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people] “정서를 구현하는 기술로서의 3D”
2016-03-17
글 : 이예지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방 안의 코끼리> 권호영, 권칠인, 박수영 감독
왼쪽부터 박수영, 권호영, 권칠인 감독.

<신촌좀비만화>(2014)에 이은 두 번째 KAFA+ 넥스트D의 3D 옴니버스영화, <방 안의 코끼리>(2016)는 감독들의 개성이 뚜렷한 작품이다. <사이코메트리>(2013), <평행이론>(2009) 등 SF 장르영화에 도전해온 권호영 감독의 <자각몽>, <관능의 법칙>(2013)과 <싱글즈>(2003) 등 로맨틱 코미디에 정통한 권칠인 감독의 <세컨 어카운트>, 그리고 <죽이러 갑니다>(2009) 등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해프닝을 블랙코미디로 담아내는 데 능한 박수영 감독의 <치킨게임>까지. 3인3색의 감독들은 각 장르의 영화들에서 3D를 단순한 시각효과를 주는 기법으로 이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르 속 정서를 쌓아가는 기법으로서 시도했다. <방 안의 코끼리>를 연출한 권호영, 권칠인, 박수영 감독을 만나 3D영화를 연출한 소감과 한국 3D영화의 현주소에 대해 물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KAFA+ 넥스트D 프로그램에는 어떤 계기로 지원했나.

=권호영_자연사박물관에서 상영하는 아동용 단편영화를 3D 자동 리그(두 카메라를 연결해 3D 촬영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비)로 촬영한 적이 있다. 공룡 골조에서 부피감이 확연히 느껴지는 게, 단순히 레이어층만 느껴졌던 이전의 3D 기술보다 훨씬 진보했더라. 기술적인 데 흥미가 생겼다. 공고가 뜬 걸 보고 부랴부랴 시나리오를 썼다. (웃음)

권칠인_감독들은 늘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있다. 3D를 단순히 시각적인 쾌감이 아니라 깊이감과 공간감, 시점을 강화하는 기술로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영화는 인물과의 동일시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주는데, 3D는 우리가 보는 시선으로 세상을 보여주지 않나. 1인칭 시점을 강화할 수 있는 시도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3D로 SF <자각몽>, 블랙코미디 <치킨게임>, 멜로 <세컨 어카운트>를 촬영했다.

=권호영_한국에서 본격적인 SF는 언제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곤 했는데, 3D영화는 기회였다. 자각몽이라는 소재는 현실에서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설 수 있어 3D 기술을 많이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장르적으로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했다.

박수영_내 경우는 코미디 콘텐츠를 접할 때, 영화보다는 눈앞에서 공연을 보는 편이 더 웃기더라. 3D영화는 공연처럼 직접 보는 느낌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근사한 입체의 오브제들을 설치해놓고 좋은 앙상블 연기를 펼치면 클로즈업을 쓰거나 컷을 나눠 코미디를 일으키지 않아도 특별한 코미디가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3회차 정도 찍어보니 유효하진 않더라. (웃음) 이후엔 전략을 수정해서 컷을 나눴다.

권칠인_KAFA+에서 몇기의 3D 교육이 있었는데 멜로 작품은 없어 아쉽더라. 멜로 <세컨 어카운트>를 통해 3D가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강점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접속> 같은 고전멜로들도 3D로 촬영됐으면 정서적으로 더 깊어지는 지점들이 있었을 거다.

권호영_<밀양>(2007)의 교회 장면의 경우, 송강호와 전도연 사이의 거리가 중요하지 않나. 2D영화에선 포커스나 렌즈에 따라 그 거리감을 구현한다. 그런데 3D는 실제로 그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걸 잘 구현해내면 2D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나 관계성을 충분히 묘사하겠다 싶더라.

-<세컨 어카운트>에선 3D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 시점과 공간감을 강화하려 했나.

=권칠인_일반적으로 영화는 전반에 객관적인 정보를 주고, 이야기가 깊어지면서부터 주관적이고 정서적으로 정보가 바뀐다. 3D의 입체감과 공간감을 이용해 그런 변곡점을 표현하려 했다. 초반에 여주인공이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낼 땐 입체값을 적게 줬다가 사랑에 빠진 후엔 입체값을 더 주는 식이다. 특히 클라이맥스에서 종이가 날아갈 때 입체값을 극단적으로 확 키웠다. 또한 컷을 많이 가면서 카메라 무브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감을 보여주려 했다.

박수영_초반엔 인경이 일하는 출판단지 등 큰 공간에서 개인을 잡아주면서, 인물이 아니라 주변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그런데 그녀가 ‘삼겹살’(서준영)을 만난 오뎅바 장면에서부터 점점 인물의 입체감이 느껴진다. 감정선이 중요한 영화에서 효과적인 방법 같다.

권호영_<신촌좀비만화> 속 류승완 감독의 에피소드 <유령>에서는 엔딩에 인물과 벽 사이 공간감을 강조해서 소외감을 만들어냈다. 3D만이 가진 미학이다.

-SF 장르인 <자각몽>에선 3D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겠다.

=권호영_극단적인 클로즈업을 종종 사용했고, 렌즈간 축간거리(IOD)를 넓혀 부피감을 강조해 인물의 얼굴 골조를 살리려 했다. 플래시백에서 사용된 디졸브 효과도 신경 썼다. 3D 디졸브는 2D 디졸브와는 다르다. 피사체가 입체인데 디졸브가 되면 입체 속의 입체가 되는 거다. 한장의 그림에서 두 번째 장의 그림으로 넘어가는 게 2D 디졸브라면, 이건 네장의 그림이 섞이는 셈이랄까. 엔딩의 총 쏘는 장면에서는 스크린 면을 컨버전스(피사체가 돌출되고 퇴축되는 기준점)로 삼아, 총알이 스크린 면을 넘나드는 효과를 보여줬다. 원경에서 발사된 총알이 스크린 면을 지나 근경으로 오게끔 후반작업에서 입체값을 조절했다.

-<치킨게임>에선 세트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배경 영상을 직접 영사해 촬영했다.

=박수영_실제로 해안 절벽에 차를 걸어놓고 찍을 수도 없고, CG를 사용하면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서. (웃음) 바다 배경과 차 안 두 레이어만 있으니 입체 같지 않아 아쉽더라. 고백건대 나는 3D를 신경 쓸 새가 없었다. 처음 의도한 코미디의 3D 촬영 방식이 유효하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 전통적인 영화 방식으로 찍었고, 촬영 기법보다는 드라마의 연출에 치중했다.

-현장에서 느낀 3D 촬영은 어땠나. 김영노 스테레오그래퍼(3D를 총괄하는 스탭, 1044호 ‘스탭 37.5℃’ 인터뷰 참조)의 리그팀과 촬영했는데.

=권칠인_고도로 훈련된 리그팀이라 기술적인 부분은 믿고 일임했다. 단지 카메라 두대를 붙여서 하는 거라 핸드헬드도 조심스럽게 사용할 수밖에 없고, 현장에서의 즉흥성도 떨어져 거의 콘티대로만 찍어야 하는 게 아쉽더라.

권호영_그런데 우리는 핸드헬드로도 찍었다. (웃음) 리그로 연결된 카메라 2대를 2명이 동시에 들고 뛰어야 하니까 쉽지 않더라. 한국의 기존 3D영화에서 해보지 못한 걸 해보자고, 힘든 걸 감수하고 그렇게 했다. 보통 한국의 3D영화에선 롱테이크가 많이 사용됐는데, 할리우드 스타일의 빠른 템포로 영화를 찍고 싶어 컷 수도 많이 가져갔다. 하루에 60~70컷을 찍는 시간 싸움이었다.

-한국에서 3D영화는 보편화된 기술은 아니다. 경험해보니 산업에 안착할 수 있는 경쟁력이 있는 것 같나.

=박수영_예산과 회차가 2D영화보다 더 들긴 해도, 3D 기술을 잘 활용하면 회수할 수 있을 만한 비용이다.

권칠인_아직은 비용도 들고 안경을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기술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니까. 기술의 진보를 따라가는 건 자연스러운 방향이다.

권호영_영화는 흑백 무성영화로 시작해 색과 사운드가 입혀졌고, 나아가 3D, 스크린X, VR로 향해가는 현실 구현의 과정에 있다. 영상은 사각 프레임을 벗어나는 영역까지 확장될 것이고, 3D영화도 그 수순이다. 스크린X와 VR도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보고 싶다.

권칠인_최근 <동주>를 재미있게 봤다. 영화의 동주는 몽규를 언제나 의식하는 인물로서의 동주더라. 이런 인물의 시점과 관계들을 3D는 양식화해서 표현할 수 있다. 단지 시각효과로서의 3D가 아닌, 정서를 구현하는 기술로서도 3D가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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