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특정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대학생 혜중(정소민)은 요즘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끔찍한 악몽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어느 날 고모의 친구인 무녀(이승연)가 혜중에게 섬뜩한 경고를 한다. 혜중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찾지 못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희미한 흔적들을 좇아 어느 숲속의 ‘원더랜드’로 향하고, 현실도 환상도 아닌 이곳에서 신비한 분위기의 소년 환(홍종현)과 그의 옆을 지키는 수련(정연주)을 만난다.
<심장이 뛰네>(2010) 등을 연출했던 허은희 감독의 <앨리스: 원더랜드에서 온 소년>은 현실과 환상을 과감하게 연결한 기획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비현실적 요소로 가득하지만 감독은 현실과 비현실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자연스럽게 기묘한 사건들과 몽환적인 분위기로 가득 채워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최소한의 개연성까지 무시한 채 이야기를 진행해도 괜찮다는 건 아니다. 특히 <앨리스: 원더랜드에서 온 소년>은 ‘환상’을 방패 삼아 거의 모든 장면에 갑작스러운 상황과 설정을 새로 등장시키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이는 몰입을 방해하는 심각한 약점으로 남는다. 잔뜩 심각하게 분위기를 잡다가 느닷없이 동화적 분위기를 제시할 때라든지, 숨겨진 비밀을 몇줄의 대사와 갑자기 떠오르는 플래시백으로 드러내는 연출 등은 민망함마저 느끼게 한다. <앨리스: 원더랜드에서 온 소년>은 이야기의 무거움과는 별개로 감정적 호소력이 부족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