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소년과 소녀가 제 삶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 <초인>
2016-05-04
글 : 이주현

니체는 초인사상을 통해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라고 했다. 신은 죽었고, 인간은 신을 대신하는 모든 가치의 창조자로서 불완전성을 극복해 초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니체의 철학 용어를 차용해 제목을 지은 <초인>에서도 두 주인공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대목을 언급하며 이런 얘기를 나눈다. “삶을 사랑하고 창조하는 사람이면 다 초인이래. 그런데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그 고통을 견디고 극복하면 우리 삶은 변화가 일어나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게 된대.”

고등학교 체조선수 도현(김정현)은 싸움을 일으켰다가 벌로 40시간 동안 도서관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엄마(서영화)를 돌봐야 하는 도현은 병원에서 또래의 여자아이 수현(김고운)과 스치듯 만나고, 그 우연한 만남은 도서관에서 이어진다. 도서관에서 500권이 넘는 책을 빌려 읽은 수현과 그런 수현을 신기해하던 도현은 함께 책을 읽으며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어나간다.

영화에서 체조선생님은 도현의 친구이자 체조선수인 민식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너는 꿈이 있냐? 여기 체조부 애들 다 그래. 꿈 같은 거 없어. 나도 너희들한테 꿈, 희망 이런 거 줄 수 없다고. 그냥 하는 거야, 그냥. 생각하면 몸도 아프고 괴로우니까.” 아마도 도현은 수현을 만나기 전 그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 삶을 절대 사랑할 수 없다고 어른스럽고 비밀스럽게 말하는 수현을 만나면서 도현은 조금씩 제 삶의 주인이 되어간다. 읽히기 위해 책이 존재하는 것처럼, 수현과 도현은 서로의 삶을 한장씩 들춰 읽으며 생각을 공유하고 아픔을 어루만진다. 십대 소년 소녀의 화사한 로맨스영화처럼 시작되지만 사실 <초인>은 절절한 ‘극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병마를 지켜봐야 하는 소년과 죽음을 지켜본 소녀가 제 삶을 긍정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 도서관을 무대로, 책을 매개로 전개되는 이야기에는 종종 문학소녀의 과잉된 감성이 묻어난다. 그런 부담을 상쇄시키는 것은 장난기 가득한 동시에 듬직한 소년 도현을 인상적으로 소화한 신인배우 김정현의 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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