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세심한 연출로 긴장을 조율하는 솜씨 <45년 후>
2016-05-04
글 : 김보연 (객원기자)

결혼 45주년을 앞둔 케이트(샬롯 램플링)와 제프(톰 코트니) 부부는 작은 마을에서 평화로운 노년의 삶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제프 앞으로 한통의 편지가 도착하며 케이트는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을 몇 가지 알게 된다. 남편과 가깝게 지냈던 여인이 45년 전 사고로 사망했으며, 그녀의 시체가 얼마 전 뒤늦게 발견됐다는 것이다. 케이트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남편 제프는 의외로 큰 감정의 동요를 보인다. 때마침 결혼기념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고, 두 사람은 각자의 지난 시간을 다시 생각해본다.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톰 커트니)과 여우주연상(샬롯 램플링)을 함께 수상해 화제를 모은 <45년 후>는 절제된 연출과 세심한 연기를 통해 날카롭고 강렬한 정서적 파장을 남기는 드라마다. 먼저 가장 도드라지는 건 인물의 심리 묘사를 통해 이야기의 긴장을 조율하는 솜씨다. 이 영화에는 소위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 대신 감독은 평범한 일상 속 짧은 대화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미묘한 표정 등을 포착하며 두 주인공의 내면에 높은 감정의 파도가 치고 있음을 암시한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침대에서의 사소한 뒤척임도 그냥 넘길 수 없는 복선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일상의 작은 변화에 집중하는 세심한 연출을 통해 만들어진 복잡한 감정들은 마지막까지 계속 누적되며 날카로운 긴장을 빚는다.

이때 특히 주목할 것은 인물의 응축된 감정을 성급하게 터트리지 않고 끝까지 억누르는 연출이다. 감독은 두 사람의 요동치는 속마음을 가능한 한 드러내지 않고 숨기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은폐의 흔적은 더욱 도드라지고, 이 흔적이 <45년 후>의 중요한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겉으로 보이는 평범한 일상과 그 뒤에 숨기고 있는 두 사람의 진심이 큰 온도차를 만들기 때문이다. 즉 이 영화는 상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평화로운 장면 뒤에도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을 불어넣는 힘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오는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긴 여운을 남기는 데 성공한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