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혜의 숨은그림찾기]
[정지혜의 숨은그림찾기] 그 여자의 방 <셜리에 관한 모든 것> <프란시스 하> <스틸 플라워>
2016-05-06
글 : 정지혜 (객원기자)
당신이 숱하게 마주쳤을, 그러나 이름 한번 물어본 적 없을 그녀들의 공간
<셜리에 관한 모든 것>

00

시작은 윤대녕의 소설 <피에로들의 집>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명우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연극배우이자 극작가다. 명우는 극장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영화로 옮긴 <셜리에 관한 모든 것>(2013)을 보다가 ‘마마’라 불리는 노파와 우연히 만난다. 두 사람은 호퍼의 그림에 대해 몇 마디 주고받는다. 얼마 후 명우는 그녀의 집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입주한다. 그 집의 각 방에는 상처 입은 사람들이 은신해 있다. 그런데 어째서 호퍼였을까. 그의 그림 속 인물들, 특히 여성들은 무표정하게 각자의 방에서 창문 너머의 세계를 응시한다. 안팎을 나누는 창이라는 경계. 그 안쪽의 방은 안온하기보다는 창백하다. 여자들은 열린 창 너머로 멀찍이 시선을 던져보지만 그들의 몸은 그 방을 벗어나지 못한다. 여자들의 적요했던 또 다른 방들…. 폐가옥에서 홀로 밤을 나야 하는 거리의 소녀, 도시의 난민 <스틸 플라워>(2015)의 하담(정하담)이 생각났다. 열리지 않는 대문을 온몸으로 밀어붙여 비집고 들어가야만 했던 하담은 불빛 없는 낯선 방에서 누군가가 남기고 간 온기 잃은 부침개로 끼니를 해결한다. <프란시스 하>(2012)의 프란시스(그레타 거윅)도 친구의 집을 전전한다. 자기만의 방을 얻기까지 그녀는 얼마나 많은 타협을 해야 했던가.

에드워드 호퍼 <밤의 창문>(1928)

01

후락한 밤들의 연속이었던 2008년의 봄. 내게도 기억에 남는 방이 있다. 당시 나는 무기력을 넘어 무력한 상태였다. 학교 강의는 뻔하게만 들렸고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과 함께 나섰던 거리 집회는 무력감만 깊어지게 했다. 책을 읽는 것이 책을 읽지 않는 일만큼이나 불안했고 사람을 만나도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괴로웠다. 해가 지기 전 서둘러 자취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 내 좁고 어둑한 자취방은 학교에서 너무 멀었고 거기까지 가기에는 얼마간의 힘이 필요했다. 그럴 때면 나는 종종 밤도둑처럼 학생회관을 들락거렸다. 그곳에는 출입 가능한(하다고 생각한) 방이 하나 있었다. 여성주의와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연구서들로 빼곡히 채워진 공간. 그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토론하던 사람들의 동아리방이었다. 지금도 만나면 “재밌는 거 없냐”로 시작해 “그런 건 없다”로, 뫼비우스의 띠 같은 대화를 서너 시간씩 함께하는 친구가 그 방의 일원이었다. 친구 따라 그 방을 들락거리다보니 자연스레(?) 나 또한 방의 비밀번호를 알게 됐다. 건물 밖에서 방의 불빛이 꺼져 있는 걸 확인하거나 방문 앞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는 걸 확인하고는 냉큼 비밀번호를 눌렀다. 마치 금기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것처럼 두근댔고 나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기껏 한다는 게 어둑한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그곳의 책들을 들춰보거나 약간의 니코틴을 흡입하는 것뿐이었지만. 스릴을 즐기려는 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다. 동아리방 창 너머로 사람들의 웅성거림, 웃음소리가 밤의 공기를 뚫고 희미하게 들려올 때면 마치 이 방만 한 크기의 수영장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세상 고요했다. 내 들락거림은 곧 ‘발각’됐다. 하지만 별일은 없었다. 그 방의 관대한 여인들은 내게 별말 없이 그저 또 왔느냐는 투로 목 인사만 하곤 제 할 일을 계속해갔다. 침입자였던 나는 그 후 그 방의 느슨한 일원이 됐다.

<프란시스 하>

02

끝내 이름을 물어보지 못하고 헤어진 여자도 있었다. 몇해 전 크리스마스 이브, 파리 외곽의 한인 민박에서 만난 여자였다. 그녀는 그곳의 가사도우미로 손님들의 식사와 빨래를 도맡았다. 대학에 입학한 딸이 하나 있다고 했다. 남편 얘기는 거의 들을 수가 없었다. 손수 짠 듯한 붉은 스웨터에 초록빛 조끼를 껴입고 두툼한 덧신까지 신었다. 화장기 하나 없이 푸석푸석한 맨얼굴, 희끗거리는 머리칼은 그녀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했다. 개성 강한 말씨만이 그녀가 중국 지린성 어딘가에서 왔음을 알게 했다. 여행자들의 달뜬 여흥 때문일까, 저녁 반주로 마신 알코올 덕분일까. 아님 혼숙의 현장에서 은밀하게 주고받는 밀어(蜜語)들 때문일까. 민박집 식탁에 모여든 여행자들의 볼은 발그스름했다. 그녀만이 무채색의 낯빛이었다. 외따롭게 서서 입모양으로만 웃을 뿐 그녀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모두의 식사가 끝난 늦은 밤이 돼서야 그녀는 홀로 남은 음식들을 한데 모아 소리도 없이 오물거렸다.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누군가 알려준 것 같다. 그녀는 불법 체류자고 미허가 한인 민박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런 사정이라 했다. 어쩌면 그녀의 여행 가방이 가장 크고 무거울지도 몰랐다. 중국에 홀로 있는 딸아이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부치려면 그녀는 어떻게든 이 여행 가방을 이고 지고 가야 했다. 밤마다 그녀는 6인실의 손님방으로 들어가 구석 바닥에 1인용 매트리스를 펼쳤다. 스웨터와 조끼를 그대로 입은 채 좁은 매트 위에 몸을 뉘었다. 벽의 냉기를 이기려면 덧신을 벗을 수 없었다. 모두가 떠난 뒤에도 그곳에 남을 손님. 가방을 펼치기도 전에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 나는 그녀의 이름을 묻지 못했다.

<스틸 플라워>

03

종종 여성용 공중 화장실에는 누군가의 방이 있다. 화장실 맨 끝 칸, 여성 청소 노동자들의 거처다. 그들은 그 작은 공간에 자신들의 아지트를 만들어놨다. 불모지의 생명초처럼. 청소 도구를 가지런히 정리해둔 한편에 돗자리를 깐다. 겨울에는 간이용 전기난로를 켜고 여름에는 선풍기가 돌아가는 망중한이다. 그곳에 화분과 거울과 화장품들, 때론 식기가 가지런히 놓일 때도 있다. ‘공중’(公衆)의 공간에서 ‘공중’이라는 이유로 특정한 누군가의 이목을 끌지 않은 채 만들어진 작은 방이다. 그 사이 세면대의 거울 앞에서는 일군의 여성들이 화장을 고치며 단장을 한다. 하나의 공간에 서로 다른 볼일들과 욕망이 뒤섞인다. 불과 칸 하나 사이에 누군가의 ‘룸’이 있다. 그곳이 청소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유일하게 몸을 기댈 수 있는 ‘룸’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얼마나 편치 못한 일인가. ‘화장실의 사회학’이라는 게 있다면 그녀들의 이 살림살이에 대해 말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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