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
2016-03-29
글 : 송경원
세 가지 형식, 하나의 이야기. 지아장커의 <산하고인>

지아장커가 또 한번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중국 산업화의 어두운 면을 조명한 <소무>(1997)의 냉정한 응시에서 출발하여, <임소요>(2002), <세계>(2004), <스틸 라이프>(2006)까지 그간 평단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았던 지아장커의 세계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담아내는 관조적인 시선과 다큐멘터리적인 접근, 자본과 속도에 밀려나는 풍경의 포착 등으로 이해되곤 했다. 눈에 띄는 변화를 선보인 건 전작 <천주정>(2013)부터인데 다큐멘터리적인 색깔을 다소 벗겨내고 장르영화라는 겉옷을 입힌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혹자는 그가 더이상 인민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했고, 누군가는 지아장커가 확장시키고 쌓아올린 형식미에 손을 들어줬다. <천주정>에 대한 호불호는 아마도 <산하고인>(2015)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질 것이다. 지아장커의 첫 번째 멜로드라마이자 가장 감성적인 이야기. 그리고 지아장커 개봉영화 사상 중국 내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랑을 노래한다는 <산하고인>에서는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을 변화시키고 있는지 살펴보자.

펫 숍 보이스의 <Go West>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일군의 청춘 남녀가 군무를 추고 있다. 카메라는 디스코장인지 강당인지 모를 넓은 공간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다가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 안에 사람들이 꽉 차는 순간 멈춘다. 열을 맞춰 같은 동작을 반복하던 젊은이들은 어느새 앞사람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일렬로 기차를 만들더니 흥에 겨운 몸짓으로 빠르게 카메라를 스쳐 지나간다. “(다 같이) 우리의 길을 가. (다 같이) 언젠가 떠날 거야. (다 같이) 너의 손을 잡고. (다 같이) 계획을 세울 거야. (다 같이) 아주 높이 날 거야. (다 같이) 모두에게 작별을 해. (다 같이) 새 삶을 살 거야. (다 같이) 그게 우리 일이야. 서쪽으로 가자. 그곳은 평화로워. 서쪽으로 가자. 탁 트인 공기와 하늘은 푸른 곳. 서쪽으로 가자. 그게 우리가 할 일이야.” <산하고인>은 이제껏 지아장커의 어떤 영화보다 음악을 많이, 자주, 극의 중심에 가져다놓고 쓴다. <Go West>의 가사는 이 영화의 스토리이자 메시지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이 노래는 우리를 휘감은 채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지아장커의 첫 번째 멜로드라마

애초에 형식에 얽매여 고정된 스타일을 쌓아올리는 감독은 아니었지만, <산하고인>은 지아장커가 세계를 표현하는 방식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천주정>이 자본이 불러온 폭력의 풍경을, 무협 등 여러 스타일을 녹여낸 화면으로 펼쳐 이어붙였다면, <산하고인>은 한층 감성적이고 직접적인 드라마 위에서 자신의 예술가적 비전을 담아낸다. 이것을 관찰하던 위치의 이동이라고 해야 할까, 세계를 더듬던 손길의 확장으로 봐야 할까, 이도저도 아니면 호수 표면에 이는 파문처럼 겉만 요란스러울 뿐 본질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깊은 호수마냥 그 자리에 담겨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영화의 외연만큼은 분명히 바뀌었다. <산하고인>에 대한 호불호는 결국 지아장커의 이같은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따라 갈린다. 아니, 우선 그것을 변화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지에서부터 이 논의의 걸음을 떼야 할 것 같다.

<산하고인>은 지아장커의 영화 중 가장 친밀하고 친절하게 감정을 드러낸다. 사연 자체는 흔해빠진 사랑 이야기라 해도 좋다. 어린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던 리앙즈(양경동)와 진솅(장역)은 둘 다 타오(자오타오)에게 마음이 있다. 둘 사이에서 갈등하던 타오는 결국 경제적으로 부유한 진솅과 결혼해 아들을 낳는다. 특이한 건 26년에 걸친 이들의 이야기를 1999년과 2014년, 2025년의 세 시기로 나누어 전개하는 접근방식일 뿐, 풍문으로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는 상투적인 만큼 익숙하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줌의 표정을 내보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던 전작들에 비하면 확실히 대중적인 소재다. 덕분인지 <산하고인>은 지아장커의 이제껏 모든 영화를 합친 것보다 높은 흥행 성적을 거뒀다. <천주정> 이후 감정 표현이 솔직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던 지아장커 감독은 자신의 청년 시절을 회고하며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고백한다. 대표적으로 노래 가사가 전하는 선명한 메시지는 불투명해 보일 수도 있는 몇몇 이미지마저 정확하게 지정하여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상투적 드라마 양식으로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선 좀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 <산하고인>의 큰 흐름은 여전히 지아장커의 분명한 그림자 아래에 놓여 있으며 일견 과감해 보이는 형식적인 변화들도 실은 그간 지아장커가 일관되게 천착해온 맥락, 자본화와 산업화에 떠밀려가는 것들의 풍경이라는 명제 위에서 움직인다. 오프닝의 노래가 끝나면 곧이어 ‘1999년’이란 자막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주연배우들의 이름과 함께 밤하늘의 불꽃놀이 장면으로 화면이 전환된다. 이 연결을 기억해두자. 생뚱맞고 파편적으로 다가오는 이 화면들의 연결은 재미있다. 삼각관계의 신파를 쌓아올리기 이전에 지아장커가 세계를 바라보는 자리를 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후 닮은 듯 서로 다른 시퀀스들을 반복 변주하며 이른바 ‘차이’를 발생시킨다.

과거-현재-미래, 세번의 에피소드, 세 가지 화면비율

<산하고인>은 과거-현재-미래의 세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에피소드의 양식을 구분하는 형식은 사실 지아장커가 즐겨 사용해온 대표 형식 중 하나다. 전작 <천주정>에서는 폭력 사태를 맞이한 사람들 각자의 사연을 병풍처럼 이어놓았고, <스틸 라이프>와 이어진 다큐멘터리 <동>(2006)은 하나의 작품처럼 얼개가 이어져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관계다. 개별 작품으로 들어가봐도 유사한 형식은 자주 반복되는데, 가령 <무용>(2007)은 세 가지 에피소드를 선형적으로 배열했지만, 실상 각 에피소드들이 순서와 상관없이 서로 조응하며 제3의 결론을 이끌어낸다. 요컨대 지아장커의 영화에서 중요한 형식은 각 에피소드 개별의 스토리텔링이나 특정 화면이 남기는 충격이 아니다. 일렬로 배치된 각 에피소드들의 반복과 차이를 거쳐 정체를 드러내는 모종의 틈새, 그것이야말로 그간 지아장커의 영화를 이끌어온 동력이었다. 이러한 변증법적 에피소드 형식은 <산하고인>에서도 이어진다.

첫 번째 에피소드 1999년은 타오와 진솅, 리앙즈의 풋풋했던 과거를 그린다. 곧이어 2014년에는 타오의 현재를 보여주고, 2025년에는 타오와 진솅의 아들 달러(동자건)의 방황을 따라간다. 세 에피소드는 하나의 시간축, 선형적인 스토리 위에 놓여 있지만 그 말 그대로라면 굳이 세 단락으로 나눌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세 에피소드를 그리는 방식의 차이, 관찰자의 위치, 카메라의 태도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전에는 그 차이를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진폭이 미세했다면, <산하고인>에 이르러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한 차이를 두고 있다는 게 지아장커의 첫 번째 변화다.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하면 과거를 1.33:1의 좁은 화면 속에 가두고, 현재를 1.85:1 화면비로 포착하며, 미래를 2.39:1 화면비로 상상한다는 것이 <산하고인>의 도드라지는 형식적 특징이다. 각 에피소드가 대상을 다루는 방식 또한 카메라 트래킹부터 시선의 이동까지 모두 미세한 차이가 있다. 지아장커에게 관찰의 대상만큼이나 중요한 건 관찰의 방식, 시선의 방향, 카메라의 움직임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기억에 지아장커가 형식주의에 매몰된 적은 없다. 지아장커에게 특정 형식, 이를테면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이란 대상의 내부로 들어가기 위한 적극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야기’라는 형식마저 그렇다. 우리는 지아장커의 관조적인 화면이나 풍경들이 다큐멘터리적인 형식을 통해 사라져가는 것들을 붙잡는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종종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느낄 때, 그는 이야기 속으로 성큼 걸어들어가기도 했고(<스틸 라이프>), 추상화된 이야기로는 담아내지 못하는 개별적인 몸을 직접 찍기도 했으며(<동>), 필요하다면 장르를 차용해 얇게 입히기도 했다(<천주정>). 요컨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 사이의 괴리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지아장커의 화두는 변하지 않았다. 역설적이지만 지아장커의 첫 번째 멜로드라마이자 가장 대중적인 화법을 동원한 이 영화가 그 사실을 새삼 증명한다.

이제껏 그는 카메라에 파편화된 생들을 담아왔다. 자본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변두리로 밀려난 이들의 육체, 그 개별적인 몸의 물질적인 흔적이 중요했다. <산하고인>은 일차적으로는 여러 인간 군상의 사연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일대기, 그 시간의 흐름을 조망하는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다시 질문해보자. 이 이야기는 누군가(타오)의 연대기인가.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선형의 서사 위에 놓여 있는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산하고인>은 얼핏 개인의 인생을 시간대별로 보여주는 듯 보이지만 실은 분절된 시공간을 통해 반복, 차이, 변주를 하는 단 하나의 이야기다. 다만 그 모든 변주가 한 장면, 한 순간 위에 포개어질 수 있다(엔딩의 폭발적인 감흥은 그 결과다). 언제나 그렇듯, 지아장커의 초점은 변하지 않는 것,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에 맺혀 있다. 차이가 있다면 <산하고인>에서 그 대상은 오로지 과거에 맺혀 있다는 사실이다.

‘산이 사라지고 강이 말라도 너에 대한 내 사랑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산하고인>의 제목은 지아장커 감독이 영감을 받았다는 성경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삼각관계에서 비롯된 멜로드라마적인 속성으로 인해 얼핏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 남녀간의 사랑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현대 중국이 개발의 속도에 취해 잊어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감성적인 멜로드라마 이면에 현대 중국 상황을 대변하는 일종의 상징이다. 달러라는 아들의 이름부터가 노골적이지 않은가.

타오가 진솅을 선택한 건 그의 적극적인 애정공세 때문이겠지만 경제적인 배경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그녀의 진짜 선택은 진솅과 결혼한 것이 아니라 2014년 아들 달러가 호주로 떠나는 것을 막지 않은 장면에서 좀더 두드러진다. 아들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믿는 그녀의 판단 기준은 경제적인 조건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아들과 함께 고향에서의 평온한 삶, 오래된 것의 가치를 공유하는 대신 더 큰(혹은 크다고 믿어지는) 기회의 땅으로 떠나보낸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은 홀로 남아 세월을 그저 견딜 뿐이고 넓은 세상으로 떠났던 아들 달러는 2025년, 뿌리를 잃고 방황한다. 황폐한 결과라는 점에서 2014년 망가진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리앙즈, 2025년 총기에 집착하는 진솅도 비슷하다. 격변하는 중국 경제상황 속에서 <산하고인>은 어떤 선택을 했건 관계없이 각자의 상실감, 잃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를 조망한다. 과거, 사랑, 전통, 고향,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등 뭐라고 부르건 상관없다. 이 영화는 애초에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것들을 향한 향수병이다. 시종일관 회고적인 태도, 지아장커의 결정적인 변화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작들에서 지아장커는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각기 다른 에피소드의 차이와 반복을 통해 과거의 흔적들이 씻겨 내려가는 풍경, 그 속에서 소외되어가는 지금 현재 인민의 몸을 드러냈을 따름이다. 요컨대 각 에피소드의 시점과 태도가 명백히 달랐다. 반면 <산하고인>은 초지일관 과거를 그리워한다. 그것은 단지 추억으로서의 애잔함을 넘어 어떤 절대적인 명제처럼 작동하는 것 같다. 간혹 그 목소리가 너무 커 지나치게 교조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2025년 자유에 목말라하면서도 뿌리를 잃은 부평초처럼 떠도는 달러에게 선생이자 애인이자 어머니가 되어주는 여인 미아가 있다. 그녀는 어머니를 만나러가기 두려워하는 달러에게 “시간이 모든 걸 바꾸진 않는다”고 조언한다. 이 한마디는 관객 역시 과거를 뒤돌아보라는 신호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1999년의 이야기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한 지 50분이 지나서야 <산하고인>의 타이틀이 등장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와 같은 제목의 배치는 ‘이제부터 산이 사라지고 강이 마를 테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고향의 공기,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기억하라’는 명령이나 다름없다. <산하고인>은 실질적으로 이 순간 끝난 이야기다. 나머지 두 에피소드는 과거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공허함을 반복, 전시, 확인할 뿐이다. 변하지 않는 것들을 끊임없이 뒤돌아보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다시 돌아와, 그런 의미에서 오프닝 시퀀스의 연결은 재미있다. <Go West>의 음악으로부터 바로 이어지는 불꽃놀이, 오래된 마을의 담벼락, 골목길 등의 이미지는 서사적으로 이어져 있다기보다는 기억의 재구성처럼 뜬금없고 단절된 채 나열된다. 동시에 일련의 이미지와 상황은 1999년과 강력하게 이어져 있다. 이것은 흡사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과 닮았다.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이어질 사건의 연결, 시간의 흐름을 정돈하기 이전에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이미지의 조합을 쉬지 않고 들이민다. 끝내 남겨두고 온, 돌아가고 싶은, 하지만 돌아갈 수 없을 그 순간들을 반복적으로 들이밀어 잃어버린 것들의 크기를 확인시키는 것이다.

정의(情義)는 지아장커의 미래일까

지아장커는 분명 변했다. 스타일이나 양식이 변한 것이 아니라 잊혀져가는 것들을 추억한다는 점에서 시점이 변했다. 인민의 육체를 정면에서 응시하던 그의 고개는 어느새 뒤로 꺾여 있다. 어쩌면 지아장커가 변한 게 아니라 중국이 변한 건지도 모르겠다. <소무>를 선보일 때까지만 해도 그는 변두리에서 아직 변하지 않은 것들, 밀려나고 있는 흔적들을 모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스틸 라이프>의 예리한 통찰이 현실이 되어버린, 이미 변해버린 세상 앞에서 그가 여전히 예전처럼 눈앞의 인민들을 응시할 수 있는 동력이 사라져버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아장커가 몸에 익힌 스타일을 관습처럼 반복할 때 그는 형식주의라는 함정에 빠질지도 모른다.

“중국에서는 ‘사랑과 관계’를 ‘정의’(情義)로 표현한다. ‘정’은 감정적인 애정이고 ‘의’는 충실과 의무의 관계인데, 펀양에서는 헌신과 책임에 가까운 의미였다. 시간이 지나 애정이 식어도 ‘의’는 여전히 존재한다. 2014년 병든 몸으로 고향에 돌아온 리앙즈를 돕는 타오의 모습이 바로 ‘의’다.” 지아장커는 영화 내내 관우와 언월도를 반복 배치하며 ‘의’를 강조한다. 관우나 문봉탑 이미지, 엽천문의 노래 등은 영화의 세 에피소드가 동일한 정서의 반복임을 짚어주는 데자뷔의 코드인 셈이다. 그리고 긍정을 더한 감독의 시선은 일종의 정답을 반복해서 알려주는 효과를 자아낸다. <산하고인>은 확실히 쉽고 선명하다. 무엇보다 영화의 엔딩 시퀀스는 앞서 2시간 가까이 쌓아올린 감정들을 일거에 터트리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압축미를 선사한다.

결국 문제는 여기에 있다. 엔딩 시퀀스에 흐르는 <Go West>는 오프닝에서 흐르던 것과는 그 의미도 무게도 다르다. 조금 과장하자면 <산하고인>은 이 수미상관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중간을 반복해서 채워넣은 영화라고 해도 좋다. 앞뒤를 반복 변주하는 이 형식은 매우 인상적이고 일견 아름답기까지 하지만, 그래서 흠뻑 빠져들기엔 조금 겁이 난다. 지아장커가 양식화한 스타일을 과거를 회상(긍정)하는 도구로 지정할 때, 과연 그 태도와 시선을 적절하다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일차적으로는 사라져버린 옛것들을 향한 향수라고 하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주류영화의 문법에 녹아들어 뿌리를 잃어버린 5세대 중국 감독들처럼 특정한 중국적인 것 혹은 국가 정체성으로 환원되진 않을지 괜한 걱정이 앞선다. 변하지 않는 것을 좇다가 결국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고 변해버리고 말 것인지, 아마도 청조를 배경으로 한 차기작 무협영화 <재청조>가 완성되면 명확한 답이 나올 것이다.

과거를 1.33:1의 좁은 화면 속에 가두고, 현재를 1.85:1 화면비로 포착하며, 미래를 2.39:1 화면비로 상상한다는 것이 <산하고인>의 도드라지는 형식적 특징이다. 각 에피소드가 대상을 다루는 방식 또한 카메라 트래킹부터 시선의 이동까지 모두 미세한 차이가 있다.

세 가지 다른 버전의 화면비가 남기는 질문들

자비에 돌란의 <마미>(2014), 리산드로 알론소의 <도원경>(2014), 허우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2015)처럼 최근 화면비를 통해 주제를 형상화하려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산하고인>의 형식미학의 정점 또한 과거, 현재, 미래 시점을 각기 다른 화면비로 담아낸 지점에 있다. 의도와 효과에 대해선 상당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산하고인>의 출발은 지아장커가 쌓아온 세계관의 구현이라 할 만하다. 지아장커와 유릭와이 촬영감독은 90년대부터 함께 작업하며 엄청난 양의 영상을 축적해왔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흔적을 모은 이 영상들을 그 시절마다 각기 다른 포맷으로 촬영되었는데, 1999년 에피소드에 사용된 서펀양 봄 축제 장면, 디스코장, 뒤집힐 뻔한 트럭을 일으키는 장면 등이 1.33:1의 비율로 촬영된 것들이다. 이 빈티지 영상들을 살리기 위해 각 시대를 1.33:1-1.85:1의 포맷으로 구성하기로 결정했고, 그 연장선에서 미래의 에피소드도 2.39:1의 비율을 썼다. 어떤 의미에선 <산하고인>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이 오래된 기록영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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