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업데이트
2015-12-31
글 : 김혜리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가벼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낌없이 베푸는 어머니, 청순한 요정, 팜므파탈, 스판덱스로 전신을 감싼 최종 병기. 모두 아니다. 욕망을 변명하지 않고, 과오를 통해 배우며,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을 관철한 2015년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을 돌아보았다. 열여섯칸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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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살까지 못해본 남자> <사고친 후에> <앵커맨>…. 주드 애파토우가 연출하거나 제작한 코미디를 보고 있으면, 외설적 대화를 주고받으며 짐짓 센 척하지만 실상은 새가슴인 사춘기 소년들이 떠오르곤 했다. 철들기가 두려워 친구들과 똘똘 뭉쳐 소파에서 뒹굴고, 여자를 상대하는 어려움을 야한 농담으로 무마하는 애파토우 영화의 남자들은 얼핏 중산층 가족주의에 저항하는 피터팬 일당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남자들은 대개 영화 말미에 이르면 짝짓기나 가족 만들기를 통해 성장을 확인한다. 심지어 보수적 ‘패밀리 맨’의 미래를 인생의 절대적 답안으로 받아들인 나머지, “어차피 언젠가는 투항할 거, 가능한 동안만큼은 최대한 철없이 놀자”고 결의한 인물들 같기도 하다. 주드 애파토우는 이 캐릭터들을 본인의 친구처럼 사랑한다. 증거? 배우들과 현장에서 만든 재미난 장면들을 버리지 못하다 보니 영화가 하염없이 길어진다. 이 버릇은 동시에, 감독의 친구들을 영화 안으로 불러들여 파티를 여는 카메오 과잉 현상으로 나타난다. 친구 그룹은 크게 둘로 나뉜다. 재능 있는 무명 코미디언들이 한쪽이고, 애파토우와 친분이 있는 각계 유명인사들이 두 번째다. 러닝타임이 줄어들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다. 끝으로 애파토우 감독의 코미디는 웃음 끝에 한 단계 성숙한 인생의 전망을 보여주고 교훈을 전하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 “15분 정도 줄여도 무방할 듯한데”라는 관객의 여론은, 애파토우 감독으로서는 실행하기 쉽지 않은 충고다.

TV쇼 <인사이드 에이미 슈머>로 급부상한 코미디언 에이미 슈머가 각본을 쓰고 주연한 신작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는 주로 남성주인공의 성장기가 지배해온 애파토우 영화를 최근 몇년 동안의 슬럼프에서 건져낸다. 뉴욕의 타블로이드 남성지 에디터인 30대 초반의 싱글 에이미(에이미 슈머)는 안정된 연애를 기피하며 파티와 원 나이트 스탠드에서 낙을 찾는다. 그녀의 아버지는 두딸이 열살도 되기 전에 “평생 인형 하나만 갖고 논다면 어떻겠니? 자! 아빠를 따라해봐. 한명한테만 충실한 관계는 비현실적이다!(monogamy isn’t realistic)”라는 말을 남기고 가족을 떠났다. 이혼의 여파로 엄마 손에서 힘들게 성장했음에도 에이미는 아버지를 여전히 좋아하고 아버지의 연애관을 내면화한다. <나를 찾아줘>의 또 다른 에이미가 논파한 대로, 에이미에게는 ‘쿨 걸’의 자질과 강박이 잠재돼 있다. 문제는 취재원으로 만난 스포츠 전문 닥터 아론(빌 헤이더)이 에이미에게 진지하고 참을성 있게 다가오면서 발생한다. “에이미가 저렇게 괜찮은 남자의 구애를 받을 자격이 있나?”라고 일부 관객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확실히 에이미는 극중 대사에 따르면 “예쁘지만 지나치게 예쁘지는 않고” 직장은 단지 허영의 전쟁터로 보이며 술도 과하게 마신다. 취한 나머지 생면부지 남자의 집에서 밤을 보내고 하이힐 바람으로 뒤뚱대며 새벽에 귀가하는 에이미의 모습은 그녀의 정돈되지 않은 생활을 대변한다. 반면 아론은 용모 단정하고 사명감 있는 프로페셔널이며, 연애부터 박애에 이르기까지- 그는 ‘국경 없는 의사회’ 회원이다- 사랑을 소중히 여긴다. 그런데 사랑받을 자격과 관련한 이 의문은 로맨틱 코미디의 여성 관객에겐 익숙한 것이다. 미숙하고 혼란에 빠진 남성 캐릭터에게 제삼자가 보기에 과분하게 매력적인 여성이 나타나 사랑을 통해 남자를 개선시키고 행복한 커플 천국에 입성하는 서사를 우리는 수도 없이 목격해왔다.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는, 술을 즐기고 성적으로 분방한 여성은 진실한 사랑을 받기 어렵다는, 남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이중 기준(double standard)에 대한 노골적 반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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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로서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의 1차적 재미는 전통적 데이트 에피소드에서 표현돼온 성 역할의 전도다. 아론이 여태 같이 잔 여자가 셋이라고 고백하자 에이미는 “나도 (같이 잔 여자는) 세명이에요”라고 대꾸한다. 가족을 여읜 날 애인을 위로하고 싶어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아론에게 “하필 이런 날 그 말을 해야겠냐!”고 성을 낸다. 아론의 클라이언트이자 베스트 프렌드인 농구 스타 르브론 제임스는 내 친구한테 정말 진지한 거냐고 염려스런 얼굴로 에이미에게 다짐을 요구한다. 한국 관객에게는 도발적인, 혹은 웃기기 위한 성 역할 전도로 보이는 이 설정은, 미국 관객에겐 현실의 뒤늦은 반영이다. 현대여성의 사회•경제적 역할 변화에 따라, 안정된 연애와 결혼은 남자들에게 오히려 절실한 필요가 되기도 했다. <CBS>와 인터뷰에서 에이미 슈머는 정착과 결혼을 바라는 쪽은 반드시 여성이라는 통념에 대해 “내 주변에선 그런 여자를 본 적이 없다. 만남 후에 열렬히 문자공세를 하는 쪽은 남자들이더라”라고 말했다. 주류 로맨스가 그리는 것과 달리 에이미라는 여성에게 섹스는 타락도 로망도 아닌 단지 스트레스를 푸는 출구라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어쨌든 전통적인 커플 맺어지기로 일단락되는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의 결말은 페미니스트 코미디언으로서 에이미 슈머를 주목해온 관객을 실망시킬 만하다. 결론을 놓고 보면 이 영화는 주드 애파토우 코미디의 도약이라기보다 주체의 성별을 바꾼 리노베이션에 가깝다. 즉,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에이미의 성장담이다. 만족스럽지 않은 직업, 묵은 상처를 품은 가족관계, 연애라는 세 가지 변수에 동시다발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그녀가 어렵사리 변화하는 이야기다. 전작들과 도착점은 같되 반대쪽 길을 돌아 도착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 ‘작은’ 업데이트가 훨씬 신선하고 큰 웃음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대중영화로서 중요하다. 정치적 올바름은 둘째치고 한쪽 성에 편향된 이야기는 재미의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나아가 변호하자면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의 피날레가 명시하는 사실은 에이미가 아론과 꾸준히 사귀어보기로 결심했다는 것, 거기까지다. 아론이 원하는 대로 결혼해서 마흔 전에 세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의 라이프 스타일을 청산하리라는 예상은, 관습에 길든 관객의 앞지른 상상으로 보인다. 이 여주인공에게 주어진 당면과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것인가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이고 거기에 답을 내릴 때 영화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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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의 쾌감은, 스크린 입성 전부터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작가로서 에이미 슈머가 추구해온 웃음과도 통한다. TV쇼와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그녀의 페미니스트 코미디 전략은, 이상적이고 긍정적인 여성 역할 모델을 제시해 남성 중심 사회가 여성을 인식하는 상투형을 반박하는 데에 있지 않다. 에이미 슈머의 캐릭터들은 시행착오 과정에서 우스운 꼴이 되길 두려워하지 않고, 법적 평등만큼이나 아이돌에 대해서도 열성적 견해를 표하는 여자다.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의 에이미는 말하자면 독립적으로, 엉망진창인 여자다. 아니 엉망진창이라는 말은 좀 과언이다. 에이미는 과음하고 냉소에 의지하고 무의미한 관계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 이 정도로 폐인 운운할 수는 없다. 내게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의 즐거움 중 하나는, 캔디와 왕자만 보다가 현실적으로 나쁜 여자와 현실적으로 좋은 남자를 보는 경험이었다. <스파이>의 주연 멜리사 매카시는 “코미디 작가들은 여성 배우들의 무기를 다 박탈해놓고 웃기기를 바란다. 아름답고 유능하고 성격도 착한데 남자친구가 없다는 상황만 주고는 ‘거 봐, 여자들은 재미없잖아’라고 평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에이미 슈머는 모든 무기를 쓴다. 뚱뚱하지 않은 금발의 젊은 여성은 별로 웃기지 않을 거라는 편견과 페미니스트는 유머 감각과 거리가 멀다는 통념을 동시에 우습게 만든다. 그녀 곁에 티나 페이, 에이미 폴러, 크리스틴 위그 같은 동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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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 시작한 조지 루카스의 프리퀄 3부작은 이제 와서 ‘흑역사’로 공인된다. 골수팬이 아닌 내게 세 영화는 그 정도 재앙은 아니었다(특히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는 꽤 재미있었다). 어차피 이 프랜차이즈의 본질과 특별함은, 신화적 원형을 종합해 조지 루카스가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창조한 은하계의 장구한 연표와 광대한 지도를 스크린에 그리는 데에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짝이는 첨단 CGI로 조지 루카스의 청사진을 낱낱이 실현한 프리퀄은 실패했다. 대중은 조물주로서 자기가 만든 우주의 빈 곳을 채우려는 조지 루카스의 사적 야망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의 오프닝 자막이 흘러나오던 순간 객석의 어리둥절함이 생생하다. 뭐? 관세가 어떻게 됐다고? 공화국 의회랑 무역 연합이 어쨌다고? 감정을 어디다 몰입하란 말인가! 팬들은 루크 스카이워커와 한 솔로, 레아의 모험으로 기억되는 전설의 계속을 원했다.

J. J. 에이브럼스 감독이 넘겨받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이하 <깨어난 포스>)의 재미와 감동의 큰 부분은 시리즈의 거대한 팬덤이 목말라 있던 노스탤지어의 버튼을 정확히 눌러주는 터치에 있다. 우선 첫 시사 후 쏟아져나온 감상대로 <깨어난 포스>의 줄거리는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의 ‘리팩’이래도 과언이 아니다. 제다이 기사단의 존재가 희미한 전설이 된 시대. 사막 행성에 사는 고아가 막연히 더 넓은 세상을 꿈꾸다 삑삑 소리를 내는 드로이드를 만나고 그가 보관하고 있는 정보가 저항군 진영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주인공은 방랑자들을 우연한 동지 삼아 모험을 계속하다 올블랙 복장의 강력한 악당과 대결한다. 제국군은 행성 하나를 날려버릴 만한 고출력 무기를 장전하지만, 저항군은 재치와 기동력으로 반격한다. 싸움이 끝난 후 주인공은 스스로의 운명을 각성하고 포스를 다루는 도를 터득하기로 결단한다. 이상이 두 영화의 포개지는 서사다. 물론 로렌스 캐스단과 J. J. 에이브럼스의 영리한 시나리오는 루카스표 편집과 대사의 뻣뻣함은 상속하지 않았다. 업데이트의 기술은, 오리지널 주역들의 속성을 나눠가진 새로운 캐릭터의 설정에 집중됐다. 제다이 루크 스카이워커의 상속자로 젊은 여성 레이(데이지 리들리)가, 한 솔로의 후예로 스톰트루퍼 출신 흑인 캐릭터 핀(존 보예가)이 선택됐다. 레아 공주의 직함은 장군으로 바뀌었고 레이는 도망칠 때마다 손을 잡아주려는 핀을 귀찮아한다. 아직 사명에 온전히 눈뜨지 않고 미숙한 두 젊은이는 연신 허둥거리고 적을 물리칠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신나 한다. 관객도 더불어 흥이 난다. 나아가 <깨어난 포스>는 공장에서 찍어낸 하이글로시 가전제품처럼 보였던 스톰트루퍼도 고유한 인격을 가진 개체라는 21세기적 설정을 보탰다. 이 영화의 초반 10분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는 스톰트루퍼의 하얀 헬멧에 찍힌 핏자국이다.

유머와 순발력을 장착한 마블의 스페이스 오페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스타워즈> 프리퀄이 무엇을 간과했는지 앞서 아프게 일깨운 바 있다. <깨어난 포스>는 이 대목에서도 발을 헛딛지 않았다. J. J. 에이브럼스는 <스타워즈>가 아기자기하고 코믹한 일종의 소프 오페라였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많은 펀치라인과 시각적 조크를 포함시켰다. 그리고 이 윙크의 대다수는 다시 오리지널 3부작의 대사와 미장센, 메커닉 디자인을 기억하는 팬들의 향수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홈커밍한 예전 캐릭터 가운데 백미는 한 솔로와 츄바카다. 해리슨 포드는 늙고 둔해진 외양 안에서도 젊은 한 솔로의 본성을 보존하는 오랜만의 멋진 연기를 보여준다. 동시에 예전의 한 솔로라면 내리지 않았을 후반의 결단을 통해 세월의 퇴적을 적절히 표현한다. 무엇보다 정치적 신념이 없는 무정부주의적 밀수꾼으로서 오리지널 3부작의 모던한 변수로 기능했던 솔로는, 흥미롭게도 <깨어난 포스>에 이르러서는 극중 사태에 ‘코멘터리’를 던지는 ‘포스트모던’한 캐릭터가 됐다. 이 지점에서 J. J. 에이브럼스 감독이 동시대 할리우드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미션 임파서블3>로 시리즈를 무난히 다음 주자에게 넘겼고 극장판 <스타트렉> 두편을 연출했고 이제 <스타워즈> 시리즈의 실질적 리부트를 수행했다. <슈퍼 에이트>는 속편이나 개작이 아니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의 배다른 형제처럼 보였다. 도대체 몇명의 크리에이터에게 보디 더블 역할을 한 셈인가! 그럼에도 J. J. 에이브럼스는 카피캣은 아니다. 브랜드가 확고한 원작의 팬들이 사랑하는 요소를 보존하면서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비난받지 않는 양질의 대중영화를 연출하는 재능에 있어 그는 독보적이다. 원작을 재가공한 거대 예산 블록버스터가 산업의 방향을 주도하는 시대에 스튜디오들이 이보다 안심하고 의탁할 수 있는 연출자가 달리 있을까 싶다.

그러나 J. J. 에이브럼스와 재가동된 <스타워즈> 시리즈를 향한 회의도 똑같은 이유에서 생겨난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영화들에는 좋건 나쁘건 확실한 인장(印章)이 있었다. <깨어난 포스>는 훨씬 현대적이고 재미있지만 고삐 풀린 상상력을 찾아보긴 어렵다. 멀리 보아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의 ‘편곡’으로 새로운 주기를 시작한 이 프랜차이즈가 은하계의 전쟁과 평화가 교대하는 영구 순환 구조를 깰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쥬라기 공원>이 공룡에 대한 매혹을 그린 영화였다면, 올해 할리우드 최고 흥행작에 등극한 <쥬라기 월드>는 영화 <쥬라기 공원>에 대한 매혹을 그린 영화였다. <깨어난 포스>는 저 너머 은하계에 관한 영화라기보다 <스타워즈> 설화 자체에 대한 영화로 느껴진다. 인물들은 스토리 중에 겪는 경험에 의해 변화하는 게 아니라 예정된 경로를 하나씩 클리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극중에서 헬멧이 필요하지도 않은데 할아버지 아나킨처럼 강해지고 싶어서 헬멧 착용을 고집하는 카일로 렌(애덤 드라이버)의 모습은, 이런 맥락에서 <깨어난 포스>라는 영화의 제작 동기를 의도치 않게 상징하는 듯하다. 그러나 모든 걱정을 차치하고 J. J. 에이브럼스 감독을 향한 지금 나의 가장 강력한 불만은 다음과 같다. 왜죠? <레이드> 시리즈의 천재 액션 배우들을 일껏 캐스팅해놓고 팔씨름 한번 안 시키시다니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죠?

<인 허 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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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개는 시간

<인 허 플레이스>는 미성년 여성에게 임신은 곧 인생의 끝장이며, 입양은 절대 비밀이어야 하는 문화를 전제한다. 어머니(길해연)는 10대 딸(안지혜)이 뜻하지 않게 임신하자 불임 부부와 비밀 입양 계약을 맺는다. 소녀는 상황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채 동요한다. 입양할 여자(윤다경)가 찾아온 이후 줄곧 경직됐던 모녀는 영화가 절반쯤 흘러간 어느 저녁 (기저귀처럼 보이는) 빨래를 개며 처음으로 살가운 한때를 갖는다. 어머니는 아기에게 장애가 있으면 어떻게 하냐는 딸의 물음에 태아가 듣는다고 평범한 할머니처럼 손사래를 치고 나중에 결혼해 출산하면 다 키워줄 테니 하고 싶은 일하며 살라고 부탁한다. 귀농에 실패한 그녀에게 딸은 못다 이룬 멋진 인생을 대신 살 분신이기도 하다. 그러다가도 엄마는, 압수한 휴대폰을 달라고 조르는 딸에게 버럭 야단을 친다. ‘사건’ 이전에 이 모녀가 유지해온 평온하고 친밀한 관계를 엿보게 하는 이 장면은, 영화 후반에 닥치는 상실감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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