) <부산행>(후반작업 중) <함정>(2015) <베테랑>(2015) <악의 연대기>(2015) <상의원>(2014) <군도: 민란의 시대>(2014) <일대일>(2014) <살인자>(2013) <결혼전야>(2013) <더 파이브>(2013) <뜨거운 안녕>(2013) <노리개>(2013) <48미터>(2012) <공정사회>(2012) <이웃사람>(2012) <댄싱퀸>(2012) <무대는 나의 것>(2011)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 <퍼펙트 게임>(2011) <통증>(2011) <퀵>(2011) <부당거래>(2010) <심야의 FM>(2010) <인사동 스캔들>(2009) <비스티 보이즈>(2008) <천군>(2005)

드라마 <센스8>(2015) <나쁜 녀석들>(2014) <닥터 챔프>(2010) <태양을 삼켜라>(2009) <타짜>(2008) <강적들>(2008) <히트>(2007)

그때 그 ‘미키성식’이 결국 일을 쳤다. TV드라마 <히트>(2007)에서 야성적인 외양에 어울리지 않게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즐겨 입어 화제가 됐던 남성식 경장이 <베테랑>(2015)에서 아트박스 사장님이 되어 나타나 단 1분 만에 천만 관객을 ‘마요미’의 늪에 빠뜨린 것이다. 근래 본 ‘신 스틸러’ 중에서도 단연 발군이다. 마동석이 <베테랑>에서 원래 맡기로 한 역할은 다른 인물이었다. 먼저 하고 있던 작품의 촬영과 겹쳐 “안타까운 마음으로” 류승완 감독의 제의를 고사하고 “한 신이라도 불러주시면 무조건 하겠다”고 약속해 받은 역할이 아트박스 사장님이다. 덩치에 안 맞는 아기자기한 팬시숍 사장이라는 갭이 마동석을 유머러스하고 친근하게 느끼게 했다. 마동석의 이런 ‘스위트함’은 사실 <군도: 민란의 시대>(2014)나 <악의 연대기>(2015)에서도 은근하게 드러난다. 조선의 헤라클레스 천보는 어른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할 것을 강조하던 스물두살 꽃청년이었고(<군도: 민란의 시대>), 오 형사는 친형처럼 후임을 챙기던 세심한 사람이었다(<악의 연대기>). 누구든 한품에 안아줄 것 같은 그의 커다란 가슴은 든든한 보루이자 푸근한 안식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마동석의 최근 대표작은 지금까지 연기한 역할 중 가장 무시무시한 ‘야수’다. <함정>의 성철은 길도 찾기 힘든 산속에 자리한 산마루 식당의 주인이자 극악무도한 남자다. 상대방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고들어 약점을 공략한 뒤 자기 손아귀에 들어왔다 싶으면 한치 고민도 없이 잔혹하게 죽여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곰 같은 파괴력과 여우 같은 간교함이 한데 섞인 무뢰한이다. “현실에선 영화 같은 사건이 벌어져도 현실인데, 영화에선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면 영화가 아니게 될 때가 있잖나. 스릴러영화라 그 균형을 찾는 게 더 어려웠던 것 같다.” <함정>에서 그 균형감은 배우이기 이전에 기획자로서 먼저 필요했다. 마동석은 몇년 전부터 두명의 작가와 ‘Team GORILLA’라는 그룹을 만들어 영화 기획을 하고 있다. 소속사인 데이드림엔터테인먼트 내 제작파트에서 만든 <함정>에도 ‘Team GORILLA’의 이름으로 적극 손을 보탰다. “원래는 주연을 맡을 생각까진 없었기에 한번 고사했던 작품이다. 처음엔 기획에 도움만 됐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거절한 뒤에도 고민이 계속됐다. 캐릭터가 워낙 세서 갈등하다가도 이전에 연기한 악역보다 더 나쁜 악역이라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감독님이 나만큼 캐릭터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줄기차게 권유하셔서 결국 연기까지 하게 됐다.”

출연을 수락하고 나니 고민은 더 커졌다. 개인사가 전부 설명되지 않은 캐릭터라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성철은 맨손으로 닭 모가지를 비틀어 죽이는 정도는 눈 하나 깜짝 않는 남자다. 맹수 사냥이 취미요, 데리고 사는 의붓 여동생이 조금만 비위를 거슬러도 마구 손찌검을 하고, 손님방에 접대부로 밀어넣기 일쑤인 패악한 사내다. “절망이다. 관객이 성철을 보고 절망을 느끼길 바랐다. 성격이 잔혹하고 힘도 무척 센데 나름 머리까지 굴릴 줄 안다. 이기적인 나쁜 놈이다. 타인의 고통에 잘 공감도 못한다. 자기가 찔러놓고 의아해하잖나. “왜 이게 아파?” 과연 성철은 마동석이란 배우의 거센 기운을 받아 완전히 “압도적인” 인물이 되었다. 맹수를 사냥하고 닭을 잡는 장면도 마동석이 미국에 살 때 한두해 산속에서 사냥하며 살던 실제 경험을 빌렸기에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휴대폰 전파가 끊기고, 가까이에서 전혀 도움을 구할 수 없는 상태의 야생성, 이성적인 판단과 제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마주하게 되는 야만성이 성철을 더욱 위압적이고 공포스러운 인물로 만든다. 실제로 마동석이 목격한 어떤 시골 사내의 모습에서 성철의 성격을 따오기도 했다고. “술기운 때문인지 얼굴이 시뻘건 아저씨가 과도하게 친절을 베푼 적이 있다. 자기가 만든 거라며 식혜나 술 같은 맛있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강권하는데 그 맛이 또 기가 막혔다. 불편하긴 하지만 아무튼 맛있게 얻어먹는데 술은 운전 때문에 거절하니까 갑자기 표정이 바뀌며 ‘이걸 왜 못 마셔요?’ 하는 거다. 자기 호의를 거절한 데에 대한 불쾌감이 확 느껴지는데 그게 섬찟하더라. 성철에게도 그런 점이 녹아 있었으면 했다.”

다행히 그는 곧 ‘스위트 가이’로 다시 돌아온다. 얼마 전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인 <부산행>(감독 연상호)에서는 자상한 아빠이자 남편인 상화 역을 맡았다. 마동석은 “상냥하지만 싸움은 엄청 잘한다. (웃음) 전직이 좀 그렇지만 ‘내 여자’에겐 다정한 매력이 있는 남자”라고 상화를 설명했다. 막 촬영을 시작한 <가족계획>(감독 김태곤)에선 배우 주연(김혜수)의 스타일리스트 평구를 연기한다. 20년 지기인 주연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친정엄마 같은 역할”이다. “스타일리스트라고 특정한 이미지를 상상하면 안 된다. 평구는 해병대 출신에다 아이 셋을 둔 보통의 유부남이니까. 의리 있지만 터프한 느낌은 아니고, 다정다감한 캐릭터다.”

다양한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건 마동석이 ‘인생 경험치’의 폭이 넓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야구에 흥미를 붙여 야구를 시작하면 야구선수가 될 기세로 운동을 했던, 어디 하나에 관심을 두면 기어코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지만 “여러 군데에 관심을 두고, 질리도록 하고 나면 싫증내는 편이라” 직업은 자주 바뀌었다. 식당 조수, 클럽 가드, 이종격투기 트레이너, 옷 장수, 바텐더, 보디가드…. 열일곱에 미국으로 이주한 뒤 웬만한 일은 다 해본 것 같다. 심지어 지난 5월엔 싱글앨범 《B.D.T(Begin Delicious Time)》도 냈다. 다만 이건 진짜 “함정”이었단다. “광고에 나오는 노래를 직접 불러야 한다고 해서 대충 알겠다고 했는데 싱글이 나올 줄이야. 내가 평소에 매니저 얘길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들은 결과다. (웃음)” 가수로 활동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밴드에서 드럼도 오래 쳤을 정도로” 음악은 좋아하지만 음악적 재능은 “그저 노래방 보통 수준”이라며 빠르게 손사래를 치는 걸 보니. 어쨌든 가장 오랫동안 하고 있는 일은 운동과 연기다. 앞으로도 마동석은 영화인으로만 만나게 될 듯하다. “개인적 삶이라…. 영화인 아니면 운동인으로 산다. (웃음) 이만큼 안 질리는 일도 없다. 해외 배우들은 연기하면서 기획도 곧잘 하지 않나. 나도 배우에 그치지 않고 평생 ‘영화인’으로 살고 싶다. 연기가 가장 중요하지만 기획은 연기하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더라. 연출은 못할 것 같다. 그건 내 영역이 아니다. (웃음) 감독이나 제작자들에게 내가 기획한 아이템을 보여주면서 솔깃하게 만드는 데에 더 보람을 느낀다. 또 운좋게도 가까운 친구들이 대부분 매니지먼트나 제작, 연출, 작가를 하고 있어서 같은 일을 하는 파트너로서, 마음을 터놓을 지인으로서 교류하고 있다. 그것조차 다 내 복인 것 같다.” 영화인 마동석을 오랫동안 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우리의 복인 것 같다.

<센스8>

손동작도 경험으로부터

미국 생활 중 클럽 가드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미국 드라마 <센스8>에선 선(배두나)의 입장을 저지하는 가드로 출연했다. “<센스8>의 프로듀서 중 한 사람이 내가 예전에 미국 에이전시에 보내려고 만들었던 내 연기의 편집영상을 보고 역할이 작지만 출연해줄 수 있겠냐고 제의를 해왔다.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흔쾌히 출연을 약속했다.” 간단한 손동작으로 선을 가로막는 기술은 예전 경험이 십분 발휘된 덕이다. “미국의 클럽 가드는 전부 전문 경호원들이다. 그냥 서 있는 자세나 손동작 하나, 잠깐의 시선에도 전문가들만의 유형이 있더라.” 끈질긴 취재와 다양한 경험은 배우 마동석의 최대 자산이다. 영어에도 능숙해 언젠가 할리우드영화에 출연해보고 싶은 바람도 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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