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묘령의 여인이 들려주는 미스터리 <아일랜드: 시간을 훔치는 섬>
2015-11-25
글 : 김수빈 (객원기자)

교통사고로 아내와 자식을 잃은 후 실의에 빠진 남자 준혁(오지호)은 수십년만에 고향땅을 찾는다. 어릴 적 살던 집은 남루하기 짝이 없지만 자살을 결심한 그에게 집 상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품을 정리한 뒤 목을 매려는 찰나 위층에서 여자의 발소리와 흐느낌이 들려온다. 조심스레 올라간 위층에서 그는 20대 초반의 여자 연주(문가영)를 만난다. 곧이어 아래층 부엌에서는 한 중년 부부가 심각한 목소리로 딸의 혼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는 죽으려던 결심을 잠시 미루고 밤마다 집 안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기울인다. 제주도 토박이라는 묘령의 여인은 집에 얽힌 소문을 들려주거나 자살을 부추기며 낮 동안 준혁의 곁을 맴돈다.

이 영화는 <피터팬>으로 유명한 영국 작가 제임스 베리의 희곡 <메리 로즈>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메리 로즈>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생전 영화로 만들고 싶어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박진성 감독은 데뷔작 <마녀의 관>(2008)에서 러시아 문호 고골의 희곡 <비이>를 영화화한 바 있다. 실험적인 형식을 띠는 전작과 달리 이 영화는 대중적 색채가 짙다. <기담>(2007)의 원작자이기도 한 감독은 전작들에서 일관적으로 공포를 조성했다면 이번에는 귀기를 덜어내고 원작이 가진 몽환적인 분위기를 돋우는 데 집중한다. 집과 인물에 얽힌 미스터리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지만 중심 플롯에 따르는 곁가지들이 섬세하지 못한 편이다. 작품의 부제가 되는 ‘시간을 훔치는 섬’에 대한 묘사가 부족하고 시종일관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의문의 여인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점 등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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