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유]
[who are you]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2016-03-01
글 : 김현수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동주> 최희서

영화 2016 <동주> 2014 <사랑이 이긴다> 2013 <완전 소중한 사랑> 2012 <577 프로젝트> 2009 <킹콩을 들다>

단편 2016 <과대망상자들> 2015 <동심> <야누스> 2014 <접점> 2012 <난자완스> <마크의 페스티벌> 2010 <그룹스터디>

연극 2014 <의자는 잘못없다> <사랑이 불탄다> 2013 <데스데모나는 오지 않아> 2011 <하녀들>

드라마 2012 MBC <오늘만 같아라>

<동주>는 시인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가 일제강점기 현실에 눈뜬 뒤 어떤 태도로 투쟁해나갈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을 담는다.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했던 동주는 밤하늘의 별조차 헤아릴 수 없었던 시대의 슬픔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그래서 최희서가 연기하는 일본 여인 쿠미는 동주의 일본 유학 시절, 동주 곁에 머물며 그가 ‘시’의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중요한 조력자다. “쿠미가 등장하는 건 여섯 신밖에 안 되지만 장면과 장면 사이에 상당한 감정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래서 연기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 동주의 시를 읽고 싶고, 동주를 알고 싶은 쿠미의 마음이 드러나는 장면은 아무래도 시집 발간을 권하는 전차 장면과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카페 장면일 테다.

동주가 쿠미에게 시집 제목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언급하는 카페 장면에서는 최희서와 쿠미만 알고 있는 비밀이 있다. “사실 ‘시’는 일본어도 발음이 같다. 그러니까 쿠미는 시집 제목을 알아들었을 거다. 그런 마음을 상상하며 연기했지만 영화엔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흑백영화인 탓에 쿠미가 입고 나왔던 산호색(코랄) 드레스의 의도도 알아차릴 수 없다. “여성들이 가장 많이 찾는 립스틱 색상이다. 꾸미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최선을 다해 꾸미고 나간 쿠미의 마음이 의상에서도 전달되길 바랐다. 의자에 놓여 있던 모자도 그런 쿠미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최희서는 윤동주와도 꽤 인연이 깊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해 “오리엔테이션도 안 가고 첫날부터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 벽보를 붙였던” 그녀는 학창 시절 내내 캠퍼스 내에 위치한 윤동주 시비 앞을 지나다녔다. “<동주>를 신촌의 한 극장에서 보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 시비 앞에 앉아 김밥도 먹던 내가 윤동주를 다룬 영화에 출연하다니.” 캐스팅 계기는 더 극적이다. “데뷔 10년차라곤 하지만 기획사도 없이 혼자서 프로필을 돌리려니 오디션 기회조차 얻는 게 어려웠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지하철을 타서 대본을 펼쳐놓고 대사 연습을 하고 있는데 맞은편에 <동주>의 각본과 제작을 맡은 신연식 감독이 앉은 거다. 내가 누군지 전혀 모르셨단다. 그렇게 감독님이 생애 처음으로 길거리에서 명함을 준 배우가 됐다.” 어디 그뿐인가. 설정상 쿠미는 일본어로 연기해야 하는데 최희서는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일본어가 연기에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그녀가 <동주>의 쿠미를 연기할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차곡차곡 쌓여 필연이 된 것 같다.

최희서는 <킹콩을 들다>에서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역기를 든 소녀 여순을 연기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소년 같아 보였던 역도선수 여순과 가냘픈 여인 쿠미 사이의 간극에서 그녀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연기를 사랑하는지 짐작 가능하다. 지난해 미쟝센단편영화제 ‘4만번의 구타’ 섹션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김성환 감독의 <야누스>에도 출연하는 등 재기발랄한 감독들과 단편 작업을 즐겨 하는 그녀는 <동주>를 연기하면서 “잘하려고 하지 말자”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매일 아침 명상도 했단다. 데뷔 10년차에 찾아온 기회를 얼마나 더 꽉 움켜쥐고 싶었을까. 그 마음을 다스리던 최희서와 동주를 기다리던 쿠미가 왠지 닮아 보이기도 한다. 동주가 쿠미에게 시를 들려주었듯 <동주>는 최희서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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