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이지현의 영화비평] 순간의 미학
2015-11-17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나이트 오브 컵스>가 지닌 영화적 마력에 대해
<나이트 오브 컵스>

할리우드 유명 시나리오작가 릭의 주변에는 항상 아름다운 여인들이 넘쳐난다. 잘나가는 배우들이 그와의 작업을 고대하고 있으며, 힘 있는 제작자들도 그를 움직이려고 애쓴다. 이렇듯 겉으로는 물질적 풍요함이 넘쳐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릭은 완전히 고갈된 상태다. 마치 황무지에 떨어진 인간처럼 그는 심적으로 상실돼 있다. 이런 릭의 심리를 테렌스 맬릭은 내레이션의 목소리를 빌려 설명한다. 영화 초반부 내레이션에서 ‘진주를 찾아 서쪽의 이집트로 떠나간 동쪽 나라의 통치자 아들의 이야기’는 이 때문에 등장한다. 이야기 속 동방의 왕자는 이집트에 도착해 그곳 사람들이 준 차를 마시고는 기억을 잃는다. 그렇게 자신이 왕의 아들이란 사실과 진주를 찾아 이곳에 왔단 사실도 잊은 채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 왕자의 모습이 릭과 매우 흡사해 보인다.

서사의 삭제와 이미지의 나열

영화 <나이트 오브 컵스>의 인트로 시퀀스에는 이후 이 작품이 향하게 될 복잡다단한 마음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레이션의 시점 주체는 한곳으로 모이지 않으며, 카메라의 질감은 통일되지 않는다. 주조를 이루는 화면의 색채 또한 비주기적으로 바뀐다. 디지털카메라를 기반으로 촬영된 2.35:1의 시네마스코프 영상을 중심으로, 고프로(Go Pro)로 촬영한 유동성이 있는 중저화질 화면과 35mm 또는 65mm의 고화질로 촬영된 필름 숏들이 나란히 병치된다. 화면이 담는 대상의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나’라는 1인칭 화자는 주인공뿐 아니라 3인칭의 인물에게서도 똑같이 언급되며, 지구의 표면을 훑던 카메라는 갑자기 우주의 초월적 시선을 담기도 한다. 마치 감독은 인트로 시퀀스를 통해 이 영화를 주도하는 시점을 한 가지로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선포하는 것처럼 보인다. 화면을 잇는 몽타주의 연속성도 없기에 대개 다른 영화들을 보는 방식으로 이 작품을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모든 것이 불명확하지만 이 점만은 점차 확고해진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일 <트리 오브 라이프>(2011)의 주인공이 브래드 피트가 아니었다면, 혹은 이번 영화 <나이트 오브 컵스>의 주인공이 크리스천 베일이 아니고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비주류 배우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분명히 맬릭은 할리우드의 주류 영화와 반대되는 새로운 영화미학, 반순응적인 톤을 채택하고 있다. 처음 소개된 내레이션의 이야기들은 이후의 전개에서 플롯을 형성하지 못한다. 이렇듯 전통적인 내러티브 구조의 삭제를 통해 감독은 근원적이고도 민감한 주제에 예상보다 훨씬 더 대범하게 접근한다. 어쩌면 맬릭의 영화를 장악한 반서사의 경향은 대표적 주류 배우들을 통해 극복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이 대단한 슈퍼스타들이 아니었다면 <나이트 오브 컵스>는 지금보다 더 광범위하게 사랑받는 예술영화로 취급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테렌스 맬릭은 인류의 보존에 대해 지속적으로 근심하고 있으며, 그건 필모그래피뿐 아니라 미장센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순수를 잃어버린 인간이 얻은 것이 물질적인 안위인 점과 비교할 때, 맬릭이 삭제한 몽타주와 내러티브의 자리에 아름다운 배우들이 안착한 것은 어찌보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동일한 이치처럼 보인다.

테렌스 맬릭이 창안한 새로운 서사의 중심부에는 간접적 이정표가 세워져있다. 바로 몇장의 타로카드들이다. 제목이 이르는 ‘컵의 기사’ 카드와 더불어, ‘달’ 카드와 ‘죽음’의 카드, ‘타워’ 카드 등 다양한 타로카드의 타이틀들이 영화 사이사이에 소제목으로 등장한다. 관객은 이 타이틀로부터 영화를 접하는 태도를 감지해낼 수 있다. 마치 현대미술관을 자유스럽게 유영하는 카메라가 된 기분으로, 혹은 모던한 카페에 앉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완성된 포토그래프로 점철된 잡지책 한권을 읽는 기분으로 이 작품을 대하는 것이 좋다. 중반부에 제시되는 ‘고위 여사제’ 카드 시퀀스가 이 사실을 정확하게 알린다. 이 부분의 여인들은 마치 모델처럼 전시되며 나열돼 있다. 마치 프랑수아 오종이 <누 두>라는 하이틴 감성잡지를 읽으며 그 표면에 감춰진 이면의 다양함을 파고들어 <5x2>(2004)를 완성했던 것처럼, 맬릭은 완전히 경건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포스트모던한 잡지풍의 영화를 완성해낸다. 타로카드의 종교적인 기원이나 이야기의 원형을 찾는 것은 그 이면을 탐구하는 열쇠가 된다.

컵의 기사 카드의 그래픽은 고전적 기사 캐릭터가 아니라, 물잔을 든 기사의 모습을 취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타로카드 해석자들은 이 잔 속의 ‘물’이 ‘여성’을 의미한다고 이른다. 그리고 컵의 기사를 양면적 속성의 인물로 취급한다. 영화 속의 릭은 대중적인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이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은 듯 보인다. 마찬가지로 그의 주변에는 기사가 든 물잔을 건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내와 연인들을 통해 릭은 사랑의 변화를 겪고, 또 프로듀서들 탓에 예기치 못한 기회를 얻기도 한다. 영화의 주된 줄거리를 차지하는 ‘연인들’의 에피소드 또한 이 첫 번째 해석의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한편 컵의 기사 카드는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두 번째 의미를 지닌다. 이 두 번째 해석에 따르면 릭은 ‘사기꾼’이며 양면적인 인간의 존재 가치를 대표한다. 이처럼 릭이 양가적 인간이 된 데에는 LA라는 도시의 환경이 큰 원인을 제공한다. 영화는 직접적 이미지의 나열을 통해 이 사실을 관객에게도 알린다. 조명이 반짝이는 밤의 라스베이거스 거리, 그곳은 인간이 상상하는 수준을 초과한 경제적 과잉에 도달한 상태다. 그런 면에서 릭 캐릭터의 설정은 맬릭의 이전 작품 <투 더 원더>(2013)에 등장하는 과묵한 작가지망생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좀더 직접적이고 적나라하게, 영화는 영화속의 인물들과 연관된 실제의 비유를 최대한 활용한다.

초월적 존재 앞에서 되살아나는 순수성

최근 감독의 다른 작업들처럼 <나이트 오브 컵스> 역시 시나리오가 없는 상태에서 모든 장면이 즉석에서 촬영됐다고 한다.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하는 릭의 캐릭터는 이 상황 때문에 의미가 배가되는 측면이 있다. 맬릭은 그에게 간단한 캐릭터의 설명을 제외한 어떤 가이드라인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조연들에게는 대사를 적은 몇 가지 대화 목록을 내밀었다. 그 결과 그들은 맬릭의 대사를 사용해 주연의 역할을 이끌었다. 즉 영화에 등장하는 릭의 행동이나 대사가 모두 인간 크리스천 베일로부터 나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할리우드의 대스타 크리스천 베일은 부친인 ‘왕’이 보내는 전갈을 가끔 알아채고 대부분 놓치는 ‘아들’ 역할을 연기하면서, 실제로도 감독과 자신의 관계에서 마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이처럼 감정의 사막에서 방황하는 캐릭터와 현실을 왜곡하는 거울이 되는 휘황찬란한 영화의 세트장, 그리고 인간의 존재와 쇠퇴의 경향에 대한 이 ‘명백한 메타포’의 속성은 테렌스 맬릭의 최근 영화들을 바라보는 중요한 경향이라 이를 수 있다. 어느덧 그는 숭고함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숭고한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영화는 전체의 알레고리가 아닌 부분의 비유를 더 선호하며, 중첩되는 해석과 리듬의 균형을 통해 마침내 관객을 초월적 신의 존재 앞으로 데려다놓는다. 어쩔 수 없이 오염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하더라도 그의 영화를 보고 있자면 잃어버린 순수한 본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가 아니라 감상을 통해 순전히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찰나, 그것이 순간의 착각이라도 상관없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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