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사랑과 인간의 맨 얼굴을 그리다 <해어화>
2016-04-13
글 : 이예지

1943년 경성의 기생학교 대성권번은 예인을 길러내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빼어난 미모에 전통 가곡 ‘정가’의 명인인 소율(한효주)과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로 대중가요를 즐겨 부르는 연희(천우희)는 둘도 없는 동무다. 어느 날, 유학을 떠났던 소율의 정인 윤우(유연석)가 작곡가가 되어 돌아오고, 윤우는 소율을 위해 노래를 만들어줄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연희의 노래를 듣게 된 윤우는 그녀의 목소리에 이끌리고, 이들의 운명은 엇갈린다.

파국으로 치닫는 살리에리의 서사다. 권번의 으뜸가는 재원인 소율은, 평범한 줄 알았으나 천재성을 숨기고 있던 친구에게 사랑과 꿈 모든 것을 빼앗긴다. 일견 전형적인 서사이지만 흥미로운 점은 재능을 감춘 소박한 여주인공을 선호하는 한국 드라마적인 관습을 전복했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자리에서 내쫓긴 주인공은 자신을 배신한 연인과 친구를 파멸시키고 자신의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 몸을 던진다. 하지만 그녀가 몸을 던져 향한 곳은 최고의 자리가 아닌 깊은 나락이다. 영화는 욕망과 질투라는 보편적 감정을 통해 사랑과 인간의 맨 얼굴을 그려낸다. 연인의 변심, 재능 앞에서의 좌절, 욕망으로 인한 타락을 처절하게 담아내는 영화는 그 본질을 미화하거나 기만하는 법이 없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그저 자극적인 치정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뻔하고 과장된 드라마는 가장 거침없이 인간의 본질에 접근한다. <해어화>는 그런 보편적인 이야기다.

복사꽃같이 해사한 모습에서 욕망의 현신이 된 소율의 서늘하고 처연한 얼굴은 한효주의 새로운 발견이다. 그러나 입체적으로 표현된 소율에 비해 대칭점에 선 연희의 캐릭터는 극히 단선적이다. 친구의 연인과 꿈을 빼앗고도 고민 없이 천진하기만 한 그녀의 모습은, 오롯이 소율의 주관적인 시점에서 서사를 전개하기 위한 대상화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두 여주인공간의 빈약한 관계성은 이야기를 평면적으로 만드는 지점이다. 윤우라는 한 남성이 두 여주인공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 또한 그렇다. 왜 한국의 여성영화 속 남성은 늘 자아가 인정투쟁을 해야 할 외부세계 그 자체로 은유되는지는 고민해봐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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