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부질없는 걱정에도 시달렸었다. 적어도 아오이 유우에 관해서는 나름의 투명한 틀을 정해놓고 행여 깨질세라, 다칠세라, 노심초사를 했던 것 같다. 처음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의 가슴 아픈 소녀로 다가왔던 여린 배우가, <하나와 앨리스>(2004)에 와서는 아버지와 떨어져 사는 사춘기 소녀 앨리스로 인식되어 마음이 짠했다. 앨리스가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헤어지며 “워 아이 니”(사랑해)와 “짜이 찌엔”(다시 만나)을 혼동하는 장면에서 울컥해 몇번을 돌려 보았고, 오디션장에서 비상하는 마지막 장면에 와서는, “소녀를 이렇게 엉큼하게 포착하다니. 이와이 슌지는 역시 참 ‘순정변태’군(웃음)” 하며 짐짓 우스개의 걱정을 보탰다.
이 배우의 커리어는 그렇게 얼떨결에 연예계에 막 입문한 신인 앨리스가 어떻게 성장해나갔을지에 대한 궁금증과 맞물려왔다. 어릴 때 슈퍼마켓에서 사먹던 네모 칸이 내 키만큼 붙어 있던 봉지처럼, 그녀의 매력은 절취선으로 한꺼번에 연결된 것 같은 모양새였다. 각각 떼어낼 수 있게 만들었지만 중간의 절취선을 뜯어내면 아오이 유우가 가진 모든 게 어그러질 것 같은 그런 불안감. 긴 머리를 자르면, 교복을 입지 않으면, 몸무게가 늘어나면, 나이가 더해지면, 주름이 늘면…. 만약 아오이 유우가 그러면 어떡하지. 아오이 유우라는 맑고 청량한 소녀가 사라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라고만 하기보다는 그녀가 그럴 경우엔 또 어떤 스텝을 밟아야 하지, 라는 걱정의 마음이 더 앞섰던 것 같다. 그사이 아오이 유우는 참 멋있게도 ‘제멋대로였다’. 긴 머리를 쇼트커트로 잘랐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와의 연애로 가십에도 오르내렸으며,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며 훌라 댄스를 추는 제법 귀엽고 과감한 시도(<훌라걸스>)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즈음 그녀와 화보를 진행한 기자는 “스타일리스트 말도 안 듣고 별로인 옷을 자꾸 고집해서 애를 먹었다”며 고충을 토로했는데 나는 그게 또 아오이 유우다운 지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아오이 유우의 ‘역사’는 어린 소녀라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얼마든지 제 의지대로 흘러갔고, 그녀를 따라붙었던 ‘이와이 슌지의 페르소나’라는 수식도 그 세월 속에 자연스럽게 떨어져나갔다. 더이상 성장한 아오이 유우가 어색해지지 않을 만큼 시간이 지난 불과 얼마 전에야 나는 이와이 슌지 감독을 만나 “당신 작품의 한 시기를 상징했던 아오이 유우의 성장”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을 건넬 수 있었는데, 그로부터 “내가 예전 영화로 다시 돌아갈 수 없듯이, 우리 관계 역시 그런 게 아닐까”라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살짝 섭섭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아오이 유우가 아니라 그녀를 향한 나의 ‘걱정’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아졌다는 사실을 온전히 확인한 기분이랄까. 이와이 슌지가 제작한 <아오이 유우의 편지>(2005)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진 소소한 작품이지만, 그런 점에서 소녀와 성인 사이에 자리한 그녀의 경계를 떠올리게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작품이다. 일본 오키나와의 작은 부속 섬 다케토미에 사는 소녀 후키(아오이 유우).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 우편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소녀, 사진작가의 꿈을 키우지만 할아버지의 만류로 뭍으로 나가지 못하는 소녀. 그럼에도 소녀의 재능을 발견하고 지지해주는 마을 사람들. 남국의 해변, 석양, 예쁜 자전거, 매뉴얼식 수동 카메라 같은 평소 아오이 유우의 화보집에 등장하는 각종 소품을 ‘장착한’ 후키는 그렇게 다케토미 섬이라는 울타리에서 자란다. 섬마을에 떠도는 전설처럼 여기에는 아프고 예쁜 판타지가 엮여 있다. 후키가 7살 때 병으로 죽어가던 엄마는 어린 딸이 걱정돼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도쿄 소인의 편지를 매년 그녀의 생일 때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데, 후키가 성인이 되는 20살 생일 전까지니 그 비밀을 간직한 세월만 무려 13년이다. 어쩌면 마을 전체가 20살 성인이 되기 직전의 소녀에 대한 근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은, 그래서 이곳은 참 끈끈한 마을이다.
배경이 된 다케토미 섬은 아름답지만, 그저 예쁜 섬마을에 머무르지 않는다. 섬 주민들은 후키의 할아버지가 주도한 이 계획을 누구도 발설하지 않고 기꺼이 동참하는데, 그 단단한 ‘보호정책’에는 태풍의 영향을 많이 받고, 식량이 부족한 탓에 대대로 결속력이 강해진 마을, 최고급 료칸 체인이 들어오는 걸 결사반대했던 섬마을 다케토미가 견지해온 폐쇄적인 협동정신이 반영되어 있었다. 섬 전체를 배경으로 하니 마을 사람들 모두가 영화 촬영에 협조해주지 않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매일 아침 6시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비질을 하는 전통 때문에, 고된 촬영 중간에도 스탭 모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의식’에 동참했다는 소소한 후문까지 모두 이곳 분위기를 설명해주는 것들이다.
아오이 유우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사진집 <단델라이온(민들레)>(ダンデライオン)을 보고 괜히 한번 루트를 검색해보던 관심의 일환으로, 어느 날 갑자기 나는 급기야 다케토미 섬을 방문했다. 마을 전체가 붉은 지붕과 낮은 돌담의 전통가옥으로 이뤄진 그곳엔, 자전거를 탄 영화 속 아오이 유우 같은 또래 아이들이 골목을 지나다닌다. 찾는 이들이 많다고 기념품점이나 음식점이 우후죽순 생겨나지 않게 한 것 역시 마을의 정책이고 분위기다. 영화에서 마을 사람들은 엄마의 죽음을 알고 슬픔에 빠진 후키를 위해 차례차례 작은 선물을 건네고, 해가 지는 저녁 툇마루에 앉은 후키는 자신을 보듬어주는 그 마음을 에너지원처럼 전달받는다. 그 해질녘을 골라 동네 한가운데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 마을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부감으로 내려 잡은 그 위로의 장면이 오버랩됐다. 후키를 위로하던 샤미센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어릴 때 연기를 시작한 배우라서 뜻하지 않게 그녀의 작품 하나하나에 자연인의 ‘성장’을 대입시켜왔지만, 기꺼이 놓아줄 때도 온다, 이렇게. 그 변화를, 성장을 지속적으로 지지하고 싶다.
ps. 아오이 유우뿐 아니라 한때 우리에게 ‘소녀였던’ 많은 배우들에게도 그만큼의 응원을 전한다.
*산호초 바다와 새하얀 모래. 아오이 유우가 성장의 문턱을 넘는 다케토미 섬은 오키나와 본섬의 부속 섬으로, 마을 전체가 돌담과 붉은 기와지붕의 집들로 이루어져 있다. 섬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곳. 물소 수레로 유명한 유부 섬, 맹그로브 숲이 무성한 이리오모테 섬 등 인접한 섬들도 유명하다. 근처 이시가키 섬에서 배로 15분. ‘아오이 유우를 찾아가는 대단한 여정’이라고 하기에는 요즘은 교통편이 발달해 섬으로의 접근이 쉽다. 영화 속 기념품점의 별모래와 산호는 이곳의 대표 관광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