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 워>를 향한 내 애정은 각별하다. 물론 원작 이야기다. 마블 유니버스의 코믹스 중에서도 손꼽아 좋아하는 이벤트다. 영웅과 악당 사이 옳고 그름의 대결이 아닌, 영웅과 영웅 사이 서로 다른 신념의 대결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시빌 워>는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나 앨런 무어의 <왓치맨>에 버금가는 문학성과 입체감을 보여주었다.
마블 유니버스를 영화화하는 프랜차이즈 사업에 있어서도 <시빌 워>는 매력적인 이벤트다. 일단 원작의 유명세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보다 먼저 빌런의 문제가 있다. 영화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관객은 새로운 슈퍼 빌런의 등장에 피로도를 느끼기 마련이다. 게다가 마블은 DC와 비교해 대중적인 빌런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렇다면 본래의 히어로팀이 양분되어 대립하는 구도가 좋은 선택지로 고려될 만하다. 매번 타노스 수준의 빌런이 등장하고 그에 맞는 규모의 전투 신을 만들어낼 바에야 <시빌 워>의 구도가 제작비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이유들을 근거로 <어벤져스> 1편이 개봉했을 때 공개적인 지면 몇 군데에 이 시리즈는 <시빌 워>까지 갈 거라고 썼다가 네티즌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마블에서도 <시빌 워>의 영상화에 부정적이었다. 절반은 희망 섞인 이야기였는데 아무튼 시간이 흘러 결국 <시빌 워>가 스크린에 당도했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이하 <시빌 워>)에 대한 감상은 관객이 드라마를 우선하는지 액션에 치중하는지에 따라 많이 달라질 것이다. 후자라면 이 영화에 불만을 가질 여지가 거의 없다. 특히 스파이더맨과 앤트맨이 등장한 이후 공항에서의 전투 시퀀스는 ‘디테일을 소음과 물량으로 발라 덮어버리는 게 아닌, 좋은 합을 가진 액션 시퀀스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미 관뚜껑 덮은 영화 이야기를 해서 좀 미안하지만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하 <배트맨 대 슈퍼맨>)의 액션과 비교하면 설명이 간단해진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액션은 크고 시끄럽고 거대하고 무너지는 것만 보일 뿐이지 대체 무슨 합이 어디서 어떻게 연결되어 이루어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액션을 떠올려보자. 동작의 연결만으로도 관객에게 서스펜스를 주고 결과적으로 손뼉을 치게 할 만큼 액션의 합 자체가 드라마의 기능을 한다. <시빌 워>의 액션도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거기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파이더맨과 앤트맨의 역할이 크다. 스파이더맨과 앤트맨이 없었으면 이 영화도 지금쯤 관뚜껑 모서리 붙잡고 뛰어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을 거다.
문제는 드라마다. 이 영화가 원작을 얼마나 충실하게 옮겼느냐의 문제는 애초부터 거론할 가치가 없다. 관객의 구할이 보지 않았을 원작을 재현하는 것보다는 한편의 영화로서 얼마나 잘 굴러가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이 영화가 가진 드라마의 구멍은 ‘원작과 다른 동기로 인해 팀이 분열된다’가 아니라 ‘팀이 분열되는 동기 자체가 원작과 달리 큰 설득력을 갖고 있지 않다’로부터 출발한다.
원작의 동기는 초인등록법안이었다. 히어로가 너무 많아지고 그로 인한 혼란이 증가하자 미국 내 활동하는 모든 개별 히어로들을 등록화해 국가가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복면을 쓰고 활동하는 익명성 히어로들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재난을 막겠다는 명목 아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캡틴 아메리카는 이에 반대했고 아이언맨은 찬성했다. 히어로들이 어느 한쪽의 편을 들면서 진영이 나뉜다. 시빌 워, 즉 내전이 벌어진 것이다. 이야기 초반에 아이언맨 진영에 참여한 스파이더맨이 기자회견장에서 복면을 벗고 초인등록법안에 찬성하는 대목은 원작 <시빌 워>를 대표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헌법에 기초한 자유의 가치를 보호하고 불특정 다수 히어로들의 권리를 대변하기 위해 나서는 캡틴의 모습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결말을 맞는다.
영화 <시빌 워>에서 팀이 분열되는 동기는 어벤져스팀을 유엔 산하 기관으로 두겠다는 발상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에 아이언맨은 찬성하고 캡틴아메리카는 반대한다. 어벤져스는 원래 쉴드 소속이었고 쉴드는 미국 정부 기관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삼 정부 조직의 기관이 되는 것에 필요 이상으로 거부감을 보이는 캡틴의 모습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작의 초인등록법안과 달리 여기서의 갈등이 과연 팀이 양분될 만큼 절박하고 강력한 신념의 문제인가를 따져볼 때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아직 마블 유니버스의 히어로들이 전부 영화로 옮겨진 것도 아니고 캐릭터들의 판권 문제도 있는 형편이니 이야기의 발단을 ‘초인등록법안’이 아닌 어벤져스팀만의 문제로 바꿔버린 결정에는 이해가 간다. 문제는 바꾼 동기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야기를 출발시키는 동기 자체가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그런 개연성의 큰 구멍을 윈터 솔져와 캡틴 사이의 유대관계로 채우다보니 전체적인 전개 역시 둔하고 산만해진다. 관객은 스파이더맨과 앤트맨이 등장하기까지 1시간10분여 동안 꽤나 지루할 것이다.
심지어 애초의 동기는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흐릿하게 지워지고, 대신에 매우 사적인 영역의 갈등으로 변모한다(가족의 역사에 대한 과몰입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는 갑부형 히어로의 공통분모인가).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럭저럭 재미는 있지만, 그런데 이게 왜 ‘시빌 워’지?”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두개의 서로 다른 믿음과 신념이 충돌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아이언맨이 캡틴에게 왜 너는 나보다 윈터 솔져를 더 좋아하니, 라고 엉겨붙은 게 전부인 것이다. 써놓고 보니 그것만으로도 재미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영화의 제목이 ‘내전’일 이유는 찾기 어렵다. ‘내전’보다는 ‘집착’ , ‘나도 네 친구’, ‘부모 이야기에 화를 낸 건 페이크’ , ‘나를 좀더 사랑해줘’, ‘나의 상실, 그리고 아우디 R8’ 같은 게 더 어울렸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