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백현진, 방준석] “어른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한다”
2015-11-18
글 : 이화정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듀오 프로젝트 ‘방백’(bahngbek) 백현진, 방준석
백현진과 방준석(왼쪽부터).

백현진과 방준석, 이들이 듀오 프로젝트 ‘방백’(bahngbek)이란 이름으로 12월 초 앨범을 발매한다. 백현진은 페이스북에 ‘여러분의 관심이 특별히 없더라도 앨범은 발매되오니 이 점 널리 양해를 구한다’는, 역시나 백현진다운 까탈스러운 포스팅으로 이 소식을 전했다. 홍대 제비다방에서 열렸던 공연의 유튜브 영상을 하염없이 리플레이하던 이들은, 둘이 함께 부른 <학수고대했던 날>의 가사만큼 눈이 빠지도록 이 소식을 기다려왔을 터. 내년 1월3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리는 앨범 발매 기념 공연 <너의 손>도 예매창이 열리자마자 호응이 뜨겁다. 90년대 중반 방준석이 ‘유앤미 블루’ 활동을 하던 시절부터 친분을 쌓았으니 둘은 벌써 20년 지기다. 듀오를 결성한 건 처음이지만 둘은 뮤지션으로 함께한 세월만큼이나 서로 곁에 두고 말이 통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음악 작업뿐 아니라 미술, 영화계를 오가며 전방위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백현진은 지난해 어어부 프로젝트 4집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을 발표했고, 얼마 전엔 영화 <경주>(2014)와 <특종: 량첸살인기>(2015)에 배우로 출연해 주목받기도 했다. <텔 미 썸딩>(1999)을 시작으로 이준익, 류승완, 최호 감독 작품의 영화음악을 도맡아온 방준석은 <베테랑>과 <사도>의 음악으로 한동안 뜸했던 작업을 재개했다. 각자의 활동에 매진해오던 두 뮤지션이 하고 싶은, 본격적으로 함께 들려주고 싶은 노래는 무엇이었을까. ‘방백’의 음악이 궁금해 경기도 김포에 있는 방준석의 작업실을 찾았다. 이미 함께한 작업물인 제주 4•3 헌정 앨범 《없는 노래》와 영화 <경주>의 O.S.T <사랑>의 선율에서 힌트를 찾아보려 했지만, 둘은 아직 ‘스케치’에 불과하다는 이번 곡들이 지난 협업과는 온전히 다른 형태일 것임을 강조한다. 장르라는 차원을 넘어서 그들은 이번 결과물이 뮤지션으로, 또 이 사회를 구성하는 이로서의 어떤 책임에 가깝다고 말한다.

-방준석과 백현진이 함께하는 첫 앨범 작업 중이다. 함께한 공연이나 작업물들을 보면서 이미 몇년 전부터 앨범이 나오기를 기다려온 팬들이 많았다.

=백현진_솔로 앨범 《반성의 시간》(2008)을 내기 전까지는 (방)준석이 형이 공연 파트너로 함께해줬다. 백현진의 공연을 함께해주는 기타리스트로 링크되어 쭉 온 거고, 앨범 내고도 그렇게 움직이다가 언젠가부터는 ‘백현진 with 방준석’으로 갔다. 그렇게 그사이 둘이서 라이브하면서 다져놓은 곡들이 있는데 제법 양이 되더라. 그런데 이번 앨범은 기존에 우리가 같이한 것과는 형태가 굉장히 다를 거다. 말하자면 ‘방백’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음식점을 차리는 거다. 서빙하는 음식도 다 다른 거고. 어쨌든 즐겁게 만들어보려 하고 있다.

방준석_함께 작업한 건 굉장히 오래됐다. 공연 잡히면 당일에 연습해서 하기도 하고, 그때그때 어떻게 할지 모르고 해왔다. 나중에 공연 기록 보면서 오늘 공연 어땠네, 알게 되는 거다. 그런 기간이 물리적으로 상당히 흘렀다. 그 메커니즘에 재미를 느끼는 것도 있지만, 이젠 우리 작업들이 기록이 되어도 좋은 시점이지 싶었다. 그걸 어떻게 기록할지가 중요한 거지. 우리 둘 모두 음악을 오래했다. 그런 측면에서 음악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에 싫든 좋든 한번 진중하게 접근해보자 싶었다.

-프로젝트명 ‘방백’(bahngbek)은 어떤 의미에서 나왔나. 방준석의 ‘방’, 백현진의 ‘백’을 딴 것만으로는 좀 설명이 부족하고.

=방준석_우리가 이 밴드로 계속 작업할 것도 아니고 프로젝트명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냥 ‘백현진+방준석’으로 할까 했는데 ‘정태춘, 박은옥’ 하면 프로덕트 네임이 되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더라. 그때 현진이가 우리 이름의 글자를 딴 방백의 의미를 떠올렸다. 연극의 ‘방백’이라고 하자고. 인물이 말을 하지만 무대 위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고 관객만 들을 수 있는 대사가 방백이다. 우리가 지금 하려는 작업과 연결지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이름이겠더라.

-본격적으로 작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인가.

=백현진_20년간 어어부 프로젝트로 공연해오면서 일종의 ‘멘델’ 전법으로 일을 해왔다고나 할까. 내 볼일을 내가 본다. 독립적으로. 옆집에서, 학계에서 어떻게 보든. 굳이 정리하자면 나는 그런 태도로 임해왔다. 그런데 ‘방백’을 통해서는 다른 일을 볼 수 있겠구나, 최근에 그런 마음이 구체적으로 확 다가왔다.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고 스스로 어떤 마음인지 몰랐다. 이번엔 일종의 대중음악을 해보자는 마음이다. K팝이 대중음악이고 가요이고 코리안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하는 음악도 가요, 대중음악, K팝 카테고리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우리도 가요를, 대중음악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거다.

방준석_왜 대중이 중요한지 생각해보면, 작업을 하면서 ‘소통’이라는 이슈가 항상 존재했었다. 유앤미 블루도 하고 어어부 프로젝트와도 작업하면서, 음악이라는 게 내놓는 순간 공유된다는 걸 알아왔다. 지금까지는 나만 봐왔는데 지금은 ‘대상’이 유효해졌다. 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거나, ‘제발 내 목소리를 들어줘’ 같은 갈증에서가 아니라 마음을 써서 만들고 그걸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다. ‘손님을 많이 받겠습니다’, 그건 아니다. 많이 오면 좋지. (웃음) 하지만 그게 목적이 아니라 잘 가져가게 하겠다는 마음이다. 그렇다고 <가요톱10>에 나가려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안 나갈 건 아니다. 경계가 없어지니 편해진 거다.

-지금의 K팝에 대한 쓴소리로도 들린다.

=백현진_지금의 산업을 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대중문화 정책 이후 연예산업 자체가 퇴폐적인 것을 좇으며 완전히 망가진 건 사실이다.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장현, 신중현, 펄시스터즈가 그전 시절엔 다 대중가요였다. 지금은 뮤지션들이 다 연예인, CF모델이다. 그러니 잠깐 어른으로서 일을 좀 해보자 싶었다. 장르라는 것들도 평론가들이 정해놓은 것이다. 이번엔 그래서 그런 분류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걸 해보려고 한다.

방준석_예를 들어 이번 앨범 중 <변신>이란 노래가 있는데, 백현진이 ‘당신은 변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백현진이라는 친구를 안 지 오래됐는데, 이건 상당한 변화다. 한국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 곡뿐만 아니라 그런 변화가 다른 곡에도 적용된 흐름이다.

-‘어른의 일’이라는 말이 특히 와닿는다.

=백현진_나는 지난해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생각을 많이 했다. 난 운 좋아서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고 있었고, 그때도 스튜디오에서 6~10시간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 그 시간 동안 내가 한심하더라. 나 하나는 운신의 폭도 넓어지고 괜찮게 살아가고 있지만, 어른으로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무거운 마음이 됐다. 그 이후부터 어른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가요도 그렇게 엉망진창이 아니었다. 블링블링하고 성적인 코드를 파는 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늘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도를 넘어서 꼬마들이 다 치골을 흔들고 있는 거다. 이런 조건에서 어른으로 대중가요를 보고 싶은 거다. 한국 대중음악에 기여하겠다, 그런 거창한 게 아니라.

방준석_엉망이 된 건 결국 균형의 문제다. 거기에 우리도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우린 뭐 했지. 홍대에서는 뭐 했지. 그런 반성들이 필요한 것 같다. 어떻게 균형을 맞춰가지? 우리부터 해보자.

-방준석과 백현진은 서로에게 어떤 파동을 주는 파트너인가. 지금의 변화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둘이서 공유해여서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백현진_난 사실 음악 경력에 비해 뮤지션들과 교류한 경험이 별로 없다. 장영규 형을 비롯해 어어부 라이브세션이 내가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 전부였다. 그럼에도 형이랑은 정말 오래 붙어 있었다. 이번 작업에도 그게 가장 큰 힘으로 작용했다. 뮤지션들은 서로 여러 요소들 때문에 같이 하겠지만, 정다운 마음에서 같이 붙어 있는 건 정말 엄청난 거라고 본다. 이렇게 같이하니, 서로 큰 자산이 된다고 하긴 그렇고 땔감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웃음)

방준석_나한테 어어부 프로젝트는 굉장히 중요한 유닛이다. 요즘 들어 공연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함께 오래해온 유닛이기도 하고. 함께 연주한다기보다는 동네 친구인 것 같은 게 더 큰 이유다. 우리끼리는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끼리는 재밌는데 남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 그게 우리 연주와 연장선상에 있다.

-말수가 없는 방준석과 직언을 서슴지 않는 백현진. 음악이나 캐릭터가 보기에도 확연히 정반대의 캐릭터로 읽힌다.

=백현진_태도가 달라서 그렇게 보이지 우린 되게 비슷한 점이 많다.

방준석_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게 있으면 끝까지 가고 그런 성격이 있는데, 현진이는 나보다 그런 점에서 더 바지런하게 찾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찾은 걸 다 공유한다. 나도 관심 있게 보게 되고.

백현진_뭐 저런 걸 볼까 싶겠지만, 우린 세포, 뇌신경학, 입자물리학 이런 것들까지 다 보고 그런 걸 가지고 서로 몇 시간이고 떠들고 그런다.

방준석_며칠 전에는 양자역학 이론에 대해서 아인슈타인이 틀렸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이런 것들이 한번 눈에 띄면 둘 다 그냥 넘어가지 않고 계속 토론하는 성격이다.

-영화음악 이야기도 좀 들어보자. 올해는 <베테랑>과 <사도>의 음악을 연달아 하면서 단연 ‘방준석 음악감독’의 해였다. <사도>로는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음악상도 수상했다.

=방준석_한동안 영화음악을 안 하다가 여러 편을 하니까 유독 그렇게 많이 한 것처럼 보인 것 같다. (웃음) 그동안 영화음악이 뜸했던 건 영화음악을 왜 하고 있지, 내가 뭘 하고 있지 하는 지점까지 왔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몸에서 신호가 왔기 때문이다. 위암이었는데 지금은 자연치유로 극복했다. 그래서 한동안 재정비를 했다. 그런 시간들이 나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고 의미를 찾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을 지나 남은 것들이 내겐 유효한 것이 됐다. 방백이든 영화음악이든. 김포는 복숭아 시절부터 있었으니 15년 정도 됐는데, 지금 작업실로 옮긴 지는 1년쯤 됐다. ‘터’를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여기에 왔는데, 이것도 같은 맥락에서의 실행이다. 음악이라는 거 잘나서 하는 것도 아니고, 밥 먹고 사는 생업의 수단이지만 돈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남는 건 음악의 속성이다. 음악이 하나의 연결고리라면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게 된 거다.

-이준익 감독, 류승완 감독, 최호 감독 등 많은 작품을 함께해온 감독들이 있다.

=방준석_쉬고 있는 동안 유일하게 한 영화음악이 <소원>(2013) 작업이었다. 그때 TV프로그램에서 이준익 감독과 아프리카로 여행 가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SBS 다큐멘터리 <세계도시樂여행-두 남자의 우정여행, 천의 얼굴 튀니지>). 그때 감독님은 <평양성>(2010) 흥행이 부진하면서 은퇴 선언을 한 후라 어떻게 할지 생각이 많으셨다. 그 프로그램을 찍고 감독님과 함께 있으면서 인생 공부를 많이 했다. 다시 음악할 이유를 찾고 나니까 영화가 들어오더라. 그게 <베테랑>과 <사도>였다.

-<사도>의 ‘아모리-만조상해원경’과 ‘무덤방-망자해원경’, ‘옥추경’ 등의 웅장함은 이 영화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든다. 특히 전통악기의 사용은 사극 음악의 새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해줬다.

=방준석_이 영화가 필요한 게 무엇이고, 그러자면 가져갈 게 무엇인가 고민했다. <사도>가 왕가의 이야기이니 음악의 경우도 왕이나 왕가 사람들이 듣던 음악이 나와야 한다. 그런 음악을 들으러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공연도 많이 갔다. 국악은 배제하되 국악기 소리는 사용하고 싶었다. 국악이 머물러 있다면, 국악기는 굉장히 깊은 곳에서 지금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소리로 접근을 시도했다.

-백현진씨는 올해 영화음악보다 영화배우로 더 많이 활약했다. <경주>에 이어 장률 감독의 <필름시대사랑>에도 출연했다. 그간 독립영화에서 본인의 캐릭터를 드러내왔다면(백현진은 그간 <꽃섬> <뽀삐> <설마 그럴 리가 없어> <모피를 입은 비너스> 등에 출연했다), <특종: 량첸살인기>에서는 ‘김 작가’로 출연한다. 제대로 배역을 연기하는 전문 연기자의 느낌이 강해졌다.

=백현진_난 영화음악을 할 사람은 아니다. 그쪽은 욕심도 없고. 삽입곡이나 주제곡 작업은 재밌고, 나라는 캐릭터를 정확히 알고 의뢰를 하시니 혼선이 생길 일도 없다. 내 곡 쓰겠다고 하면 다 준다. 그런데 영화 한편을 온전히 아울러서 할 수 있는 탤런트는 가지고 있지 않다. 올해는 그러고 보면 본격적으로 상업영화를 한 해이기도 하다. <특종: 량첸살인기>도 그렇고, 얼마 전 촬영을 마친 박흥식 감독의 <해어화>도 있다. 그 작품은 1940년대 경성이 배경인 시대극이라 보는 분들이 내가 연기한다는 느낌을 더 받을 거다. 그렇다고 연기를 많이 하지는 못할 거다. 음악, 그림 작업을 하니 다른 것에 시간을 많이 뺏기기는 힘들다. 4~5회차 분량의 배역이면 1년에 2~3편은 할 수 있는 것 같다, 무리가 없겠다 싶어서 한다. 나는 이제 물꼬가 트여서 기회가 있으면 할 거고, 그런데 준석이 형도 연기가 되는 뮤지션 중 한명이니 <여기보다 어딘가에>(2007) 등 몇편의 영화에 출연했다.-편집자) 많이들 알아주셨으면 한다. (웃음)

-12월에 음반이 나오니 일정이 바쁘겠다. 또 다른 활동 계획도 들려달라.

=방준석_김대승 감독이 연출한 <조선마술사>와 이계벽 감독의 <키 오브 라이프> 영화음악 작업을 한다. 얼마 전엔 중국영화도 작업했다. 중국영화 작업은 처음인데 대상이 달라지니 재밌는 지점이 있더라. 대만에 가서 믹싱을 했는데 그런 과정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년 1월의 방백 공연도 준비해야 하고. 프로듀싱하다가 이제는 제작까지 하게 됐는데, 아까 말한 터 만드는 작업도 좀 구체화될 것 같다. 음악에 국한된 건 아니고 같은 태도를 가진 아티스트들끼리 모일 수 있는, 말 그대로 터를 만들면 그게 모여 동네가 되지 않을까. 상업판 안에서는 그게 ‘회사’로 받아들여지는데, 그런 개념보다 나는 아직 어린애 같은 마음이 있다. 세상이 좀 좋아졌으면 좋겠고 그래서 그 교집합의 터를 만들어보려는 게 지금의 목표다.

백현진_내년 1월에는 음반 관련 공연들을 많이 할 거고, PKM 갤러리에서 개인전도 연다. 두 가지가 겹쳐서 할 일이 많다. 그런데 그전까지 굉장히 복잡하고, 바쁘고. 이거 끝내고 저거 해야 돼, 이러면서 정신없었다면 지금은 다른 것들 다 제치고 중요한 일을 보려고 하는 시기인 것 같다. 나 스무살 때를 보는 것 같은 날서 있고 골통인 청년들이 우리가 하는 걸 보면서, ‘소통이란 말을 그렇게 막 갖다 쓰냐’고 비판할 텐데, 그런 것도 다 오케이다. ‘우리도 어른으로서 우리 일을 좀 볼게, 너희가 하는 말도 고마워’ 이렇게 응수할 정도로 요즘은 깔끔해진 기분이다. 한달 정도 남았는데 잘 정리해서 물건을 내놓을 테니, 잘 이용하시면 좋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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