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드센 여자들이 보여주는 농어촌 리얼 라이프 <돼지 같은 여자>
2015-09-09
글 : 이주현

“우리 동네는 여자가 드세다.” 영화는 이같은 소년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드센 여자들이 모인 동네는 한때 갈치잡이가 흥했던 어촌. 학창 시절 끝에서 1, 2, 3등을 사이좋게 나눠가졌던 재화(황정음), 유자(최여진), 미자(박진주)는 각자의 이유로 마을을 지키고 있다. 재화는 알코올중독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돼지 키우기에 여념이 없고, 유자와 미자는 마을의 유일한 총각 준섭(이종혁)을 차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준섭의 마음은 재화에게 향해 있지만, 질투의 화신 유자는 막무가내로 준섭의 입술을 훔치고 구애작전을 펼친다.

<돼지 같은 여자>의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이 전개된다. <마파도>(2005)의 젊은 여성 버전처럼 흘러가는가 싶다가, <삼시세끼> 같은 농어촌 리얼 라이프를 보여주는 듯했다가, 아름다운 여수 바다를 배경으로 한 시골 로맨스 분위기도 냈다가, 결국엔 치정극으로 마무리된다. 혼란스런 전개가 적잖이 당황스럽지만 감독은 매끄럽지 않은 서사를 캐릭터의 개성으로 돌파하려 한 것 같다. 생활력 강한 재화, 좋아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선 물불 안 가리는 유자, 재화에게 붙었다, 유자에게 붙었다, 기회주의자적 모습을 보이는 미자까지, 캐릭터의 역할 분담은 분명해 보인다. 배우들은 각자의 장기를 잘 살린다. 특히 최여진의 코미디 연기가 눈에 띈다. 돼지 오물을 뒤집어쓴 채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모습이라든지, 질투심에 휩싸여 식칼을 들고 질주하는 모습에선 광기가 제대로 느껴진다. 황정음의 남동생으로 출연하는 청소년 배우 김우석은 의외의 발견이다. 다만 남자주인공 준섭은 여성 캐릭터의 기에 눌려 줏대 없이 휘청이기만 해 아쉽다. 얼핏 여성에게 주도권을 쥐어주는 영화처럼 보이지만, 발정난 돼지를 바람난 여자에 빗대는 농담이나 남자 때문에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여성 캐릭터들, 그리고 씁쓸한 결말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행복한 장의사>(1999), <바람피기 좋은 날>(2007)을 만든 장문일 감독의 오랜만의 연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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