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진열] “세월호를 잊지 않기를”
2015-12-09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나쁜 나라> 김진열 감독

2014년 4월16일 남해 진도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대재앙과도 같은 참사가 일어났지만 사고의 원인 규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고가 난 후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와 관련해 정부는 책임 있는 사죄와 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더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2015)의 개봉(12월3일)이 갖는 의미가 크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까지의 긴 여정을 따라가며 사고 피해 학생들의 부모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결코 쉽지 않은 촬영이었지만 반드시 기록해야 했던 참사의 현장으로 달려간 <나쁜 나라>의 책임연출자 김진열 감독을 만났다. “영화를 본 관객이 세월호를 잊지 않길, 유가족들과 함께 행동해주길 바란다”는 당부를 거듭 전해왔다.

-애초에는 10월29일로 개봉을 예정했다가 재편집과 재심의를 거쳐 12월3일로 개봉을 확정지었다.

=의도치 않게 영화의 일부 장면이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과 피해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전히 참사의 아픔을 겪고 있는 생존 학생들 가운데에는 자신들의 얼굴이 그대로 영화에 나오는 데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기존 편집본에 모자이크 처리와 음성 변조를 해서 개봉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조치조차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또다른 아픔이 될 것 같아 재편집을 결정했다. 세월호의 아픔을 잊지 말고 되새겨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의미에서 제작된 작품인 만큼 영화로 인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개봉에 앞서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전 버전의 오프닝이 생존 학생들의 얼굴과 단원고의 교실 풍경이었다면 재편집본은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참사 현장을 방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재편집하고 심의를 다시 받기까지 한달여의 시간이 있었다. 전면적인 재편집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쁜 나라>는 기본적으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까지의 과정을 시간순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진도 팽목항에서 참사 피해자 가족들을 만났다. 그들이 보여준 무책임함이야말로 결국 가족들이 직접 거리로 나가 진상 규명을 외치게 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영화의 시작이 다소 무겁게 느껴지더라도 그 순간부터 영화를 시작하는 게 이후 관객이 가족들의 투쟁사를 좇아가는 데 몰입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촬영을 하기로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영화를 기획하고 현장으로 나가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 지역 유가족들의 상황을 기록해줄 것을 먼저 제안해왔다. 참사를 연구할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겠다 싶었고 다큐멘터리로 완성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무엇보다 참사에 대한 기록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게다가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사회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고에 침묵할 수 없었다. 몇년 전부터 안산 지역에서 초등학생, 다문화 가정의 청소년, 결혼이주여성 등을 대상으로 영화 제작 수업을 해오고 있었다. 내가 교육하며 오가던 길에서, 버스 안에서 피해 학생들을 마주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쓰이더라.

-영화는 참사 이후부터 유가족들이 사고 진상 규명을 위해 길 위에서, 국회에서 분투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찍었다. 처음에는 비통한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가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워낙 비극적인 상황이라 처음에는 그 현장을 촬영해야 한다는 데 대한 두려움을 나 스스로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진도 체육관을 찾았을 때도 체육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혹여 가족분들에게 말을 거는 게 실례가 될까 싶어서.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오히려 가족분들이 혼자 온 나를 챙겨주셨다.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며 마음을 열어주신 것 같다. 나중에는 촬영에 지쳐 있던 내게 되레 부모님들이 “힘내라”고 말해주셨다. 카카오톡으로 하트 이모티콘까지 보내주셔서 내가 더 기운을 많이 얻었다.

-지난해 개봉한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은 세월호 구조 과정의 문제점에 집중했다면 <나쁜 나라>는 진상 규명에 나선 유가족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과정을 따라가면서 가족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순간들이 있었다. 부모님들 중 상당수는 사고가 일어난 후 구조를 하겠다는 정부의 말을 그대로 믿으셨다고 하더라. 국가라면 마땅히 그렇게 할 것이고 약속을 했으면 지킬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거다. 그런데 그런 믿음이 완벽하게 깨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들이 겪게 된 아픔과 반성이 있었다. 그 모습을 기록해둘 필요가 있었다.

-<나쁜 나라>라는 영화의 제목에서부터 이 사회에 대한 윤리적인 판단이 명확히 드러나 있다.

=부모님들이 마주하게 된 현실, 정부, 정치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나쁜 나라의 전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영화가 피해 가족들이 바라보고 있는 현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그걸 제목으로 가져가는 게 맞겠더라. 가족분들이 언론배급 시사회 때 “영화는 빙산의 일각이고 실제로 겪은 대한민국은 더욱 악랄했다”고 말씀하셨던 게 절대로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완성된 이 영화가 가족분들에게는 오히려 성에 안 찰 수도 있을 것 같다.

-배우 문소리가 내레이션에 참여했다.

=관객에게 영화 속 상황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해설해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내레이션을 넣기로 했다. 세월호 사고에 관심을 갖고 움직여줄 수 있는 분이 그 작업을 맡아주면 좋겠더라. 그때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에도 참여한 문소리씨가 생각났다. 제안을 하자마자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답변을 주셨다. 영상을 보고 되게 많이 우셨다고도 하더라. 녹음 당일에도 녹음실에서 영상을 보며 눈물을 보이시고. 그럼에도 감정 조절을 잘해 마무리를 잘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제작진은 영화의 완성과 개봉을 조금이라도 더 서둘렀으면 했다고 들었다.

=세월호 사고가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커져가고 있었다. 지난해 8월까지는 국회에서 농성을 했고 이후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겨 그해 12월까지는 농성과 간담회 등의 활동이 꽤 많았다. 그러다가 겨울이 오고 진상 조사도 흐지부지되면서 점점 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가족분들도 많이 힘들어하셨고. 이후에 가족분들 얼굴을 보러 안산에 가면 그렇게 다들 좋아하신다. 그때마다 “당신들이 자주 오면 힘이 된다. 우리끼리만 있으면 세상에 우리만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얼굴 보면 그래도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영화를 빨리 완성해 유가족분들과 시민들이 하루라도 빨리 영화를 통해 만나길 바랐다. 사고 해결을 위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8월까지 유가족들의 농성 현장을 지켜보면서 가장 답답했던 건 뭐였나.

=정치인들이 가족들에게 돌파구가 돼주지 못했다. 정치인 개인의 뜻뿐 아니라 당리당략, 당론이라는 게 작용했고 그래서 가족들 뜻대로 일이 안 풀릴 수도 있겠구나, 라는 걸 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 아이가 죽은 이유를 알고 싶은 부모들이 현실이라는 높은 벽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나쁜 나라>의 책임연출자다. 공동연출을 한 정일건, 이수정 감독과는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해 영화를 완성했나.

=워낙 촬영해야 할 공간이 많다보니 주요 장소별로 촬영자를 나눴다. 나는 진도와 국회 농성장, 이수정 감독은 광화문과 청운동 농성장, 정일건 감독은 국회와 광화문 일대를 주로 촬영했다. 편집 때는 각자가 촬영한 것을 1차적으로 각자 편집했고 그걸 바탕으로 나와 정일건 감독이 2차 편집을 했다. 이후 내가 한번 더 3차 편집을 하고 4차 편집 때는 편집감독이 따로 들어와 다듬어나갔다. 중간중간 서로 의견을 많이 주고받으며 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그렇게 개봉까지 맞았다. 그런데 아직은 다들 개봉한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 듯한 분위기다. 영화가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걸 봐야 드디어 개봉했다고 느낄 것 같다.

-다큐멘터리 연출을 하기 전에 시사 주간지 기자로 일한 걸로 안다.

=아주 작은 규모의 잡지사에서 글을 썼다. 몸이 불편한데 치료비 마련이 어려운 사회적 약자를 취재하고 후원 등을 유도하는 글쓰기였는데, 그때 매번 글을 쓴다는 것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글을 잘 써서 그분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어야겠는데 달랑 한번 인터뷰이를 만나고 와서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러다 우연히 영상물을 찍게 됐는데 글보다 좀더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특히 다큐멘터리는 오랫동안 인물들과 만나면서 어느 순간이 되면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기도 하잖나. 그러면서 서로를 지지해주는 관계로까지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 삶이 조금씩 바뀌고. 그게 다큐멘터리의 힘이 아닐까.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영화 작업 그 자체가 공부가 된다. 이젠 영화를 찍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기도 하다. (웃음)

-세월호와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계획이 선 것은 아니지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 차가운 바닷속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들과 그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집 밖으로 나와 농성 현장을 찾고 사람들을 만나는 피해 가족분들이 있는가 하면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고립된 생활을 하며 가족을 기다리는 분들도 많다. 그분들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가족대책협의회 분들과도 영화를 같이 볼 예정이라고.

=영화를 만든 건 제작진이지만 <나쁜 나라>는 결국 세월호 피해 가족들을 위한 영화다. 가족분들이 이 영화를 통해 다시 시민들과 만나 세월호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개봉하면 영화 상영회와 간담회 등을 준비해 가족분들과 함께 시민들을 만날 생각이다. 이미 가족분들도 SNS 등을 통해 영화를 직접 홍보해주고 계신다. 영화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가 정말 많다. 관객이 영화를 보고 가족분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주길 바란다.

-영화를 볼 관객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사회 시스템 때문에 아이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거잖나. 피해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하신 말씀이 있다. ‘우리도 우리가 이런 참사를 당할 줄은 몰랐다. 세월호 이전에 안전한 사회 시스템이 부재해 사고가 났을 때마다 그저 우리 아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라고만 생각했다. 그때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우리가 힘을 실어줬더라면 같이 문제 제기를 했더라면 정부의 대응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른들의 안일한 태도에 우리 아이들이 피해를 본 게 아닌가, 싶어 죄책감이 크다.’ 결국 가족들이 원하는 건 참사의 진상을 명확히 해 보다 안전한 사회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 마음을 관객도 공감해주시길, 그리고 가족분들과 함께 행동해주시길 꼭 말씀드리고 싶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