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마틴 프리먼] 매혹적인 평범함
2016-01-12
글 : 장영엽
<셜록: 유령신부> 마틴 프리먼
<셜록: 유령신부>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셜록: 유령신부>(2016) <호빗: 다섯 군대 전투>(2014)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2013) <세이빙 산타>(2013) <더 월즈 엔드>(2013) <호빗: 뜻밖의 여정>(2012) <허당 해적단>(2012) <크리스마스 스타!>(2009) <와일드 타겟>(2009) <뜨거운 녀석들>(2007) <올 투게더>(2007) <굿나잇>(2006)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2005) <새벽의 저주>(2004) <러브 액츄얼리>(2003) <못 말리는 알리>(2002)

드라마 <아이히만 쇼>(2015) <파고>(2015) <셜록>(2010~) <하드웨어>(2003) <오피스>(2001)

<셜록: 유령신부>는 존 왓슨(마틴 프리먼)의 얼굴로부터 시작되는 작품이다. 끔찍한 전쟁을 경험하고 상이용사가 된 그는, “대영제국의 별 볼 일 없는 인간들이 모두 모여드는 거대한 시궁창” 런던으로 향하고 전우의 제안으로 룸메이트를 소개받는다. 룸메이트와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에서, 그는 시체에 멍이 들려면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되는지 알기 위해 사정없이 시체를 채찍으로 내리치는 괴상한 청년을 만난다(그게 셜록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왓슨이 그 자리를 박차고 전우에게 욕을 퍼부으며 도망치는 유의 남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마치 지금까지 이런 종류의 모험을 기다려왔다는 듯, 반듯한 영국 신사 같은 외모의 왓슨은 머리는 비상하지만 사회성은 제로인 룸메이트 셜록의 모험에 기꺼이 동참한다.

영국 드라마 <오피스>의 팀 캔터버리를 연기할 때만 해도, 마틴 프리먼이 기상천외한 모험을 떠나는 평범한 남자의 아이콘이 될 거라 짐작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거다. 회사를 떠나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결코 실행에 옮기는 법이 없던 팀 캔터버리는, 회사 동료 가레스(매켄지 크룩)의 젤리 속에 스테이플러를 넣어두고 동료가 화내는 모습에 소소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오피스> 이후 마틴 프리먼이 선택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평범하고 유순한 인상을 지닌 이 영국 배우가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는 점을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각인시켰다. 15년간 알고 지냈던 친구가 알고보니 외계인이었던 탓에 나이트가운만 걸치고 지구가 철거되기 전 우주선에 탑승하게 된 아서 덴트를 연기하며, 마틴 프리먼은 엉겁결에 지구의 마지막 생존자가 된 소시민의 당황스러움과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낸다. 안락한 집에서 티타임을 즐기다 어느 날 갑자기 중간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모험을 떠나게 되는 <호빗> 3부작의 빌보 배긴스도 마찬가지다. 어느덧 마틴 프리먼은 특별한 상황에 처한 평범한 사람의 잠재력을 표현하길 바라는 21세기 창작자들에게 최적의 선택지로 자리잡았다. 영국 드라마 <셜록>의 크리에이터 스티브 모팻의 두 주연배우에 대한 상반된 코멘트가 이를 증명한다. “(셜록 역의)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아름답고 이국적인 창조물이다. 그는 절대로 평범한 사람을 연기할 수 없을 거다. 왜냐하면 그건 그답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거다. (중략) 마틴 프리먼은 정확히 그 반대의 경우라고 생각한다. 그는 평범한 사람을 매혹적으로 만드는 데 소질이 있다. 그는 평범함 가운데서 우아한 아름다움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다. 이것이 그의 특별한 재능이다. 그는 우리의 삶에 대해 얘기할 줄 알고, 우리의 일상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셜록: 유령신부>에서도 우리는 셜록처럼 화려하진 않으나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존 왓슨의 위트와 재치를 만나게 된다. 21세기에서 1895년의 빅토리아 시대로 배경을 옮겼지만 여전히 셜록 홈스의 드라마틱한 모험을 기록하는 건 왓슨의 몫이다. 사건을 수사하고 탐구해나가는 건 두 사람의 일이나, 그 사건을 세상이 알게 되는 방식은 지극히 왓슨의 관점을 따르고 있다는 얘기다. 허드슨 부인이 <스트랜드 매거진>의 글에서 왜 자신을 말이 없는 사람으로 묘사했느냐고 따지며 투덜거리는 장면은 왓슨이 쥐고 있는 결코 작지 않은 권력을 방증하는 일화다. 게다가 이번 작품에서 왓슨이 맡은 건 극중 서술자로서의 역할만이 아니다. 그는 유령신부의 출현으로 전전긍긍하는 레스트레이드 경감의 조바심을 읽어내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콧수염을 붙이고 남자 행세를 하는 몰리의 정체를 알아보는 눈 밝은 관찰자이기도 하다. 물론 셜록과의 ‘브로맨스’도 빼놓을 수 없다. 유령신부 사건을 수사하다가 만난 카마이클 부인이 썩 괜찮은 여자라며 은근슬쩍 셜록의 마음을 떠보는 장면에서는 왓슨의 묘한 질투심도 느껴진다. 이전 시리즈에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새로운 여인(왓슨의 부인, 메리가 그녀다)의 존재를 의식하는 쪽이 셜록이었다면, <셜록: 유령신부>에서는 그 미묘한 감정을 먼저 드러내는 쪽이 왓슨이라는 점에서 이전 시리즈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달라진 왓슨의 모습을 감지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위대한 인물을 곁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동상 같은 캐릭터는 연기하고 싶지 않다. 주인공인 셜록만큼 능력 있고 동등한 위치에 있는 인물을 연기하는 게 좋다”는 건 <셜록> 시리즈에 임하는 마틴 프리먼의 신조다. 그건 비단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하는 셜록과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코난 도일의 원작 소설 속 왓슨은 물론이고 나이젤 브루스, 안드레 모렐, 로버트 듀발 등 수많은 배우들이 거쳐간 왓슨이라는 캐릭터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마틴 프리먼은 누군가의 그림자에 매몰되지 않는 나름의 균형을 찾길 원했다. 그런 그가 구현해내길 원한 건 “셜록에게 밝고 활기찬 기운을 실어주되 코미디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왓슨의 모습이었다. 종종 나이젤 브루스의 왓슨이 지닌 ‘허당’기가 엿보이지만, 어떤 장면에서도 캐릭터를 희화화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는 프리먼의 존 왓슨은 그렇게 누구의 왓슨과도 닮지 않은 모습으로 구현되었다. “그는 무언가를 하는 ‘척’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맞지 않는 배우다. 마틴 프리먼은 캐릭터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아주 정직하게 연기하는 배우”라는 피터 잭슨의 말을 <셜록: 유령신부>의 프리먼에게 대입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셜록> 시리즈의 팬들이 즐겨 쓰는 관용구가 있다. “마틴 프리먼은 잼과 고양이, 그리고 분노로 만들어진 존재다.”(Martin Freeman is made of jam, kittens, and rage) ‘잼’은 <셜록>의 팬픽션 만화 속에서 왓슨이 잼을 좋아한다는 설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고양이’는 팬들의 눈에 마틴 프리먼이 고양이처럼 귀엽게 비친다는 의미라고.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갸웃거리게 되는 건 세 번째, ‘분노’에 대한 묘사일 거다. 흥미롭게도 카메라 프레임을 벗어난 일상 속의 마틴 프리먼은 영화 속 푸근하고 귀여운 이미지와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여왔다.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거침없는 말투와 행동이 그렇다. 그런 그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없다면 당장 해외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마틴 프리먼의 이름을 입력해보길. ‘F워드’와 감정적인 말이 난무하는 인터뷰와 <호빗> 촬영 현장의 이곳저곳에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짓궂은 미소를 띠고 있는 동영상이 잔뜩 쏟아질 거다. 이러한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종종 ‘선을 넘어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할리우드 스타 루시 리우에게 ‘성적 매력이 없는 여자’라며 무례한 농담을 하고, “난쟁이, 호빗, 요정 중 누구와 데이트를 하겠느냐”는 TV 프로그램 사회자의 질문에 당연히 엘프라고 말하며 강간을 암시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프리먼의 태도는 사회적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여러 의미로 한국 팬들이 붙여준 ‘자유인’(프리먼(freeman)이라는 이름으로부터 비롯되었다)이라는 애칭이 더없이 어울리는 영국 출신 이 악동 배우의 차기작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다. <호빗> 프랜차이즈에 이어 다시금 할리우드를 공략할 마틴 프리먼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셜록> 시즌3

<셜록> 시즌3, 두 번째 에피소드의 결혼식 장면

마틴 프리먼은 할리우드와 영국 영화계가 알아주는 ‘패밀리맨’이다. “어떤 작업을 하건 내게 있어서 최고의 우선권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세 사람을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마틴 프리먼은 영국 배우 아만다 애빙턴과의 사이에 두 아이를 두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아만다 애빙턴이 <셜록> 시리즈에서 왓슨의 부인 메리를 연기한다는 점이다. “(결혼은) 우리 사이의 미스터리로 남겨두자”는 생각에 아직까지도 동거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 두 배우가 <셜록>의 세 번째 시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은 리얼리티와 영화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물론, 이들 부부 사이에 끼어든 셜록의 복잡미묘한 행동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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