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에디>는 지난해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5, 이하 <킹스맨>)의 연출자 매튜 본이 제작자로 참여하고, 그 스탭들이 함께하며, 세계적 스타로 급부상한 태론 에거턴이 출연한다. 그렇다고 <킹스맨>의 키치적인 액션 활극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독수리 에디>는 1988년 캘거리동계올림픽에서 스타가 된 스키 점프 선수 에디 에드워즈(태론 에거턴)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화려한 비상을 꿈꾸지만 재능 없는 한 도전자가 어떻게 올림픽 스타가 됐는지, 영화는 그 은근과 끈기를 놓치지 않고 정직하게 따라간다.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것이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잘 싸우는 것이다”라는 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의 유명하지만 ‘뻔한’ 격언이 영화가 되고, 그런 정직한 표현이 훈훈한 웃음과 감동으로 이어진다. 80년대가 배경인 시대극, 스포츠 드라마라는 어려운 소재에 길을 잃지 않고 드라마를 조율해낸 감독 덱스터 플레처와 태론 에거턴의 코치 역으로 오랜만에 히어로물을 벗어나 인간적인 면모를 선보인 배우 휴 잭맨을 만났다.
-매튜 본이 먼저 연출직을 맡아달라고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함께 작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덱스터 플레처_그와 20년 이상 친구로 지내고 있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1998), <레이어 케이크>(2005), <스타더스트>(2007) 등 매튜가 제작한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그는 항상 대본이 나오면 연기자와 같이 리딩을 했는데, 그러면서 함께 보낸 시간이 많다. 매튜가 내가 연출한 전작인 <와일드 빌>(2013), <선샤인 온 리스>(2014) 등을 보고 이번 작품은 나에게 연출을 맡겨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연출가로서 내가 추구하는 작품은 인간관계에 초점을 두는 영화로, 예산이 적은 영화들을 작업해왔다. 대본을 보니 스토리가 긍정적이고 좋았다. 무엇보다 친구인데 안 한다고 하면 삐지지 않겠나. (웃음) 세 번째 작업인데, 매튜 덕분에 휴 잭맨이나 태론 에거턴 같은 유명 배우와 함께 작업해 기분이 좋았다.
-제작자 매튜 본의 영향으로 <킹스맨>을 연상하는 관객이 많을 텐데, 이 영화는 그런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기본기와 정석으로 훈훈한 감동을 전달하는 정통 드라마다.
=덱스터 플레처_사람들을 죽이거나 화려한 건 매튜 본이 하는 거고 나는 이런 소소한 인간관계를 다루는 영화를 좋아한다. 처음 매튜에게 대본을 받았을 땐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그로 인해 더욱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순하기보다는 정직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에디와 코치 브론슨 피어리(휴 잭맨)는 매우 복잡한 심리를 가진 캐릭터다. 그들이 가진 스토리를 통해 드라마적인 재미도 주면서 캐릭터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관객에게 영감을 주고 싶었다. 이렇게 캐릭터가 가진 내적인 도전을 다 담으려고 하다 보니 하나의 스토리에서 크고 다양한 걸 뽑아내야 했다.
-에디를 지도하는 코치 브론슨 피어리를 연기한다. 실력도 없으면서 덤비는 무모한 에디와 달리 그는 날 때부터 타고난 천재적인 선수지만 오만함으로 길을 잃었다 차츰 변화해나가는 캐릭터다. 오랜만에 히어로물에서 벗어난 인간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휴 잭맨_스토리가 너무 좋았다.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는, 자신의 과거를 딛고 다시 일어나는 이야기에서 감동이 오더라. 더군다나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두 남자가 우정을 쌓아나가는 이야기가 좋았다. 처음엔 브론슨이 에디를 떨쳐내고 밀어내다가 그에게서 자신에게 없는 순수함을 보고 점차 그에게 끌리고 그 자신도 변화를 겪는다. 에디는 약점이 많지만 브론슨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연기하면서 가장 크게 주안점을 둔 부분도 이 지점이었다. 두 남자의 우정을 어떻게 설정하고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이번엔 연기할 때도 즐거웠는데, 무엇보다 나는 스키 점프 트레이닝을 하지 않아도 됐다. 새벽 3시에 체육관에 들러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고, 태론이 하는 것만 지켜보면 되니 좋더라. 술만 마시고(브론슨은 늘 술을 끼고 사는 역할로 나온다). (웃음)
-크림의 전설적인 드러머 진저 베이커의 다큐를 보고 그를 토대로 해 브론슨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하는데, 스키 점퍼와 로커와의 접점은 무엇인가.
=휴 잭맨_스키 점퍼들은 일종의 미친 상태라고 보면 된다. (웃음)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서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위험한 것에 도전하고 위태로운 상황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만약 이런 스릴이 없으면 오히려 그걸 더 힘들고 지루해하는 부류의 인간들이다. 로큰롤에 심취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위험한 걸 즐기고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점에서 일맥상통했고, 그래서 그런 도전정신을 캐릭터에 응용했다.
-스키 점프라는 소재와 함께 이 영화에서 부각되는 지점은 영화의 배경이 된 80년대 문화다. 의상, 미술, 음악 등에 80년대 팝컬처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덱스터 플레처_80년대는 굉장히 특별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80년대 하면 색감이나 합성 재질의 의상이 떠오른다. 밝은 색감과 더불어 특히 음악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그 당시는 밝고 명랑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영화에는 하워드 존스, 홀리 존슨, ABC, 앤디 벨, 폴 영 등 80년대 영국 음악계에서 활동한 아티스트들의 곡이 수록된다). 신시사이저 음을 많이 썼다. 내가 가지고 있는 80년대에 대한 기억도 총동원했고, 당시 필름으로 찍은 영화들을 보면서 그 시기의 분위기를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뭣보다 우리 스탭들이 정말 우수했다고 생각한다. 크리에이티브팀이나 의상디자이너, 메이크업팀과도 긴밀하게 작업을 했다.
-에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캐릭터다. 이 ‘무모한’ 도전을 응원함으로써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덱스터 플레처_영화를 보고 얻는 영감은 각자 다르다. 얼마만큼의 영향을 줄지 재어볼 수도 없다. 이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엄마한테 연락해야겠다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지금부터 스키 점프를 시작해야겠다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수한 것 한 가지는 정직한 영화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제대로 연기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서 관객이 울고 웃고 다양한 감정을 이끌 수 있게 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에디는 다른 사람이 안 된다고 해도 계속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 포기하지 않는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가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휴 잭맨_친구가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영화를 보고서는 이건 꼭 아이들과 봐야 하는 영화라고 하더라. 에디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고 경시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내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을 설득하는 캐릭터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에게 에디의 이런 정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젊은 시절이 가장 빛나는 시기인데, 세상은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이 빛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들은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