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people] 죽음에 관한 사유는 관객의 몫
2015-11-19
글 : 윤혜지
<사일런트 하트> 빌 어거스트 감독
빌 어거스트 감독

전작 <리스본행 야간열차>(2014)에서 빌 어거스트 감독은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의 여정 자체를 영화화한 바 있다. 신작 <사일런트 하트>는 루게릭병에 걸린 엄마 에스더가 자발적인 죽음을 선택한 뒤 가족들 사이에 생기는 관계의 변화를 그린다. 감독이 들여다보아야 할 지점은 더욱 내밀해졌으나 그는 에스더의 내면에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밀지 않는다. 대신 그는 에스더가 보고 있는 광경, 딸들이 주고받는 대화, 새로운 인물들끼리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살핀다. 이들 가족이 세계로부터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데엔 덴마크 케르테민데의 핀섬 풍광이 큰 몫을 한다. 신작을 촬영하느라 바쁜 그의 시간을 잠시 붙들고 <사일런트 하트>의 제작 비하인드를 듣고자 서면 인터뷰를 청했다.

-존엄사를 소재로 했다. 결말을 포함해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을 만들 때 무엇을 고려했나.

=나는 안락사를 개인의 존엄과 연관된 문제라 느꼈다. 안락사는 덴마크에서도 다양한 논쟁이 이뤄지는 예민한 사안이다. 작업을 하면서 크게 두 가지를 주의했다. 우선 감정적으로 치우쳐서 눈물만 흘리게 하는 영화를 만들지 않으려 한 것. 두 번째는 관객을 가르치려 드는 영화가 되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다. 관객이 스스로 영화 속 공백을 읽어낼 수 있어야 이 영화를 만든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에스더 역의 기타 노비는 <최선의 의도>(1992)에서 협업한 배우인데 그와는 어떤 의견을 주고받았나.

=기타 노비는 덴마크영화계의 여왕 같은 존재다. 의연한 모습으로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하는 엄마 역을 생각했을 때 그를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실제로도 강인한 여성인 기타 노비는 어머니의 따스한 분위기를 동시에 지니기도 했다. 그러한 양면성이 영화 속 가족의 엄마로 제격일 것 같았다.

-파프리카 스틴과는 처음 함께 일했다. 현장에서 스틴은 어떤 유형의 배우였나.

=파프리카는 무척 베테랑이다. (산느 역의) 다니카 쿠르시크 역시 덴마크의 떠오르는 스타다. 두 배우 모두 놀라움을 자아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촬영을 시작하면 일부러 배우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려 한다.

-문제적 인물이라 생각했던 캐릭터도 제각기 자신의 쓸모를 증명한다. 골칫덩이 데니스가 뜻밖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데니스는 그 사이에서 유일한 외부인이다. 관객이 제3자인 데니스에게 이입해 영화를 볼 수 있길 바랐다.

-덴마크 케르테민데의 핀섬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촬영을 그곳에서 진행한 이유가 있나.

=핀섬의 자연풍광과 커다란 저택은 단순히 영화에서 멋진 경치를 보여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가족들의 집이 외딴섬에 놓여 있다는 점은 아름다움 이상의 분위기와 상징성을 지닌다. 도망갈 곳 없는 상황에 처한 가족들이 느낄 고립감과 선택에 따르는 책임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대개 나는 해외에서 외국 배우들과 작업하는데 이번 작품은 오랜만에 국내 배우들과 홈그라운드에서 함께 만들었다. ‘죽음에 대한 권리’를 주제로 한 크리스티안 토르페의 <사일런트 하트>의 시나리오가 호기심을 끌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에 대해 권리를 갖지만 죽음에까지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잖나. <사일런트 하트>를 본 관객이 이에 대해 깊이 사유할 수 있길 바란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인가.

=헬레나 본햄 카터와 베라 파미가가 출연하는 영화 <55 Steps>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실화에 기반했고, 정신병을 가진 여성의 이야기다. 힘 있는 작품이 탄생할 것 같다. TV시리즈 제작도 고려하고 있는데 본업이 영화감독이니 TV시리즈에서도 영화적 무드를 연출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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