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유]
[who are you] 맨 얼굴에 담긴 야생적인 무구함
2015-09-15
글 : 윤혜지
사진 : 최성열
<함정> 지안

영화 2015 <함정> 2013 <늦은 후…愛> 2013 <48미터>

드라마 2009 <2009 외인구단> 2007 <뉴하트>

“지안은 못해도 민희는 할 수 있다.” 같은 사람이 연기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함정>의 민희와 배우 지안은 달랐다. “남의 남편과 잠을 자고, 곤계란을 손으로 까주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웃음) 그런데 그게 민희의 삶이라면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되어야 했다.” 화재로 목소리를 잃은 민희는 의붓오빠 성철(마동석)에게 잡혀 살며 잘못된 예의와 빠른 체념을 몸으로 배워온 여자다. 오빠의 폭력에 의심도 저항도 하지 않으며, 다른 여자의 남편과 동침할 것을 강요받아도 그것을 그 남자에 대한 예의로 생각하고 정성을 다한다. 야생에 가까운 삶을 살다보니 동물 내장과 사체를 맨손으로 만지는 데도 익숙하다. 민희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단지 청초한 여자배우가 억척스러운 연기를 잘해내서가 아니라, 제도와 윤리에 상관없는 삶을 살아온 야생적인 무구함을 맨 얼굴에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잃은 설정도 민희의 신비로움을 부각시킨다. 촬영 전 지안은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삶을 알기 위해” 평상시에도 말을 하지 않고 다녔다. 전화가 올 땐 문자메시지로만 답했고 매니저도 없이 혼자 다녔다. 사고로 목소리를 잃은 경우를 연구해 비슷하게 소리를 내보려고도 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어느 날은 언니와 쇼핑 중에 언니가 ‘네가 말을 못하니까 점원이 너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 가게를 나가기 전에 점원에게 주차권을 어디서 받아야 되느냐고 물었더니 점원이 비명을 질렀다. (웃음)”

표정부터 기운까지 민희와 지안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하나 비슷한 점이 있다.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는 것. 준식(조한선)은 깨진 유리컵 조각을 치우려는 민희를 위험하다며 만류한다. 소연(김민경)은 상처난 민희의 발에 밴드를 붙여준다. 실상 호의랄 것도 없는 당연한 반응임에도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처음 실감했을” 민희에게는 그것이 대단한 호의로 받아들여진다. 그 사소한 제스처마저도 민희에겐 낯선 것이기 때문이다. 지안도 작은 호의를 큰 감동으로 받을 줄 안다. “교회 아동부 선생님으로 지낼 때 하루 100원을 용돈으로 받는 아이가 그 돈을 꼬박꼬박 모아 머리핀을 선물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금세 눈물을 글썽인다. 이야기를 들어줘 고맙다며 미주알고주알 속내를 꺼내놓는 모습만 보아도 쉽게 마음을 나누고 잔정이 많은 사람임이 짐작된다.

오랜 공백을 깨고 복귀한 작품이기에 <함정>은 지안에게 더욱 특별하다. 유치원 선생님이 될 생각이었던 지안은 2003년 미스춘향선발대회에서 진을 수상하며 연예계에 입문했다. 매니지먼트가 문닫는 등 악재가 겹쳐 연기를 그만둔 뒤엔 언니의 웨딩슈즈 업체를 함께 운영하며 지냈다. 사업이 잘돼 생활은 풍족했지만 본업을 팽개쳤다는 죄책감을 항상 마음에 뒀다. 연기가 하고 싶어지는 때가 왔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모교의 교수님께 전화가 왔다. ‘미스 춘향! 아직도 그러고 사니? 왜 재능을 그냥 썩히고 있느냔 말이야!’ 그러시며 <함정>의 오디션 정보를 알려주셨다.” 새 삶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이름도 본명 임유진에서 지안으로 바꿨다. “‘지혜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돼라’며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일이 잘 풀리려는지 시나리오도 8개나 들어왔다고. 다시 찾아온 기회를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중이란다. 그의 깨끗한 얼굴에서 우린 또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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