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외제차가 허름한 시골집 앞에 멈춰 선다. 세련된 옷차림의 부부가 집주인 모녀를 찾는다. 불임인 부부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소녀(안지혜)의 아이를 비밀리에 입양하기 위해 왔다. 네 사람이 주고받는 말 속에는 상대를 탐색하거나 경계하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남자(김경익)는 서울로 돌아가고 여자(윤다경)는 소녀가 출산할 때까지 시골집에 머물 예정이다. 여자와 소녀, 소녀의 어머니(길해연), 세 여자의 생활은 배가 불러올수록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는 소녀 때문에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인 허 플레이스>는 캐나다 한인 2세 감독 앨버트 신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영화는 세 덩어리로 이루어졌다. 여자의 시점에서 소녀를 관찰하는 전반부와 소녀의 혼란과 갈등에 초점을 맞춘 중반부, 결말이 드러나는 후반부가 그것이다. 앨버트 신은 “관객이 불길한 예감에 서서히 젖어들기를 원했다”고 말한다. 방점은 ‘서서히’에 찍힌다. 소녀와 여자가 품고 있는 날선 감정들이 인물을 비집고 나와 영화의 공기에 히스테릭하게 스며든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마치 오프닝 대화에서 새어나오던 묘한 기운처럼. 따라서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소녀와 여자가 먼 곳에서 상대를 몰래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과 그 시점숏의 반복이다. 상대방 앞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감정이, 그러나 이외의 장면에서 유추 가능한 본심이, 상대를 관찰하는 두 사람의 뒷모습에서 수시로 일렁이기 때문이다. 일련의 장면들이 만들어내는 영화의 톤 때문에 소녀와 여자가 드물게 소리내어 웃는 장면에서조차 은근한 불길함이 감돈다. 윤다경과 신인 안지혜의 예민한 연기도 큰 역할을 한다.
하나의 질문이 불가피하다. 이 불안한 기류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앨버트 신은 극적인 엔딩으로 답한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이야기를 매듭짓는 방식에 수긍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판단이 갈릴 것이다. 이에 대한 의견을 덧붙이자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건뿐 아니라 이후 엔딩까지 영화의 감정선을 주도하는 인물이 소녀의 어머니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소녀와 여자가 자아내던 영화의 불가해한 기운이 사건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중단되고 그 공백을 소녀 어머니의 평면적인 감정으로 메우고 있다는 인상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