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보고]
[현지보고]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영화의 <대부>”
2016-03-29
글 : 이주현
국내 단독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촬영현장, 미국 애틀랜타 파인우드 스튜디오에 가다

2015년 6월10일, 15명 내외의 세계 각국 기자들이 미국 애틀랜타에 모였다. 애틀랜타 시내에서 차로 40여분 달려 당도한 곳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이하 <시빌 워>, 4월28일 개봉) 촬영이 진행 중인 파인우드 스튜디오. 스튜디오 벽면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의 포스터가 크게 걸려 있었고, 마크 러팔로를 닮은 현장 프로듀서가 거대한 그린 스크린이 세워진 야외 세트장으로 기자들을 안내했다.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윈터 솔져(세바스천 스탠),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 호크 아이(제레미 레너), 팔콘(앤서니 마키), 앤트맨(폴 러드)까지, 고유의 슈트를 갖춰입은 여섯 캐릭터가 대열을 갖추고 공항 폭발 신 촬영을 준비 중이었다. 이들은 모두 캡틴 아메리카의 편에 선 ‘팀 캡틴’의 슈퍼히어로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3단계의 서막을 여는 <시빌 워>는 슈퍼히어로를 관리•감독하려는 정부의 정책을 두고 가치관의 차이를 드러내는 어벤져스 멤버들의 갈등과 분열을 그린다(<아이언맨>(2008)부터 <어벤져스>(2012)까지가 1단계, <아이언맨3>(2013)부터 <앤트맨>(2015)까지가 2단계다). 정책을 지지하는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과 반대하는 캡틴 아메리카, 이 둘을 중심축으로 어벤져스 멤버들은 두 진영으로 나뉘는데 앞서 언급한 캐릭터 외에 워머신(돈 치들),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블랙 팬서(채드윅 보스먼), 비전(폴 베타니)이 ‘팀 아이언맨’에 속한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를 성공시키고, <어벤져스> 세 번째 시리즈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파트1, 파트2 연출까지 맡게 된 앤서니 루소, 조 루소 감독은 <시빌 워>가 “캐릭터의 스케일 면에선 의심의 여지없이 역대 마블 영화 중 최고”라고 말했다. 와칸다 왕국의 왕자인 프린스 티찰라/블랙 팬서가 2018년 개봉예정인 <블랙 팬서>에 앞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앤트맨과 스파이더맨이 어벤져스 멤버로 합류하는 첫 작품이 바로 <시빌 워>란 얘기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각본을 쭉 책임지고 있는 시나리오작가 크리스토퍼 마커스와 스티븐 맥피리는 “규모만 보면 <어벤져스> 같겠지만 이것은 순전히 스티브 (로저스)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사람들을 캡틴 아메리카의 세계로 불러들여서 캡틴 아메리카의 감정에 집중하도록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이언맨의 세계와 아이언맨의 감정이 아니라.” 당연히 캐릭터 물량공세로 관객을 배부르게 하는 것이 루소 형제의 목표는 아니다. 이들은 단순한 오락영화 그 이상의 영화적 성취를 이루고 싶어 하는 듯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가 정치 스릴러의 문법으로 이야기의 프레임을 짰다면, <시빌 워>는 더 세심하고 복잡하게 캐릭터들의 심리를 그려내는 심리 스릴러 영화로 만들려고 한다.” 이들이 참고했다며 읊은 영화의 목록도 만만치가 않다. 데이비드 핀처의 <쎄븐>(1995), 코언 형제의 <파고>(1996),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1972), 거기에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들과 여러 서부영화들이 <시빌 워>의 레퍼런스 영화들이라고 한다. 특히 <대부>를 언급한 것은, 각자의 목적과 신념을 가진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사방으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참고할 사항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영화의 <대부>”라는 루소 형제의 발언이 무척 그들답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여름 같은 초여름의 열기를 뚫고 오후 4시가 되자 거짓말처럼 천둥, 번개가 치고 장대비가 내렸다. 간이 인터뷰룸으로 사용된 스튜디오를 재기 넘치는 두명의 감독과 똑똑한 두명의 작가와 열정 가득한 프로듀서가 찾았다. 분장을 지우지도 못하고 온몸에 붉은 칠을 한 채 비전 그 자체가 되어 나타난 폴 베타니, <42>(2013)에서 전설의 메이저 리거 재키 로빈슨을 연기했고, <제임스 브라운>(2014)에서 천재 솔 뮤지션 제임스 브라운을 연기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새내기 채드윅 보스먼도 기자들을 만났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분홍 셔츠와 분홍 페도라를 걸치고 나타났으며, 슈트를 벗고 티셔츠로 갈아입은 크리스 에반스는 “나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옆머리까지 짧게 친 커트 머리에 멜빵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스칼렛 요한슨은 매력적인 목소리로 인터뷰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들의 인상적인 이야기를 다음 장에서 요약했다.

“캡틴 아메리카는 이타적인 남자”

크리스 에반스 = 스티브 로저스 / 캡틴 아메리카

“캡틴 아메리카는 이타적인 남자다. 또한 자신이 착한 심성을 가졌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그렇게 바라본다는 거다. 다들 자신이 착한 마음을 지녔으며 자신이 최선의 방법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시빌 워>가 흥미로운 것도 그런 지점에서 비롯된다. 이전의 영화들, 즉 <퍼스트 어벤져>에선 나치가 악당이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선 히드라가 나쁜 놈이었다. 이번 작품엔 명확하게 악당이라 부를 만한 존재가 없다. 옳은 것도 없고 틀린 것도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캐릭터들이 처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더욱 평행선을 달리는 싸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결책을 찾는 과정, 그 타협의 과정이 <시빌 워>에서 그려질 것이다. 또한 그가 가져야만 하는 어떤 죄책감,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도 드러날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는 정말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종종 <어벤져스> 시리즈와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는 스티브 로저스라는 한 남자의 성장담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어벤져스>에서보다 더욱 다채로운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이 그려진다.”

“토니는 내 삶을 변화시켰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 토니 스타크 /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는 애초 상원의원한테 ‘kiss my ass’ 같은 욕이나 해대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그저 무모하고 재밌는 캐릭터로 인식해왔다. 한편 캡틴 아메리카는 훌륭한 재능을 지닌 크리스 에반스라는 배우 덕에 여러 시리즈를 거치며 지금처럼 신뢰받고 인정받는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캡틴 아메리카를 통해 우리는 좋은 팀을 이루게 되었는데, 이번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다시 한번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정부의 정책과 관련한 멤버들의 선택은 오로지 개개인의 원칙적 믿음, 개인적 경험에 따른 것이다. 토니(아이언맨) 역시 그 가운데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토니 스타크 같은 캐릭터가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니, 잘 모르겠다. 토니가 내 삶을 변화시킨 건 그를 만나 더 큰 기회를 얻었다는 점일 거다. 50대가 된 지금은 솔직히 관객에게 신뢰를 주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계속 리부트되고, 60대의 터미네이터(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나. (웃음) 계속해서 확장 중인 마블 유니버스에 새로운 캐릭터/배우들이 들어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하고, 나 역시 그 안에서 내 역할을 소화하려 한다.”

“자비스에서 비전이 되니 액션이 더해졌지”

폴 베타니 = 비전

“<시빌 워>는 세계에 ‘개입’하는 방식을 놓고 캐릭터들이 두편으로 나뉘어 갈등을 빚는 이야기다. 개입과 관련한 도덕적 문제들을 다룬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감정을 깊이 건드리는 영화가 될 것이다. 이번 영화에서 비전의 목표는 최대한 인간에 가까운 존재가 되기 위해 더욱더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처럼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말이다. 지금처럼 온몸을 빨갛게 분장하는 데 두 시간 정도 걸린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면 어떠냐고? 일부러 거울을 보면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44살이다. (웃음) 인공지능 컴퓨터 자비스의 목소리를 연기할 때와 형체를 지닌 비전을 연기할 때의 차이점이라면, 비전을 연기할 때는 일단 기다리는 시간이 많고 슛 들어가면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CG의 힘을 빌리지만 실제로 스턴트와 액션 연기를 소화해야 한다.”

“나타샤와 함께 나도 성장했다”

스칼렛 요한슨 = 나타샤 / 블랙 위도우

“시리즈를 통해서 나타샤는 물론 나 역시도 성장해왔다. 상황과 때에 따라 캐릭터가 조금씩 변하기도 했는데, 그건 시리즈를 연출한 감독의 성향이 반영된 자연스러운 일이다. 운 좋게도 나는 나타샤라는 캐릭터의 기본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모습을 반영해 연기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해왔다. 비록 그것이 고통스러운 일일지라도,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더 강한 사람이 되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도 나왔지만, 그녀는 자신의 과거, 블랙 위도우의 뿌리로 돌아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번엔 좀더 현실적인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그녀가 현실적인 캐릭터라서 좋다. <시빌 워>는 신나는(playful) 영화가 아니다. 내 말은 어떤 관객은 영화에서 로맨스를 기대하기도 할 텐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앤서니 루소, 조 루소 감독은 전편에서 캡틴 아메리카와 블랙 위도우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연민하는 순간들을 만들어놓았다. 관객이 이 둘의 관계를 기억하고 그 관계의 가치를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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