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가 개봉 4주차에 접어들며 한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섰다. 흥행 역주행과 더불어 <주토피아>는 (저연령층을 타깃으로 삼은 애니메이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더빙판까지 주목받으면서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의 사랑을 증명하는 중이다. 성우 정재헌이 참여한 GV 상영은 티케팅 시작과 동시에 매진됐고, 정재헌 성우의 달달한 애드리브가 담긴 영상은 페이스북을 타고 조회수 100만을 기록했다. <주토피아>는 물론 애니메이션 <너에게 닿기를>, 미드 <CSI 마이애미>, 모바일 게임 <회색도시> 등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정재헌 성우를 만났다.
-꾸준한 흥행과 함께 더빙판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대부분 자막 버전을 선호하는 극장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흔한 현상은 아니다.
=개봉 4, 5주차에 오히려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개싸라기 흥행’을 하고 있어 하루하루 놀랍다. 보통 큰 이슈가 된 애니메이션은 작품 외적인 요소들로 주목받고 언론 노출도 많은데, <주토피아>는 그런 게 거의 없었다. 전적으로 관객의 입소문만으로 흥행이 된 셈이다. 성인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고, 그럼에도 어둡지 않고 경쾌한 추격전 형식으로 풀어나간 요인이 주효했던 것 같다. 젊은 관객의 경우, 일부 성우 팬들이 아니라면 자막판을 부러 찾는 경우가 없는 편이라 더욱 뜻깊다.
-<주토피아>의 닉 와일드는 처음엔 비열한 것 같으면서 갈수록 따뜻함이 드러나는 캐릭터다. 구간마다 미묘한 변화를 신경 써야 했을 텐데.
=처음 <주토피아> 오디션이 전체 대본이 아니라, 특정 장면만 두고 연기를 하는 거라 그저 말발이 끝내주는 사기꾼 캐릭터라 생각했다. 제대로 작업에 들어가서 전체를 보는데 그게 아니더라. 자상한 아빠, 주디와 관객 뒤통수를 치는 능글맞은 사기꾼, 사건을 해결하면서 자기 과거를 고백하는 여린 모습 등 다채로운 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는 캐릭터라 작업 내내 즐거웠다.
-특히 트위터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팬들의 멘션에 일일이 답변을 달아주는 열혈 트위터 유저인데, 특히 인상적인 피드백이 있다면.
=감상부터 팬아트까지, 하루에 읽기도 힘들 정도로 수많은 팬들이 후기를 올려준다. 평소 자막 버전만 보던 분들이 <주토피아>로 더빙판의 매력을 알게 됐다고 멘션을 보내주시는 경우도 꽤 된다.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5주차까지 41번이나 재관람했다고 인증숏을 보내주신 분이다.
-<주토피아>가 처음으로 작업한 디즈니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다른 스튜디오의 작업과 차이는 없었나.
=연기할 때 특별한 차이점은 없었다. 다만 인상적인 것이, 대개 우리말 더빙을 하면 엔딩 크레딧 끄트머리쯤 까만 화면에 이름만 잠깐 나오거나 아예 그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디즈니 작품은 성우 소개를 엔딩 크레딧 메인에 노출시켜서 로컬라이징에 참여한 일원으로 노고를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준다. <주토피아>가 더빙판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아 더욱 감사하다.
-동료 성우들과 ‘동네오빠’를 결성해 노래와 랩도 하고, 성우 웹라디오 ‘호락호락’도 진행하고 있다. 성우의 저변을 넓히려는 의지라고 봐도 되나.
=오랜 역사 동안 성우들의 주된 영역이었던 라디오 연기, 외화 더빙 같은 게 사양하고 있다. 그런 걸 되살리는 것과 더불어 성우 연기가 대중화될 수 있는 길을 고민하는 게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성우로서 숙제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한국 대중에게 성우는 목소리 좋은 사람,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성우가 연기를 잘하고, 또 잘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넓히는 게 목표다. 우리나라 성우들의 활동 영역이 유독 외국 의존도가 높은데, 한국의 자생적인 창작 콘텐츠가 더 많아져서 연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능을 선보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