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를 연출한 정기훈 감독은 열정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연예부 수습기자로 입사한 도라희(박보영)가 진정한 기자로 거듭나는 모습을 그려낸 이번 작품을 “열정을 발휘할 수 없는 환경을 지적”한 영화라고 말한다. 도리어 그는 열정적인 감독이다. 소방관을 주인공으로 한 <반창꼬>(2012)를 찍기 위해 소방서에 매일 출근하며 업무를 지켜봤고,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에서는 감독으로서 겪었던 연예부 기자들을 데스크부터 막내까지 집요하게 역취재했다. 방법론뿐 아니다. 그는 “선의에 기반하여 위로를 건네는” 영화들에 매진해왔다. 엄마를 떠나보내는 딸의 이야기를 담은 <애자>(2009), 서로의 상처를 감싸안는 멜로 <반창꼬> 그리고 가볍고 경쾌해진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모두 다른 목소리지만 “관객에게 위로를 보낸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한다. “사회에 순기능적 역할을 하는 영화”를 지향한다는 정기훈 감독과의 열정적이었던 대화를 지면에 옮긴다.
-극장가에서 <내부자들> <검은 사제들> 등 한국영화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어 긴장되진 않나.
=지금이 제일 힘들 때다. 평가를 받는 입장이니까 두려움이 앞서지. (웃음) 요새 세상은 무겁고, 웃음을 전달해주는 영화도 드물지 않나. 우리 영화를 보고 많이 웃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는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다.
=<반창꼬>를 찍고 결혼했다. 와이프가 직장생활을 하는데,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더라. 옆에서 지켜보면서 안타까웠다. 직장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반짝반짝 영화사의 김무령 대표가 원작 소설을 보여줬다. 소설이 가진 에너지와 그 방향을 매치시킬 수 있겠다 싶었다.
-각색 방향은 어떻게 잡았나.
=직장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위로가 될까 고민했다. 하지만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을 것 같더라. 그래서 힘든 하루를 버티고 난 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겠지만 먹고살기 위해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영화에서도 그런 판타지를 표현하기보단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고 웃음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목표로 했다.
-연예부 기자라는 직업 세계는 어떻게 취재했나. 실제 연예부 기자를 많이 겪었을 것 같은데.
=동료이자 동반자적 존재들이니 익숙하다. 기자 친구들도 많은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더 많이 알게 됐다. 술도 자주 마시고, 호칭 문제 같은 디테일한 부분부터 내밀한 속내까지 들어보려 했다. 일종의 역취재다. (웃음) 원작을 보고 취재를 하면서 그들 역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연예부가 돌아가는 생리를 보여주며 그 애환을 담아내려 했다. ‘기레기’ 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변호랄까. 그래서 기자분들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썩 그렇진 않더라. (웃음) 도라희를 제외한 기자들을 그린 디테일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 죄송한 마음도 들고, 스스로도 아쉬웠다.
-연예부 수습기자로 입사한 도라희를 주인공으로, 청년세대의 비애와 저널리즘의 역할을 동시에 파고든다.
=이 영화에선 직장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위로가 메인 플롯이다. 저널리즘의 사명을 보여주려 이 소재를 택한 건 아니다. 그럴 거였으면 <찌라시: 위험한 소문>(2013)처럼 스케일 큰 사건으로 접근했겠지. 기자라는 직업을 소재로 택한 데는, 이 직업 세계가 직장생활을 담아내는 배경으로서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거란 생각이 한몫했다. 젊은 세대들이 흥미를 갖고 흔히 접하는 이야기가 연예부 뉴스 아닌가. 하지만 직업을 다룬다면, 그 직업이 지닌 소명 역시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작 <반창꼬>에서 소방관은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이고, 이 작품에서 기자는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이다. 입바른 소리를 하면 촌스러운 사람이 되는 세상이 됐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그 부분을 조롱하면 안 되지 않겠나.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라고 조소하는 듯한 제목이 인상적이다. ‘열정페이’를 강요당하는 청년세대의 자화상을 어떻게 그려낼까 싶었는데, 도라희는 오히려 열정으로 모든 걸 돌파해버린다.
=열정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열정을 발휘할 수 없게 하는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고 싶었던 거다.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하고 사표 쓰는 건 판타지다. ‘원하는 것을 찾아 떠나라’는 결론도 무책임하다. 대신 그 구조 안에서 희망을 찾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회구조적인 모순이 있지만 희망은 잃지 말자는 거다. 도라희는 무모한 캐릭터다. 하지만 그녀는 순응하지 않고 동료, 상사들도 바뀔 수 있는 도화선을 만들지 않나. 영화를 조소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정의를 추구하는 도라희와 부서의 ‘밥그릇’을 지키려는 하재관(정재영) 사이의 갈등 구도로 어떤 걸 보여주고 싶었나.
=신세대들에게는 주적이 상사가 되는 경우가 많더라. 적은 결국 구조적 모순인데 그 거악을 보지 못하고 눈앞에서 자기를 혼내는 상대를 적으로 삼는 거다. 사실 기성세대들도 그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지 못하고 순응해버린 세대 아니겠나. 세대들끼리 아웅다웅하지 말고 근본적인 구조의 모순을 봐야 한다는 점을 짚고 싶었다.
-박보영과 정재영을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역할로 캐스팅했다.
=정재영과는 친분이 있다. 7년 전에 같이 해보자고 약속한 걸 이제 지킨 거다. 그의 연기를 쭉 봐오며 정재영 종합판을 만들고 싶더라. 코믹함, 진중함, 까칠함, 목청, 거기에 술도 좋아하고. 하재관의 캐릭터에 필요한 모든 걸 갖춘 배우였다. (웃음) 박보영은 인기, 연기력, 미모 삼박자를 갖춘 배우 아니겠나. 사회 초년생 역할을 통해 이전의 어린 이미지에서 거듭나는 기회가 되었으면 했다. 두 배우 다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염두에 뒀다.
-매 작품 직접 각본을 쓴다.
=일찍 현장에 뛰어들어 <약속>(1995), <와일드 카드>(2003)의 조감독으로 참여했는데, 그때만 해도 도제 시스템이라 시나리오 단계부터 함께했다. 그 과정에서 가까워진 이만희 작가님이 시나리오를 써보라고 권유하시더라.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해 2008년 부산영상위원회 시나리오공모전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009년 그 작품인 <애자>로 감독 데뷔했다.
-시한부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를 다룬 <애자>와 상처를 지닌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반창꼬>에 비해 이번 작품은 가볍고 경쾌해졌다.
=셋 다 위로를 전하는 영화인데, 이번 작품의 방법론이 다른 거다. 전작들은 따뜻함과 눈물로 위로를 전했다면, 이번 작품은 유쾌한 웃음과 즐거움으로 위로를 전하는 영화다. 난 선의를 가진 영화, 사회에 순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원래 할리우드영화에 열광하면서 자란 할리우드 키드라, 재미있는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애자>를 만들면서 ‘힐링’영화에 관심이 생겼다. 꿈이었던 감독이 되고 난 후 그다음 목표가 무엇일까 생각하던 때, 심영섭 평론가가 진행하는 <심영섭의 힐링 시네마>라는 방송에서 <애자>가 2009년 ‘올해의 힐링 시네마’에 선정됐다. 이후엔 병원 등에서 상영하면서 느낀 바가 있었다. 영화가 사회에 할 수 있는 순기능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반창꼬>와 이번 작품을 만들었다.
-차기작도 그 연장선상에 있나.
=<애자>를 만들고 ‘힐링’에 관심을 갖고 <반창꼬>를 만들었고,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를 만들면서 사회의 부조리를 알게 됐다. 다음 작품은 사회의 부조리를 코믹한 액션으로 푸는 작품이다. 이십세기 폭스에서 제공•배급하고, 초고가 나온 상태다. 앞으로도 가진 색을 유지하되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가는 방식으로 차기작을 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