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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내일 죽음과 맞닥뜨리더라도 끝까지 가보는 것
2015-12-31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유스> 조수미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영화에 출연했다.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신작 <유스>에서 조수미는 현실 속 본인 모습 그대로 프리마돈나 조수미로 등장한다. <유스>는 은퇴를 선언한 세계적인 지휘자 프레드(마이클 케인)가 노년의 무료함 속에서 예술과 젊음을 되돌아보게 된다는 이야기다. 젊음 이후의 나이듦에 관해서라면 그 누구보다도 매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온 파올로 소렌티노의 영화답게 <유스>는 우아하고 위트 있게 인생의 의미를 살핀다. 조수미는 영화에서 비록 대사 한마디 없이 엔딩 장면에만 출연해 노래만 부르지만 영화를 본다면 알 것이다. 조수미가 부르는 <심플 송>은 프레드가 젊은 시절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만든 곡으로 프레드의 젊음의 정수다. 그러니 <심플 송>을 프레드가 지휘하고 조수미가 부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상징적이고 중요한 순간이다. 내년이면 소프라노로 산 지 30년이 된다는 예술가 조수미라면 누구보다 더 깊이 <유스>의 정수를 이해하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이미 <심플 송>은 내년에 열리는 골든글로브와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의 주제가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에서의 연말 콘서트를 앞둔 조수미를 서울에서 만났다.

-<유스>의 엔딩 시퀀스에 출연해 <심플 송>을 불렀다. 어떻게 이 제안을 받게 됐고 수락에까지 이르게 됐나.

=영화사에서 출연 제안을 해왔을 때 시나리오를 먼저 보고 싶다고 했다. 근데 대본을 읽자마자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수락했다. 예술과 예술가에 대해서 말하는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출연 분량은 많지 않지만 영화 전체로 봤을 때 마지막 장면이 얼마나 중요한 장면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안 할 수가 없더라.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과는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난 걸로 안다. 첫인상은 어떠했나.

=<일 디보>(2008), <아버지를 위한 노래>(2011), <그레이트 뷰티>(2013)를 보면서 비범한 감독이라고 생각해왔다. 정말 좋아하고 존경해온 연출자를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될 줄이야. 실제로 보니까 내가 인생을 두고 찾아왔던 이상형의 남자였다. 기가 막히게 똑똑하고 섹시하며 카리스마까지 갖췄다. 또 다정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사랑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웃음) <유스>를 영화관에서뿐만 아니라 DVD로 다섯번이나 봤는데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인다.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는데 대사 하나하나를 허투루 쓴 게 없다. 나 역시 30년 동안 소프라노로 살면서 전세계의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을 다 만나봤지만 파올로 소렌티노는 그 누구보다도 강적이었다. 그는 천재다.

-<유스>는 은퇴한 지휘자 프레드, 노익장을 발휘해 인생의 영화를 만들어보려는 프레드의 친구이자 영화감독인 믹(하비 카이텔), 젊은 배우 지미(폴 다노) 등을 통해 예술가의 나이듦과 예술가로 사는 일에 대해서 말한다. 한명의 예술가로서 당신은 이 영화를 어떻게 이해했나.

=프레드의 모습을 보는데 언젠가 은퇴를 하고 무대를 떠날 내 모습이 겹쳐졌다. 현재로서는 무대를 떠난다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죽어도 무대 위에서 죽겠다는 심정이니까. 그런데 동시에 알고 있다. 결국 나 역시도 언젠가는 무대를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가 언제인가. 기술적으로 내 목소리가 나빠지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더이상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없을 때일 것이다. 그때는 과감히 무대를 내려와야 한다. 그게 예술가로서의 가치(dignity)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영화를 보면서 하게 됐다. 그리고 또 당장 내일 죽음과 맞닥뜨릴 걸 알면서도 음악과 인생에 있어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끝까지 가보는 것, 그것을 힘껏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영원히 젊게 사는 길이 아닐까 싶다.

-음악감독 데이비드 랭이 만든 <심플 송>에 대한 당신의 곡 해석을 부탁한다.

=제목처럼 얼핏 보면 아주 간단한 곡처럼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복잡한 구석이 많다. 마치 바흐의 음악처럼. 클래식, 뉴에이지, 크로스오버 음악의 색채를 두루 갖추고 있으면서도 예술적 감성과 시적인 깊이까지 있다. 사실 데이비드 랭이 녹음하는 당일에 악보를 건네줘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때마침 내가 모스크바 공연을 마치고 새벽 비행기로 런던에 도착해 에어 스튜디오로 직행한 상태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또 연습 없이 대강대강 하는 걸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인생에는 갑작스럽게 주어진 상황에서 잘해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도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영화 출연은 이번이 처음인 걸로 안다. 극중에서도 프리마돈나 조수미, 본 모습 그대로 나온다. 그럼에도 영화 촬영인 만큼 연기라는 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전문배우는 아니지만 내게 연기는 전혀 새로운 영역이 아니다. 체계적으로 연기 공부를 해왔고 오페라 무대에도 여러 번 올랐다. 다만 이번에는 눈앞에서 카메라가 돌 뿐이었다. 마에스트로인 프레드와 나 사이의 팽팽한 기류를 만드는 일에 보다 신경을 썼다. 오직 자기 아내만이 부를 수 있다고 믿어온 <심플 송>을 조수미가 부르게 됐을 때 프레드는 ‘조수미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또 그런 그의 응시를 받아내며 ‘내가 이 곡을 어떻게 표현하나 두고 봐라’ 하는 눈빛을 줘야 했다. 대화가 없는 가운데서도 극의 서스펜스가 느껴지게끔 하는 게 중요했다.

-영화는 언제 처음 봤나. 큰 스크린을 통해 자신을 보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

=공연 일정으로 올해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유스>를 보지는 못했다. 공연 후에 이탈리아에 가서 영화관에서 봤는데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감동적이고 재미있었다. 나의 노년과 내 일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그레이트 뷰티>를 봤을 때 밀려왔던 감동이 다시 한번 오더라. 그때도 영화가 끝난 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그러했다.

-함께 촬영을 한 마이클 케인과 하비 카이텔에 대한 인상도 듣고 싶다.

=마이클 케인은 촬영 때 만나 이틀 내내 함께 있었는데 유머가 넘치는 분이었다. 노장인데도 가장 먼저 현장에 오시고 가장 늦게 가신다. 젊었을 때 한국전쟁에 참전해 본인이 겪었던 고생과 전쟁의 참담함에 대해 말해주기도 했다. 또 온 가족이 나의 팬이라는 말씀까지 해주셨다. 하비 카이텔은 영화 촬영 당시엔 만나지 못했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유스>를 상영하면서 만났다. 굉장히 신사적이고 멋진 분이다.

-<심플 송>이 골든글로브에 이어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의 주제가상 후보로도 올랐다.

=한번 들어서 귀에 꽂히는 팝한 곡도 아니고 지극히 클래식한 곡을 이해해주고 인정해준 것 같아 기분이 더 좋다. 아카데미의 주제가상 노미네이트도 조심스레 점치는 분들도 있더라. <심플 송>이 아카데미에서 수상한다면 나로서도 더없이 큰 영광일 것 같다.

-연말까지 한국에 머물면서 전국 콘서트를 이어간다. 쉴 틈이 없다.

=예술가들은 연말이 더 바쁘다.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예술가이니까. 굉장한 책임감을 갖고 내 일에 임한다. 그게 나의 기쁨이기도 하고. 집에서 혼자 노래한다고 그게 예술이 되는 게 아니잖나. 내 노래를 사랑해주고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나의 예술도 존재한다. 그게 예술가의 사명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최대한 즐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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