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남도에서 상경하여 박봉으로 소문난 업계에서도 평균을 밑도는 월급을 받으면서 어찌된 일인지 서울 시내 다가구 주택 소유주가 된 동료가 있었다. 서울 생활 20년, 그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절대 지갑을 열지 않아 ‘이 첨지’(첨지라고 하면 왠지 얄밉게 들려서 이 첨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출판사 디자이너 이씨는 열살 어린 부하 직원이 커피를 사러 가면 어떻게 알았는지 컵을 들고 따라가 절반을 갈취했고, 평일엔 구내식당에서, 주말엔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으며 부족한 단백질은 법인카드를 쓰는 야근 저녁이나 회식에서 3인분을 한꺼번에 먹으면서 보충했다.
그는 일도 열심히 했다. 월급이란 어차피 노는 이에게나 일하는 이에게나 공평한 것, 그러니 회사 일은 대충 하거나 부하 직원에게 떠넘겼고, 그렇게 남는 시간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법인카드로 저녁을 먹곤 했다. 그러다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놀러 나가기 전에 옷 갈아입으러 돌아온 사장에게 들키면… 예쁨받았다, 밤낮없이 일만 한다고. 그처럼 성실과 근검절약으로 한세월 살아온 그를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성실한 나라의 리처드’라고 부르자.
때리는 깡패만 아니라 맞는 깡패도 조심해야
성실한 리처드가 엄청난 대출을 떠안고 건물을 산 건 재개발 소문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문이 현실이 되어 서른두평 아파트에서 강아지 키우며 사는 리처드의 꿈이 이루어지려는 찰나, 방해물이 나타났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집 없는 임대인들하고 동네 떠나기 싫은 토박이 노인네들. 짜증나 죽겠어.” 재개발 찬반 투표를 앞두고 리처드는 이를 갈며 다시 밤낮없이 일하기 시작했다. 플래카드와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시위를 조직했으며, 새벽까지 숨죽이고 기다렸다가 재개발 반대파가 집집마다 뿌린 유인물을 도로 거둬들였다. 재개발 유치의 선봉에 섰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경숙(서영화)처럼, 그는 의지에 불타올랐다. 자기 집에 사는 세명의 세입자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성실한 나라의 리처드, 그는 과연 악덕 집주인인가.
‘운동권’이라는 단어가 남아 있던 옛날 옛적 전설의 시대엔 철거가 무조건 나쁜 거라고 믿었다. 혹시 그런 게 아니더라도, 세상에서 제일 나쁜 건 철거 깡패가 분명했다. 전경도 봐주는 게 있고 백골단도 인정이 있는데, 얘네가 제일 독해. 엄청난 노안이어서 스무살 시절부터 집회 나갔다가 머리채 잡힐 때면 “넌 집에 나 같은 누나도 없냐!”며, 넌 집에 어미 아비도 없냐와 비슷한 강도의 진상을 부리며 도망치곤 했던 대학 동기도, 철거 깡패를 만나면 “넌 집에…”까지밖에 못한 채 쌍욕을 들으며 질질 끌려다녔다. 역시 월급보단 수당, 일한 만큼 받는 사람들이 제일 열심히 일하지.
그런 깡패들하고 맞붙으려면 뭘 해도 어설픈 대학생이 아니라 무등산 타잔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건가. 제목이 정직하기 그지없(거나 그럴싸한 제목을 지으려는 일말의 성의도 보이지 않)는 <무등산 타잔, 박흥숙>, 스물 갓 넘은 나이에 웬만한 한의사 부럽지 않은 의술을 지니고 있으며 어디서 배웠는지 무술은 성룡 뺨치는 데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고등고시를 단번에 통과할 정도로 학문까지 출중한 불가사의한 청년. 하지만 철거 깡패의 근성은 타잔이 부럽지 않아 (대한민국 조폭계에 최초로 사시미칼을 도입한 것이 광주 깡패라는 설이 있다) 그 정도 맞았으면 집에 갈 만도 한데 끝끝내 버티다가 피바람을 부른다.
하지만 때리는 깡패만 조심해선 안 된다, 맞는 깡패도 조심해야 한다. 맞는 게 직업인 <통증>의 남순(권상우)은 누가 돈을 주느냐에 따라 노조 편이 되기도 하고 재개발 사업주 편이 되기도 한다. 돈 주고 고용한 깡패가 (아니, 엄밀히 말해 깡패가 아닌 거 같긴 하지만) 맞기만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겠지만, 그게 바로 자해공갈, 철거민한테 맞았다고 드러누우면 판이 바뀌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다. 그래서 어느 선배는 누구를 물리치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잡혀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역설하며(브랜드 청카바 입은 강남 백골 품에 안기면 잘사는 동네로 끌려가 백반 대신 설렁탕을 먹게 된다고) 어차피 폼으로 들고 나가는 쇠파이프, 민중에게는 얻어터지는 모습을 주로 보이고 파이프는 고이 숨겨두었다가 재활용이라도 하라고 가르치곤 했다.
깡패보다 무서운 단전과 단수
그런 깡패보다도 무서운 것이 있었다. 단전과 단수다. 평소 겁이 많고 잘 넘어지는 데다 100m를 20초에 달리면서도 400m만 달리고 나면 완벽하게 방전이 되는 탓에 절대로 철거촌 집회엔 나가지 않았던 나는 오늘만은 깡패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한번 따라가봤지만, 그곳에서 꿈에라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을 겪었다. 물이 나오지 않는 수세식 화장실은 1년 묵힌 재래식 화장실보다 무서운 거였어. <트레인스포팅>을 보면 세상에서 제일 지저분한 화장실이 나오던데 이 동네 한번 와보라 그래. 다시는 그 화장실에 갈 수가 없었던 나는 생존권이고 투쟁이고 몽땅 집어치우고 달아났다, 깨끗한 물이 쏟아지는 나의 화장실을 향해.
그 기억을 품고 <1번가의 기적>을 보니 기적은 다른 게 아니었다. 주민들을 모두 몰아내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들어온 철거 깡패 필제(임창정)는 누굴 생각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불편해서 본분을 망각하고는 철거촌에 수도를 끌어오고 인터넷을 연결하는 기적을 창조한다. 그냥 놔뒀으면 나처럼 못 견디고 떠나는 사람들이 생겼겠지만, 철거 깡패도 살아야 하며, 철거 깡패도 나름 건설 노동자다. 그러다 정들어 깡패짓도 못하고 1번가를 떠나니, 싸우다 정드는 것 또한 철거민의 무기가 될 수 있겠지만 현실에선 그거야말로 기적일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성실한 리처드는 재개발 투표에서 승리했을까. 평소 행실과 다르게 재개발 찬성 위원들의 생일까지 챙기며 분투했던 그는 재개발이 무산으로 돌아가 쓸쓸하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은행 대출금을 갚고 있다. 권리금도 못 받고 쫓겨났을 상인들을 생각하면 잘된 일이겠지만, 나를 따라 유기동물 보호소에 가봐야겠다며 좋아하던 리처드를 떠올리면 안쓰럽기도 하다. 재개발 직후 선거에서 그는 부장 이하 회사 직원들 중 유일하게 ‘그 당’을 찍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의 원한을 이해했다, 용납하진 않았지만.
얼굴 맞대고 사는 사람이 재산
물도 전기도 끊긴 철거촌에서 그래도 힘이 되는 두세 가지 것들
화장실
<특별시 사람들>은 강남 최고 부촌 바로 옆에 있었던 판자촌에서 찍은 영화다. 그 영화의 촬영현장에 갔던 나는 오래전 그날처럼 다시 화장실에 가고 싶었고, 꿈에서라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길을 갔으며, 정작 화장실엔 가지도 못했다. 나를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철조망 앞으로 데려간 영화사 직원은 말했다, 저 길 끝에 화장실이 있어요. 하지만 손전등 어플도 없던 시절, 무릎까지 오는 수풀을 헤치며 진창길을 걸어도 걸어도 화장실은 나오지를 않고, 가까운 어딘가에선 개들이 맹렬하게 짖어대서 무서웠던 한밤중, 나는 벌판 한복판에서 모든 걸 포기했다. 그렇다, 노상방뇨, 그 나이에, 맨 정신에. 씻는 것도 중요하지만 싸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슬픈 밤이었다.
눈썰미
<소수의견>의 박재호(이경영)는 아들을 죽인 사람이 철거 용역이 아니라 경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옷이 거의 똑같은데 어떻게? (아니 그전에 도대체 옷은 왜 비슷하게 입고 다닌단 말인가, 경찰이랑 깡패가 사이좋게, 동호회도 아니고.) 철거촌에 오는 깡패들이 날마다 같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는 깡패들의 얼굴과 별명을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옛날엔 경찰은 경찰이고 깡패는 깡패여서 깡패한테 맞느니 경찰 품에 안길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웃 사람
옥상에서 이불 빨래하며 정분을 나누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에서 그랬듯, <1번가의 기적>에서도 철거 용역과 철거민 아이들은 서로 물을 뿌리며 사랑을 꽃피운다. (그러니까 단수란 더더욱 치명적인 법.) 그렇게 안면 트고 정든 사이에 매정하게 굴 수는 없어 철거 깡패가 철거 깡패랑 싸우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내가 발버둥을 치면서도 철거촌에 끌려간 것도 거기가 우리 옆동네여서. 벽이 허물어진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철거촌에서는 얼굴 맞대고 사는 사람이 재산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서로를 등지게 만든다면 그것 또한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