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또각또각, ‘배우’에의 끝없는 워킹, <말레나>의 모니카 벨루치
2001-03-16
글 : 이영진

그녀가 저만치서 걸어온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한발 내디딜 때마다 육체의 선이 잠시 흔들린다. 하지만 또각또각 울리는 구두굽 소리에 더 끌린다. 묘하다. 청각만으로도 와락 안기고 싶은 충동을 일게끔 하는 여인의 정체는 뭘까. 모니카 벨루치(33). 적어도 남성의 상상 속 조형물과 일치하는 자태를 지녔다. 그게 이유다. 모니카에 눈먼 이는 <말레나>의 열세살짜리 꼬마 레나토뿐만이 아니다. 감독 또한 모니카의 관능세례에 흠뻑 취해 흐느적거린다. 아니라고 잡아뗄지 모르지만, 필름은 순진한 감독을 대신해 고해성사한다. 고상함 떠느라 식은땀나는 이들에게 슬쩍 끼워준 면죄부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어쨌든 그녀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손가락질과 우악스런 채찍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모니카에 대한 흠모의 감정이 극대화되고 연민의 분비가 그칠 줄 모른다면, 1940년 시실리로 떠나 분통을 터뜨리는 레나토의 돌팔매질을 돕고 볼 일이다.

말레나처럼 모니카도 고향을 떠나 돌아다녀야 했다. 이탈리아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역할이란 많지 않았으니까. “<라 리파>를 비롯해 5년 넘게 찍은 영화들은 모두 모델로서 내 ‘몸’이 선택되어 찍은 영화들이죠. 스스로를 뛰어넘지 못하고 한참을 제자리에 머물렀던 것 같아요.” 96년 질 미무니 감독의 <라빠르망>에서야 사람들은 이방인의 속살을 훔쳐보는 대신 배우를 향한 그녀의 열정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가만히 있는데 감독이 ‘바로 당신이군요’ 했겠어요? <도베르만>도 그렇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어서 제가 먼저 다가갔어요. 그 작업의 일부가 되고 싶었으니까.” ‘연기를 향한 끝없는 워킹’으로 모델의 꼿꼿한 허리만큼이나 강했던 그녀의 자존심은 서서히 회복되는 중이다. 현재 촬영중인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 외에도 연인 뱅상 카셀과 함께 <늑대의 약속> 등에 출연할 것으로 알려진 그녀. 최근 <매트릭스2>에 캐스팅될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도 심심찮게 나온다. “전 영화를 숭배해요. 그러니 아직 초보자에 불과할 따름이죠.” 겸손이 콤플렉스가 아닌 자신감에서 나온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녀를 조금도 가만있게 하지 않을 구애가 뒤따를 것임은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말레나와 모니카 | 시기심은 40년대 시실리만의 일은 아니다. 나 역시 그처럼 조그마한 마을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녀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시대의 산물이다. 그때 여자들은 오직 누군가의 아내이거나 딸로서만 존재했다. 그런데 말레나는 그저 그녀 자신으로 존재했고 그것이 시기를 샀다. 나 역시 남자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여자들이 날 때리는 장면을 찍을 때는 며칠간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갈됐다. 그러나 가장 힘든 장면은 구타당하는 장면이 아니라 잃어버린 품위(dignity)를 찾기 위해 고향에 돌아가는 장면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 여자들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말레나는 그저 “안녕하세요”(Bon Jorno)라고 말했을 뿐이다.

미 |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신체가 부자유스런 이들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문제일 뿐이다. 아름다움이란 내일이면 저 멀리 떠나버리는 뭐 그런 것이다. 늙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차피 미의 기준은 달라지는 것이니까.

사진 유로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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