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애니메이터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총체적 단어로 인식되지만, 분업이 확실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터는 캐릭터의 감정 연기와 액션 연기를 담당하는 이들을 말한다. 한국에서 의사로 일하다 2006년 픽사에 입사한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업>(2009), <토이 스토리3>(2010),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2), <인사이드 아웃>(2015) 등에 애니메이터로 참여했다. <굿 다이노>에선 알로와 스팟 캐릭터의 연기를 맡았다. 알로와 스팟이 베리 열매를 따기 위해 끊어진 절벽을 건너는 장면은 그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 대표적 신이다.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이 장면이 어떤 공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 보여주기 위해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직접 만들어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알로는 코끼리의 움직임을, 스팟은 강아지의 움직임을 참고했다고 들었다. 두 캐릭터의 특성을 어떻게 파악하고 작업했나.
=움직임도 움직임이지만, 두 캐릭터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선 알로와 스팟의 크기 차이, 무게감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알로는 좀더 무겁게, 스팟은 좀더 빠르고 가볍게. 물리적인 것의 표현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의 특징을 살리는 것도 중요했다. 입을 어떻게 벌리느냐에 따라 아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른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피터 손 감독은 알로를 ‘영 보이’라 칭하더라. ‘꼬마’인 동시에 ‘공룡’인 알로의 표정과 행동을 만들면서 어떤 점이 어려웠고 재밌었나.
=성장하기 전후의 차이를 표현하는 거였다. 성장한 알로는 마냥 아이 같아선 안 된다.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알로는 꼬마다. 자신감을 얻은 성장한 알로와 여전히 아이 같은 알로, 그렇게 상충된 지점을 잘 섞고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았다.
-표현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애니메이터들이 참고 영상을 많이 찍는 것으로 안다.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나 역시 직접 연기도 하고 동영상도 찍는다. 혼자 힘으로 부족할 땐 가족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가 손을 대 메모리 구슬이 푸른색으로 변하고 이를 안 기쁨이가 슬픔이에게서 구슬을 빼앗으려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 작업할 때 아이들에게 연기를 시켰다. 공을 잡고 힘겨루기를 하면 동생인 딸이 다 큰 아들에게 막 끌려다니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촬영한 영상을 참고 삼아 그 장면을 표현했다.
-의사에서 애니메이터가 됐다. 레지던트 1년차에 의사 일을 접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픽사에 입사했다.
=어린 시절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했고,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학교(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를 졸업하고 픽사에 인턴으로 들어가 <라따뚜이>(2007)를 작업했다. 인턴을 마친 후엔 게임회사 블리자드에서 1년 반 동안 일했고, 다시 픽사에 입사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스토리, 기술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파트가 있는데, 애니메이터로서 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또 그것만의 재미는 무엇인가.
=애니메이션 파트는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은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모델링된 캐릭터가 콘티에 따라 움직여도, 애니메이션 부서를 거치기 전까진 캐릭터들이 무생물처럼 보인다. 거기에 생생한 표정과 움직임을 덧입히는 게 마치 생명을 불어넣는 것과 비슷하달까. 그런 점에 희열을 느낀 것 같다.
-피터 손 감독이 디즈니•픽사 최초의 아시아 감독이 됐다. 이 사실이 픽사 내 아시아 스탭들에게 격려와 자극을 주었나.
=당연히 그렇다. 지금까지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아시아인은)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차별이 있다는 게 아니라 상황이 그랬다는 얘기다. 그런데 중요한 직책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니까 ‘(아시아인도) 되네’ 하고 생각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