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16 <더 킹>(촬영 준비 중) 2016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후반작업 중) 2016 <무서운 이야기3>(후반작업 중) 2015 <순정> 2015 <동주> 2014 <태양을 쏴라> 2014 <오피스> 2014 <신촌좀비만화> 2014 <피 끓는 청춘> 2013 <감기> 2013 <들개> 2013 <전설의 주먹> 2012 <댄싱퀸> 2011 <파수꾼>
단편영화 2011 <붉은 손> 2011 <종말의 바보> 2010 <그룹 스터디> 2008 <연애담> 2007 <세상의 끝>
드라마 2014 <일리있는 사랑> 2014 <너희들은 포위됐다> 2013 <드라마 스페셜-사춘기메들리> 2012 <골든타임> 2012 <신들의 만찬> 2011 <드라마 스페셜-휴먼카지노>
연극 2014 <G코드의 탈출> 2013 <키사라기 미키짱>
어떤 ‘획’을 그은 작품만으로 한정한다면, 박정민은 과작의 배우다. 비난도 칭찬도 아니다. 그가 가진 것에 비해 과소평가된 것이 사실이고 두각을 드러낸 몇몇 작품에서 누구보다 근사한 연기를 해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리고 <동주>의 송몽규는 어느 때보다도 굵은 필치로 박정민의 또 다른 한획을 그었다.
-송몽규라는 인물을 처음으로 대중에 소개하는 역할인데 배우로서는 큰 부담이자 기쁨이었겠다.
=적어도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만큼은 그 이름을 깊게 박아놓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런 부담을 갖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스스로 검열해가면서 연기했다.
-용정에 자리한 송몽규 생가와 묘지도 방문하고 기록도 찾아가며 인물을 연구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일상의 송몽규가 어떻게 웃고 말하고 행동했을지는 모르는 영역인데. 인물을 살아 있게 만드는 과정이 어땠는지 묻고 싶다.
=그럴싸하게 송몽규처럼 만든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아무리 멋있게 연기를 해도 그분의 선택과 의지를, 나는 그 발끝조차도 못 따라간다. 평소 그분 사진을 늘 품고 다녔는데 어느 날 몽규 어머니로 나오신 박명신 선배님께 보여드렸다. “와, 이게 어떻게 이십대 눈빛이야. 세상 다 산 사람 눈이지”라고 하셨다. 송몽규가 그 눈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가를 생각했다. 그래서 그분의 눈빛을 그렇게 만들었을 배경에 대해 공부했다. 모르고도 대사는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아는 것과 아는 것처럼 하는 건 다르다고, 내 믿음에서부터 차이가 있다고 봤다. 단 1%라도 차이가 있다면 그렇게 해야 했다.
-<동주>가 개념의 존재와 그 개념의 존재를 아는 것의 차이를 말하는 영화이기도 하잖나.
=이준익 감독님께선 <동주>가 과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영화라 하셨다. 스탭 모두가 <윤동주 평전>을 다 읽고 촬영했다. 윤동주라는 이름을 누가 모르겠나. 하지만 그렇게 아는 게 정말 아는 걸까. 우리는 윤동주를 알고 싶어서, 알기 위해서 영화를 찍었다. 그 노력이 잘 드러난 것 같아 좋다.
-가장 많이 연습한 게 뭔가.
=연습 대신 ‘독해’를 하려고 했다. 연습 암만 해봤자 현장에서 똑같이 할 수 없다. 카메라 앞에서 상대가 내 생각대로 안 하면 당황한다. 다만 일본어 대사를 쓰는 장면들과 학생들을 규합해서 전도 펼쳐놓고 말하는 장면은 대사가 길어서 연습이 필요했다.
-“독해”의 결과가 궁금하다.
=애드리브라고 할 수 있던 건 연희전문학교 졸업식 장면이다. 윤치호가 우등상장을 주잖나. 지문엔 ‘상장을 받아 나가다 내던진다’ 정도로 적혀 있었는데 막상 그 앞에 서니 상장이 받기가 싫은 거다. 수치스러워서 안 받고 가만히 있었다. 상대배우 선생님이 당황하셔서 눈빛이 흔들리더라. (웃음) 그런데 이분이 상장을 한손으로 주시는 거다. 원래 상장은 두손으로 주고 두손으로 받는 거잖나. 한손으로 주시기에 나도 한손으로 받아서 나왔다. 감독님이 ‘하! 이거 봐라?’ 하시며 좋아하셨다. (웃음)
-동주는 중간에 서울 말씨로 바뀌는데 몽규는 북간도 사투리를 유지한다. 참 일관적이다.
=기록에도 송몽규는 사투리가 심했다고 한다. 감독님은 사투리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앞 장면만 사투리를 쓰고 연희전문학교 장면은 서울 말씨를 쓰자고 하셨다. 그런데 몽규에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서울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부산 사투리 계속 쓰는 사람이 있잖나. 몽규는 타협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동주는 다르다. 동주는 내레이션으로 시를 읊어야 했으니까 그게 자연스럽다. 그걸로 캐릭터도 보이고. 사투리는 안 고치지만 송몽규는 기본적으로 언어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으니까 일본어는 잘했을 것 같아서 일본어는 열심히 공부했다.
-북간도 사투리는 어떻게 공부했나.
=사상과 이념에 대한 대사가 많았으니까 뉘앙스만 살리는 쪽으로 했다. <연변소품>이라는 만담 프로그램을 계속 보면서 억양을 습득하고, 단어를 배웠다. 사투리 선생님은 따로 없었다.
-몽규가 동주에게 “너는 계속 시를 써라”라고 말하는 건 동주를 지키기 위해서다. 이 초월적인 캐릭터가 “열등감을 느껴왔다”는 박정민에게 환기하는 지점이 있었을 것 같다.
=맞다. 나는 한껏 송몽규를 연기해놓고 카메라 뒤에서 눈치를 보는 사람이니까. (웃음) 그런 점 때문에 연기가 좋다. 송몽규를 연기하며 통쾌하다 느낀 부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열등감도 내게 좋은 에너지가 된다. <동주> 촬영이 끝났으니 나는 다시 박정민이 됐고,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또 뭔가 하려고 할 테고. 그렇게 또 무엇이 되겠지.
-주역을 맡았던 <파수꾼> <들개> <동주>를 떠올리면, 공교롭게도 남자배우와 붙었을 때 강렬한 에너지를 낸다.
=그리고 그들이 다 잘됐다. 하하하. 미다스의 손이다. (웃음) 그들이 다 연기를 잘하는 애들이라 위기감을 주기도 한다. 잘하는 친구들 앞에서, 꿋꿋하게 서 있으려고 더 바들바들 떨어가며 열심히 한 거다. 그러다보니 칭찬도 듣게 되는 것 같다.
-월간지 <톱클래스>에 칼럼 <언희>를 연재 중이다. 글을 쓰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싸이월드 다이어리가 한창 유행할 때 나에 대한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걸 <파수꾼> 개봉 앞두고 (당시 마케팅을 진행한 필라멘트픽쳐스의) 강은경 과장님이 재밌게 보셨는지 영화 뒷이야기를 <파수꾼> 블로그에 써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귀여운 베키의 일기’가 소문이 났고, <전설의 주먹> 때 계기가 생겨 <언희>를 쓰게 됐다. 3년을 쓰니 소재가 고갈돼간다. 작가가 아니니 편히 써도 될 텐데 마감이 다가오면 백 문장을 썼다 지운다. 보는 사람이 생기니 책임감이 생기더라. 이달엔 뭘 쓸지 고민이다.
-당신의 표현을 따르자면, 지금이 “무명”을 지나는 타이밍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연기를 시작할 때와 지금의 마음이 어떻게 다른가.
=고등학생 때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했다. 선생님이 무슨 영화감독이 되고 싶냐 물으시기에 1초의 고민도 없이 예술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를 보고 감동했고, 멋져 보였고, 나도 그런 걸 하고 싶었던 그때가 가끔 너무 그립다. 어쨌든 나는 ‘이 바닥’에 들어왔는데 오늘 영상원 동기 누나가 ‘요즘 연기 좋다는 얘기 많더라. 잘됐으면 좋겠다’고 보낸 문자에 ‘그냥 한철이에요. 또 제자리로 돌아가 생계와 싸우겠죠’라고 답장했다. 그게 진심이다. <동주> 때문에 내가 단박에 스타가 되진 않을 거다. 알고 있는데 답장을 보내놓고 조금 슬펐다. 돈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옛날 그 마음이 생각나서. 전쟁터에 들어와서 나는 꽃으로 싸우겠다고 말할 수 없잖나. 총을 들어야지. 초심이란 게 되게 중요한데 그때로 돌아가진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돌아갈 수 없다는 불안감도 들었다. 영상원 동기 중 가장 먼저 데뷔했는데 먹고사느라 바빠서 연락을 못했다. 그러다보니 아예 못하게 됐다. 내가 아직도 아무것도 아니라서. 지금 이 인터뷰도 너무 신나서 전날부터 기다렸다. 그런데 <동주>가 지나가고 이 모든 게 끝났을 때, 그러면 난 또 무엇과 싸워야만 되겠구나 생각하니 복잡미묘하다. 아, 이달엔 이걸로 써야겠다. (웃음)”
<들개> 속 연기 실험
<들개>의 효민은 등장부터가 괴팍하다. 교내 방송 중인 스피커가 시끄러워 선을 끊어버린다. 근처에 있던 조교가 그를 꾸짖으러 온다. 대답은 않고 조교를 가만히 보고 있던 효민은 곧 태도를 바꾸어 자기가 얼마 전 새로 부임한 교수라면서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넨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조교 일행이 허둥대자 효민은 그들을 비웃으며 제 갈 길을 간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놈은 잃을 게 없는 놈이다.” 박정민도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효민을 연기했다. 일종의 “연기 실험”으로, 많은 장면에서 상황만 숙지할 뿐 대사도 외우지 않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을 했다고 한다. “감독님은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셨을지 모른다. (웃음)” 위험천만한 그 실험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