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 x cross]
[trans x cross] 매체와 장르를 넘나드는 이야기꾼
2016-01-04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조선마술사> 김탁환, 이원태 작가
김탁환, 이원태(왼쪽부터).

고향 친구에서 한배를 탄 동업자가 된 김탁환, 이원태 작가는 10년 전 싱가포르 여행에서 한방을 쓰며 “서로가 이야기꾼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장편소설 <목격자들> <방각본 살인사건> <열하광인> 등 역사에서 이야기 길어올리기를 즐기는 김탁환 작가와 MBC PD로 십년 이상 방송 연출을 해온 이원태 작가가 서로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따 ‘원탁’이라는 회사를 차린 지는 3년쯤 됐다. 10년쯤 전부터 <노서아가비> <뱅크> 등의 이야기를 함께 기획하고 썼던 두 작가는 이제 공통의 목표를 향해 노를 저어가고 있다. 지난해 출간된 ‘무블’(movel) 시리즈 첫 번째 작품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에 이어 그들은 올해 11월 <조선마술사>를 선보였다. 그들이 만든 하나의 원형 이야기는 영화와 소설, 웹소설과 드라마 등으로 가지를 쭉쭉 뻗어가고 있다. 영화 <조선마술사>의 개봉을 앞두고 원작자인 두 작가를 만났다.

-<조선마술사>는 ‘원탁’의 무블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며 예술이자 산업인 이야기에 몰두하고자 창작집단 원탁을 결성했다”고 했다. 두분이 의기투합하며 일한 지는 십년쯤 됐는데, 원탁이란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협업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김탁환_회사를 만든 건 3년 됐다. 전에도 각자의 일을 하면서 함께 스토리를 기획했는데, 이제는 취미생활로 하지 말고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한 거다. 영화 기획을 제대로 하려면 틀이 필요하니까 아예 회사를 만들어 원탁이란 이름으로 차곡차곡 그 결과들을 쌓아보기로 했다.

-뭉쳐서 일하니 전보다 효율성이 높아졌나.

=이원태_일단 공통의 목표가 생겼다. 전에는 퇴근하고 만나서 커피나 맥주 한잔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이제는 공통의 미션을 가지고 작업에 집중한다. 구체적인 목표와 방향성이 확실히 잡혔다.

-무블은 영화(movie)와 소설(novel)의 합성어다. “영화 같은 소설, 소설 같은 영화로 이야기의 변화무쌍을 지향한다”고 했는데, 각 매체에 더 어울리는 이야기가 따로 존재한다고 보나.

=이원태_확실히 장르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따로 있다. 김탁환 작가의 소설 <뱅크>는 기획할 때부터 영화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50부작, 100부작 드라마로는 좋은 기획이란 생각을 했고 우리의 예상대로 드라마 판권 계약을 했다. 반대로 <조선마술사>는 처음부터 ‘이건 영화다’, 생각하고 작업한 작품이다. 혹은 매직과 뮤지컬을 합친 ‘매지컬’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개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개인 창작과 달리 공동 작업은 서로의 특성이 한데 섞여 그것이 결과로 반영된다.

=김탁환_우리 두 사람의 개성이 잘 드러난 소설들이 무블 작품이다. 소설 쓰기와 달리 영화 기획 및 각본 작업은 얼마든지 공동 작업이 가능하잖나. 개개인의 재주를 총동원해 이야기의 퀄리티를 높여나가는 과정이 재밌더라. 나 같은 경우 원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저 책을 보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는데, 이 친구와 작업하면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영상을 찾아보는 데에도 익숙한 사람이 됐다. 결과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기술이 더 확장되었다고 본다.

-취향은 비슷한가.

=이원태_고향(마산)이 같고 나이가 같다.

김탁환_촌놈들이다. 사투리는 이 친구가 더 심하고. (웃음)

이원태_게다가 둘 다 장남이고, 생일도 하루 차이로 내가 빠르다. 지금도 같은 동네에 산다. 그래서인지 기본 정서가 비슷하다. 그러한 바탕 위에 취향은 다르다. 김탁환 작가가 좀더 여성적 취향의 글쓰기에 강하다. 앞서 나온 첫 번째 무블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이 남성적인 작품인데, 그 작품 기획할 땐 내가 몰아붙였고, 로맨스 장르인 <조선마술사> 때는 김탁환 작가가 닭살 돋는 문장들로 사랑을 잘 표현했다.

김탁환_밀어 전문이다. 사랑의 밀어 전문. (웃음)

-<조선마술사>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환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발전시킨 것으로 안다.

=김탁환_<열하일기>는 볼 때마다 새롭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는데 그중에서도 ‘환희기’가 참 독특하다. 청나라에 사신으로 간 박지원이 청나라 마술사가 시장에서 마술을 선보이는 걸 보고 그 앞에 자리잡고 앉아 마술 기법을 받아 적은 글이다.

이원태_‘환희기’를 보며 놀란 건 책에 소개된 20여 가지 마술 중 절반 이상이 지금의 마술사들이 선보이는 마술이란 거였다. 그러다 갑자기 제목이 떠올랐다. 조선마술사! 그땐 이미 호흡이 잘 맞을 때라 제목이 정해지고 나자 그 자리에서 이야기의 큰 구조가 다 만들어졌다.

-조선의 마술사 이야기를 추리극이나 액션극으로 풀 수도 있었을 텐데 사랑 이야기로 풀었다.

=이원태_조선마술사, 말 그대로 조선의 국가대표 마술사 아닌가. 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속국 같은 신세였으니 우리가 힘으로는 청나라를 못 이기지만 마술로 청나라를 이기는 이야기를 해보자 싶어서 마술 배틀 구조를 떠올렸다. 배틀을 하게 되면 무언가를 걸어야 할 테고, 그러면 통속적이지만 사랑을 걸어보자 했던 거다.

김탁환_거기서 마술사는 천민이니까 이 여인의 신분을 공주로 만들면 사랑의 시련이 더 커지겠다는 착상을 했다. 퇴고하는 과정에선 이 사랑의 성격, 이 사랑의 특별함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마술사는 여자를 사랑한 대가로 마술을 잃고 소설을 쓰게 된다. 소설 습작을 하던 공주는 사랑을 통해 마술사가 된다. 또 한 사람은 빛나는 자리에 있다가 어둠으로 들어가고 한 사람은 어둠 속에서 빛으로 들어간다.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의 역할이 바뀌는 거다. 그게 사랑의 위력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세부적으로 사랑의 특별함으로 이야기를 감싸는데 5년이 걸렸다. 2010년에 소설 초고를 완성했고 2011년 초에 <조선마술사> 영화 판권 계약을 했는데, 그때부터 영화는 영화대로 이야기를 발전시켰고 우리는 우리대로 소설의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같은 제목, 같은 설정을 가지고 영화와 책이 다른 길을 걷게 된 셈인데, 서로가 그린 사랑의 빛깔을 비교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판권 계약 후엔 영화 작업에 전혀 관여하지 않나.

=이원태_소설과 영화는 서로 다른 문법과 논리를 가지고 있다. 예전에 MBC에서 PD로 일할 때 박경리 작가님의 원작 <김약국의 딸들>로 드라마를 연출한 적이 있다. 그때 박경리 선생님을 찾아뵙고 말씀드렸다. “선생님, 제가 드라마를 연출해야 하는데 선생님 작품이 많이 바뀔 겁니다. 보지 마세요. 마음 아프실 겁니다.” 그랬더니 “내가 그런 일 한두번 겪었겠나. 내가 자기네들한테 판권 판 거 아냐. 내 품에서 떠난 작품은 내 것이 아니고 독자들 거야”라고 하시더라. 드라마와 영화의 현실논리가 따로 있다는 걸 이해해주신 거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판권을 팔았으니, 관여하는 건 오버다.

-<조선마술사>는 웹소설로 먼저 공개됐다. 웹소설, 책, 영화의 순으로 독자들을 만났다.

=김탁환_2010년엔 지금과 같은 웹소설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시절엔 카카오톡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소설과 영화 플랫폼만 생각했는데 그사이에 웹소설이 생겨났다. 요즘은 모바일이 강력한 이야기 전파 매체 아닌가. 우리는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이라, 우리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하나 더 생겼다 생각하고 즐겁게 작업했다.

이원태_모바일 사업자, 출판사, 영화사 서로가 윈윈인 것 같다. 이처럼 하나의 좋은 스토리가 여러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고 시너지를 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목표이기도 하다.

-유연한 사고와 성실한 글쓰기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하다.

=김탁환_글쎄. 처음 소설을 쓸 땐 소설 쓰는 일이 다른 일보다 위대하고 훌륭하다는 착각 속에 살았다. 소설이 최고이고 다른 장르는 그 밑이라는 생각. 그런데 살다보니 제일 중요한 건 삶이더라.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보이면서, 인생도 저렇게 다양한데 내밀하고 고독한 글쓰기만이 최고라는 생각이 잘못된 거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우연히 소설을 통해서 이야기를 배운 사람이다. 책 읽기를 좋아했고 국문과에 들어갔고 소설을 통해서 이야기 만드는 걸 배웠다. 이원태 감독은 영상을 통해서 쭉 이야기를 만들다 이야기꾼이 된 사람이고. 중요한 건 인간의 삶을 잘 그리는 이야기꾼이 되는 거다. 꾸준함은 기본인데, 요즘은 옛날처럼 과잉의 상태로 글을 쓰진 않는다.

-세 번째 무블 시리즈는 <아편전쟁>이다. 어떤 이야기인가.

=김탁환_아편전쟁에 관한 얘기다. (웃음) 앞선 작품들보다 좀더 무겁고 어둡다. 내년 봄에 책이 나올 예정이고, 최근에 영화사와 영화화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 상황이다.

“사랑을 썼다”

<조선마술사> 김탁환•이원태 지음 / 민음사 펴냄

1838년 빅토리아 여왕의 대관식 전날, 빅토리아 여왕이 카타리나라는 여성 마술사를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조선 최고의 마술사 환희는 물랑루에 발을 들인 청명옹주와 운명적 만남을 가진다. 한편 청나라 사신은 청명을 청나라 세자의 후궁으로 지목하고, 환희와 청나라 최고의 마술사 귀몰은 마술 대결을 펼쳐 각자의 뜻을 이루려 한다. “사랑을 썼다”는 ‘작가의 말’ 첫 문장처럼, <조선마술사>는 조선에서 대영제국까지 마술과 사랑의 힘으로 장애물을 뛰어넘는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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