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 x cross]
[trans × cross] “무대에 올라 연기하는 내가 가장 나답다”
2015-09-14
글 : 김현수
사진 : 최성열
연극 <택시 드리벌> 김민교

김민교는 <SNL 코리아>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그는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93학번으로 김수로, 이종혁, 임형준 등의 동기들과 대학로 무대부터 차근차근 시작한 배우다. 그런데 아직도 그를 개그맨으로 아는 사람들이 더 많은 듯하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확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조만간 방영을 시작하는 <SNL 코리아> 시즌6에서는 아쉽게도 그를 볼 수 없지만 9월1일 막이 오른 연극 <택시 드리벌> 무대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여러 편의 영화 촬영도 겸하고 있다. 연극뿐만 아니라 영화로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그는 이때를 기다려왔다는 듯 꽁꽁 숨겨왔던 배우로서의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그의 스케줄이 더 바빠지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자 스튜디오로 배우 김민교가 걸어들어왔다.

-어제(9월1일) <택시 드리벌> 첫 공연을 마쳤다.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복귀했다.

=<SNL 코리아> 시작하면서 무대를 떠났다가 3년 만에 다시 컴백했다. 어릴 때 연극 무대에 올라가면 인기 많은 배우가 되어 있는 모습을 혼자 상상해보곤 했다. 그런데 어제 무대 위에 불이 켜지는 순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데도 관객 반응이 느껴져 기분이 묘했다. 벌써 웃기 시작하고. (웃음) 내가 상상해왔던 모습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연극 무대를 떠나 있었던 건가.

=방송에 올인하기도 했고 사실 그 이전까지는 때가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던 중 수로 형의 설득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재미있는 게 김수로 프로젝트 1탄 <발칙한 로맨스>가 나의 연출작이다. 그때 당시 대학로에서 19금 코미디를 처음으로 시도한 작품이었다. 아직은 한국에서 시기상조라며 아무도 안 될 거라 했다. 이후 <SNL 코리아>가 방영되면서 대학로에 19금 코미디 붐이 일기도 했다.

-그때 이미 <SNL 코리아>의 전신을 만들었던 셈이다.

=<SNL 코리아> 시즌2에 합류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장진 감독과 마주쳤는데 지금 뭐하냐고 묻기에 딱히 하는 게 없다고 하니까 오라고 하더라. 여하튼 방송하는 동안 <발칙한 로맨스> 때 축적해놨던 19금 코미디에 대한 아이디어가 제대로 구현된 셈이다. 장진 감독과는 <킬러들의 수다>(2001)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연을 맺은 후 <SNL 코리아>를 거쳐 최근 작업한 TV영화 <바라던 바다>까지 함께했다.

-<SNL 코리아>를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어떤 이유로 참여하게 됐나.

=(잠시 한숨) 내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데다 사기를 크게 당했다. 어머니와 아내가 있는 집으로 빚쟁이들이 찾아오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바닥을 쳐보니까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열심히 했다.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 서면서 자존심처럼 지켜왔던 게 하나 있다. 당시 많은 배우들이 아동극을 겸하면서 돈을 벌었는데 나는 고귀한 연기를 배워서 왜 낭비하느냐며 아동극 탈을 단 한번도 안 썼다. 그런데 <SNL 코리아>에 들어가 여의도 텔레토비 탈을 쓰고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거다. (웃음)

-얼굴 근육 곳곳을 자유롭게 움직일 줄 안다. 그리고 특히 눈을 즐겨 활용한다.

=솔직히 표정 연기를 연습해본 적이 없다. 연극할 때도 큰 눈 때문에 득을 봤다. 남들보다 몇배의 감정을 실어나를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순간 뒤집기, 즉 갑작스런 감정 전환 연기에 굉장히 강하다. 펑펑 울다가 갑자기 웃는다거나, 울면서 웃는 연기 등을 잘한다. 그런 연기를 <SNL 코리아>에서 많이 활용했다. 연극 무대에서는 진중한 연기를 주로 보여주곤 했다. 지인들은 아직도 내가 사람들을 웃게 만들면서 뜰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한다. 스스로 내 얼굴을 한계라 여길 때도 있다. 내가 알 파치노 같은 배우의 표정을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SNL 코리아> ‘GTA’ 코너의 인기도 빼놓을 수가 없다. 누구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나.

=종종 배우들이 자신의 게으름을 포장할 때 ‘이게 다 연기인생에 도움이 되는 거야’라는 말을 하곤 한다. 예전에 공연하다가 십자 인대가 끊어져서 1년6개월 정도 쉬었는데 그때 게임에 빠져 폐인 생활을 했다. 같이 살던 친구가 컴퓨터를 부수겠다고 협박할 정도로 심하게 매달려 1년이 지나고 나니 웬만한 온라인 게임에서 죄다 상위권에 올라 있었다. 그때 경험이 코너 짜면서 정말 유용하게 쓰였다. 그 코너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고 광고도 찍었다. 당시 게임에 빠진 내게 화를 냈던 32년지기 친구는 내 권유로 우리 기획사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김수로, 강성진, 박건형을 비롯해서 아무리 친한 사이더라도 오랫동안 공적 관계를 유지하며 작업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술을 좋아해서일까? 사실 의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어린 시절, 나를 뒤흔들어놨던 영화가 유덕화, 알란탐의 <지존무상>(1989)이다. 그 영화 때문에 의리 지킨답시고 탈선도 하고 분주하게 살아왔다. (웃음) 아무튼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매니저 친구도 그래서 오랫동안 함께하고 있고. 형들도 마찬가지라서 이제는 웬만한 단점은 그냥 덮어준다.

-군대에도 잘 적응했을 것 같다.

=생활보다는 배우로서 이 기간 동안 연습을 안 하면 뒤처지겠더라. 정체되는 게 싫은 불안감에 군가를 부를 때나 관등성명을 대는 순간을 발성 연습으로 활용했다. 함께 지내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보이는 모든 것을 연기하는 상황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나왔더니 발성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복학하고 첫 무대에 올랐는데 교수님들이 내 목소리만 들렸다며 칭찬을 해주시더라. 그렇게 자신감이 생기니까 더욱 신나서 연기했던 것 같다.

-어제 섰던 무대와 대학 복학 후 섰던 무대는 어떻게 다르던가.

=잘난 척은 아니지만 늘 자신감을 가지려고 한다. 이렇게 힘든 환경에서 버티려면 나라도 나를 믿어줘야 하지 않을까? 기회만 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입한다. 어제 섰던 무대는 그동안 갈고닦아왔던 자신 있는 것들을 펼쳐놓았고, 지금까지의 삶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합기도 유단자다. 액션 연기에 대한 욕심은 없나.

=제대하기 전까지는 합기도 선수와 사범 생활도 겸했다. 지금은 외모가 액션 배우의 그것이 아니라 불러주지 않는 것 같고. 지금도 내게 여전히 액션 연기를 권하는 딱 한 사람은 <점쟁이들>(2012)의 신정원 감독이다. 우리가 이십대 후반일 때, 그가 처음 사비를 들여 장편독립영화를 찍는다며 나를 섭외한 적이 있다. 좀비영화였는데 내가 무술로 좀비를 때려잡는 주인공을 연기했다. 그때 이후로 아마 20kg 정도 쪘을 거다. 신 감독은 지금도 만나면 언제 한번 액션영화 같이 하자고 이야기한다.

-현재 촬영 중인 영화도 간략하게 소개해달라.

=박광현 감독의 <조작된 도시>에서 살인 누명을 쓰고 위기에 처한 게임 마니아 권유(지창욱)를 돕는 게임 모임 회원 용도사 역을 맡았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일해서 아이디가 용도사인데 같이 연기하는 김기천 선생님, 심은경, 안재홍 등 오합지졸 멤버들과 힘을 합쳐 주인공을 돕는다. 일종의 코믹 액션 분위기가 강하다.

-아무래도 <조작된 도시>가 본격적으로 스크린에서 연기를 보여줄 첫 영화나 다름없다.

=어느 영화든 열심히 해왔지만 이제 조금 뭔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늘 동경해왔고 기대하던 현장 분위기와 역할이다 보니 초심으로 임하고 있다. 늘 꿈꿔왔던 나의 모습이니 이제 시작이다.

-10월에 또 다른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고.

=신태라 감독의 신작 <바운티 헌터스>에 출연한다. 얼마 전에 크랭크인했고 나는 10월부터 촬영한다. 한•중 합작 액션 코미디라 규모가 꽤 크다고 들었다. 제주도와 홍콩, 마카오, 타이 등을 오가며 촬영한다. 내가 맡은 역할은 이민호를 옆에서 도와주는 약간 반전 있는 조력자다.

-마지막 질문이다. 김민교에게 연기란.

=이십대 때는 연기가 숙제나 도전 같았고 잘하고 싶다는 의지가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연기하는 순간에 거짓말을 하지 않고 믿음을 가지니 되더라. 때론 연기할 때가 인간 김민교로 살아가는 순간보다 편할 때가 있다. 현실에서는 고민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누군가의 비위를 맞춰야 하고 예의를 차려야 하고 안 아픈 척해야 하는 등 거짓을 안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연기할 때는 그 순간만 진실하게 임한다면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 마치 고등학생 때 어른들이 공부만 할 때가 제일 편한 시기라고 하는 것처럼 딱 그런 편안함을 느낀다.

김수로 프로젝트 12탄 <택시 드리벌>

장진 감독의 오리지널 연극 <택시 드리벌>을 김수로 사단 버전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이야기 골격은 원작을 유지하되 시대상을 반영한 에피소드 등을 덧붙였다. 장진과 김수로의 유머 스타일도 확연히 달라 원작을 본 관객도 새롭게 즐길 요소가 많은 것이 특징. 과거에는 택시를 테이블과 박스 정도로 표현하면서 배우들의 연기에만 집중하게 했다면 지금은 무대 위에 진짜 택시를 올리고 프로젝터를 이용해 배경 영상을 스크린으로 상영하는 등 마치 영화가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온 듯한 효과를 연출한다. 김민교와 박건형, 김도현 등 세 배우가 주인공 장덕배를 연기하고 김수로, 강성진을 비롯해 배우 남보라도 함께 참여한다. 11월2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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