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 감독을 두고 사람들은 말한다. 착한 영화를 만드는 착한 감독이라고.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할까. “거북하다. (웃음) 다만 내가 착해지고 싶은 욕망, 나의 지향점이 영화에 드러나는 것 같다. 어쩌면 한상렬 소위(임시완)의 모습이 내가 바라는 이상향일 수는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내 마음이 편하더라.” 적어도 그가 착한 사람임은 맞는 것 같다. 캐릭터에 대한 배우의 해석을 존중해 자신의 의견은 일단 꾹 참고 접어둔다거나, 노래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여뻐 빠듯한 러닝타임에도 굳이 모든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씩 다 넣었다는 등의 일화를 듣다보면, 그의 세계관에서 영화나 연출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우선인 듯도 하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는 아무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한 감독의 그런 연출관이 <오빠생각> 안에 어떤 형태로 스몄는지를 짚어보는 건 유의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빠생각>은 <연애소설>(2002), <청춘만화>(2006), <내 사랑>(2007), <완득이>(2011), <우아한 거짓말>(2013)에 이은 이한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영화다.
-전작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의 원작은 의식적으로라도 ‘위로하지 않으려는’ 작품들이었다. 영화로의 각색도 원작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했다. 반면 <오빠생각>은 어떻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게 되는, 혹은 그걸 바라는 영화다. 감독이 결국 그리고 싶었던 것이 이것일까 싶다.
=6•25 전쟁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전쟁과 아무 연관이 없는 아이들이 희생을 치러야 했던 역사적 아픔을, 당시를 살았던 남자가 이 아이들을 가엾게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한 남자의 관심이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계속 아픔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그렇게 성장하는 사람들을 얘기하고 싶었다.
-이우탁 작가가 각본을 썼고 감독은 각색을 했다. 초기 시나리오에서 얼마나 바뀌었나.
=동구(정준원), 순이(이레)의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합창단이 모이는 과정, 한상렬 소위와 갈고리(이희준)의 캐릭터를 수정했다.
-<오빠생각>에서도 전작 두편과 같이 유사가족, 대안가족에의 긍정적 시선이 느껴진다.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하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한 소위처럼 아픔을 겪은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일 수도 있고, <완득이>에선 동주 선생(김윤석)이 그런 존재다. <우아한 거짓말>은 조금 다르게 화연(김유정)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말했다. 결국 친밀한 인간관계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거다. 나이가 들다보니(웃음) 혼자 행복할 수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아간다. 긴 행복은 지속적이고 제대로 된 관계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결혼과 출산이 연출자로서의 비전에 큰 영향을 주었나.
=아주 많이 줬다. 나는 결혼하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르다. 스스로에게만 향하던 시선이 결혼하고 나서는 나를 벗어나 내 아내, 태어난 아기에게 가더라. 내 아이가 처해 있는 사회를 생각하게 되고.
-어린이 배우들과 일하는 환경은 어땠나.
=아이들을 원래 좋아한다. 아역배우가 어린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짜증이 날 때도 있다. 밤 촬영 땐 졸고, 슛 들어가도 딴짓을 멈추지 않고. 하지만 애들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혼내지 않게 되더라. 전부 아역배우였는데 전문적으로 합창을 배운 경험이 있는 아이는 한명도 없었다. 교회나 학교에서 합창해 본 아이가 두명 정도 있었을 뿐이고 다 오디션을 보고 뽑았다. 4개월간 노래를 가르치고 촬영하면서 이 아이들이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노래 부르는 걸 너무 즐거워해서 다행이었다.
-동요 선곡과 편곡에 있어서 이재진 음악감독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우선 그 시절에 존재했던 노래여야 했다. <고향의 봄>의 초반 느낌은 너무 희망이 없게 느껴졌는데 한 소위라면 달리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문득 생각나서 밝게 편곡해보면 어떻겠냐고 내 구상을 말씀드렸더니 잠시 곤혹스러워하시다 흔쾌히 편곡을 다시 해주셨다. 합창 연출의 레퍼런스는 달리 없었다. 다만 아이들의 모습을 한컷씩이라도 무조건 다 넣어주려고 했다. 사실 영화로만 보면 정준원, 이레만 보여줘도 충분하잖나. 예쁘고 아끼는 마음에서 한명도 빼놓지 않고 모든 애들의 얼굴을 다 넣었다. 아이들이 노래하는 모습 자체가 그냥 좋았다. 그 아이들이 노래를 즐겁게 열심히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정점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100억원 규모의 제작비는 주로 공간과 전투 신에 사용된 건가.
=고아원, 교회, 막사가 포함된 부대 자체를 다 만들어야 했다. 몇 천평 되는 부지가 원래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지반 평탄화 작업을 다 거친 뒤 건물을 올렸다. 물론 전투 신에도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총알 한방이 무척 비싸더라. (웃음) 군인들 옷도 다 새로 제작했다. 역시 가장 수고한 게 미술팀이다.
-배우들이 다들 이한 감독을 너무 좋아하고 신뢰하더라. 말만 들어보면 경주, 합천에서 4개월간 휴가라도 다녀온 듯했다.
=이희준씨는 촬영이 없는 날이나 촬영 들어가기 전에 미리 와서 혼자 부지를 걸어다니곤 했다. 그곳의 공기를 마시고 싶다면서. (웃음) 스스로 현장에 익숙해지고 싶었던 것 같다. 배우들에게서 도움받은 게 많다. 내가 가진 그릇, 역량이 억지로 키운다고 커질 리 없다. 영화를 위해서라면 나는 얼마든지 기껍게 배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거기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희준은 “배우의 자발성을 유도하는 연출자”라는 면에서 이한 감독과의 작업이 무척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배우들이 촬영 전에 나에게 많이 다가와줬다. 이거 봐달라면서 연구해온 것들을 내밀었다. 나는 촬영에 들어가면 동선에 관해서만 말한다. 캐릭터에 대한 대화는 그전에 충분히 나누지만, 배우가 현장에 준비해온 것들이 또 있을 것 아닌가. 대부분은 시나리오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일단 꾹 참는다. 배우가 생각해온 것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이견이 생기면 직설적으로 말하는 편이지만 대부분은 배우가 해석해오는 게 좋더라. 없던 것도 나오고. 배우도 더 의욕적이고 즐거워했다. 배우도 한명의 창작자이지 않나.
-<오빠생각>이 임시완에게는 첫 영화 주연작이다. 한 소위 캐릭터엔 임시완의 본래 성격이 많이 반영된 것 같다.
=실제로 그에게서 받는 느낌을 노린 건 사실이다. 이러 이러할 거라 추측했고, 그게 맞았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는데 평소 행동들이 한 소위 같다. 테스트 촬영하는 날, 배달된 도시락을 일일이 열고 숟가락까지 얹어서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도 영화 속 한 소위의 것이었다. 그 자연스러움이 한 소위와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했다.
-한 소위도 그렇지만 임시완도 굉장히 근면성실한 사람으로 보인다. 주어진 일을 정말 열심히 한다고 할까. 1039호 표지 촬영 때 보니 참 한결같다는 인상이었다.
=어휴, 말도 못한다. (웃음) 실제로도 그렇다. 본인은 ‘척’이라고 하더라. 착한 척, 성실한 척하는 거란다. 그런데 그게 바로 한 소위 아닌가. 착한 척한다고 그걸 또 그대로 말하는 것도 재밌다. 시완씨도 지겹지 않을까. ‘쟤는 결점이 없어’라고 하는 말이. (웃음) 재능도 재능인데,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이 최고의 배우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딜 데려다놔도 잘할 거다.
-‘공대 남자’인 임시완과 이희준은 A, B 없이 C를 도출하지 못하는 유형의 사람들이다보니 그게 연기에도 티가 나더라.
=너무 정확한 걸 요구한다. (웃음) 기저엔 원인이 있겠지만 인간의 감정엔 설명이 안 되는 경우도 있잖나. 굉장히, 열심히, 추상적으로 설명하면 온전히 납득을 못하는 것 같았다. (웃음) 그 덕에 나도 캐릭터를 더 고민하는 기회가 됐다.
-반면 고아성은 직관적으로 연기하는 배우라 두 남자배우들과 합이 좋아 보였다. <우아한 거짓말>에 이어 두 번째로 함께 일하는 건데 고아성의 어떤 점이 특별했나.
=아성씨는 물어보지 않아도 안다. 아성씨가 맡은 박주미 선생의 연기는 내가 현장에서 주문한 게 많았다. 그러면 아성씨는 그냥 ‘네’ 하고서는 그걸 해낸다. 그게 이상하지도 않다. 아성씨의 머릿속에 들어간 게 아니니까 내가 장담할 순 없지만 연기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굉장히 순수하다고 느꼈다. 카메라에 어떻게 비칠지 계산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보지 못했던 걸 보여준다. 연기에 대해 본인이 가진 순수한 태도에서 나오는 것 같다. 연기하는 걸 보고 아성씨에게 “주미 선생이 웃으면 나도 웃음이 나고, 감동하면 나도 감동받는 느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원작이 있던 <우아한 거짓말>과 달리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바탕한 <오빠생각>은 감독이 배우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지점도 있을 것 같다. “순수”라는 표현을 썼는데, 실제로 박주미 선생을 묘사하는 대사에 “하얗다”는 표현이 있잖나. 고아성을 깨끗하고 맑은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박주미 선생 캐릭터는 아성씨의 실제 성격과 오드리 헵번을 참고했다. 오드리 헵번도 배우 은퇴하고 봉사활동을 쭉 했잖나. 아이들을 가여워할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밝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해서 아이들 앞에선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하더라.
-한 소위는 싸우는 두 아이에게 이것은 “어른들의 일이고, 책임”이라고 한다. 어른의 책임을 묻고자 했던 것 같다.
=굳이 책임 소재를 따지려 한 건 아니었다. 다만 너희 잘못이 아니라는 것만은 명백했으니까. ‘우리 어른들이 너희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들리게 하려던 의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등장인물들이 스스로 바깥과 싸우고 있는 것 같진 않다. 단지 아이들과 그들만의 낙원을 만들고 있다는 인상이다.
=한 소위는 음악가이지 않은가. 음악이 가진 치유의 힘을 아는 사람이다. 아이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는, 그런 아주 작은 목적이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여기서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과 깨끗한 잠자리만은 줄 수 있잖나.
-합창 장면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누구를 위한 위로인가 싶다. 결국 그 아이들을 그곳에 그렇게 남아있게 한 어른들의 눈에 비치는, 그들이 그렇게 보고 싶었기 때문에 어여뻐 보이는 아름다움인 것 같다.
=신나는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모든 걸 잊을 수 있다. 아무리 삶이 고단해도 좋아하는 걸 하고 있을 땐 아주 잠깐이라도 즐거울 수 있잖나. 빈민촌에 살더라도 아주 찰나의 즐거운 순간이 있을 수 있는 거다. 왜 이 영화는 그들의 고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가를 묻는다면, 노래 부를 때의 순수한 표정을 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다. 당시 아이들도 노래할 때만큼은 그런 얼굴을 했을 것 같다.
-오프닝 전투 신은 의식적으로 찍은 듯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그렇게 공들인 장면이 뒤에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없다.
=한 소위에게 관객이 이입할 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멋지게 찍을 수도 있었지만 전쟁이 가진 아픔, 잔인함을 드러내고 싶었고 그 속에 있는 한상렬을 보여주고 싶었다.
-갈고리는 캐릭터에게 영화가 요구하고 있는 역할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디테일을 품고 있다. 그 디테일을 믿고 너무 내버려뒀다는 인상이다. 감독이 캐릭터에게 너무 정을 많이 준 게 아닐까 짐작했다.
=갈고리에게 가장 애정을 쏟은 게 맞다. (웃음) 한 소위는 어떤 일을 겪어도 특유의 곧음으로 잘 살 수 있는 캐릭터라 생각하는데 갈고리는 아니다. 갈고리는 자기가 부리던 아이들과 같은 어린 시절을 지나온 인물일 거다. 자기도 그렇게 컸으니까 그런 환경이 당연하다고, 별일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다. 처음에 합창단 만든다고 할 때 웃잖나. 그런데 노래를 들어보니 가슴이 이상한 거다. 그런 식으로 갈고리에게 정을 쏟고 자꾸 뭘 만들어내다보니 어느 순간 ‘이건 누구의 영화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생기더라. 그래서 끝까지 고민하다 몇몇 장면은 과감하게 잘라냈다.
-차기작도 생각하고 있나.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반대하는 프로젝트를 하나 보고 있다. (웃음) 웹툰 원작이고 나의 최초의 ‘19금’ 영화일 수도 있을 작품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이 묘사된 근현대사에 관한 웹툰이다. 원작의 주제의식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각본을 쓰려고 한다. 원작이 굉장히 무겁고 어두운 톤인데 아마도 나는 그 안에서조차 어떤 희망을 본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