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1049호부터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요구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지지 캠페인을 매주 게재하고 있습니다. 이주의 지지자는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입니다. 20년 가까이 한국 독립영화계를 일궈온 그는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 독립애니메이션의 프로듀서이기도 합니다. 한국 독립영화와 부산국제영화제가 어떻게 상생하며 성장해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가 글을 보내왔습니다.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제이고, 프로그램의 중심에 아시아 독립영화들이 있다. 그리고 핵심에는 한국 독립영화가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에는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스탭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지만, 그 중심에 독립영화가 있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부산국제영화제가 한국 독립영화를 키운 것이 아니라, 한국 독립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를 키웠다고 시건방을 떨고 다녔다. 누구도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암! 부산의 중심에는 한국 독립영화가 있지. 독립영화인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던 양익준과 박정범, 연상호 등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영화인들이 알고 관객이 아는, 심지어 해외에서 알아주는 스타가 되었고 그들은 한국영화의 건강성을 지키는 이름이 되었다. 영화제는 관객수로 영화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작품의 힘으로 스타가 된 것이다. 그렇게 부산국제영화제는 자리를 굳건히 잡아갔고, 영화인들과 함께 성장해왔다.
알다시피 영화제에 영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인들의 친교의 장 역할을 하는 여러 파티들이 있다. 지금은 대기업 영화사들이 경쟁적으로 파티를 열어 다음해 라인업을 발표하며 화제가 되고 있지만, 영화제 초기만 해도 내세울 만한 파티는 ‘와이드앵글’ 파티가 유일했다. 이곳에서 독립영화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어떤 작품이 좋은지 정보를 공유하고 남녀노소 구분 없이, 체면치레 없이 밤새워 춤을 추며 놀았다. 원로 영화인들이 젊은 영화인들을 만나기 위해 그곳을 찾았고, 해외 유명 게스트들이 공항에 도착하면 와이드앵글 파티는 며칠에 열리는지 묻기도 했고, 누군가는 어제 밤새워 춤을 춘 것을 즐겁게 자랑하기까지 했다.
심각한 마당에 파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와이드앵글 파티가 초기에는 영화제 예산으로 열린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파티에 쓸 예산은 없지만 독립영화인들이 함께 여흥을 즐길 수 있을 만한 자리를 고민하던 이용관 당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는 부산의 지인들에게 십시일반 돈을 모아 남포동의 작은 호프바에서 와이드앵글 파티를 열어주었다. 그렇게 와이드앵글 파티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젊음의 상징이 되었다. 돈의 액수 여부를 떠나 당시의 노력과 열정에 지금도 감사한다. 프로그래머의 그런 마음이 프로그램 못지않게 영화제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인들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에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먼저 부산국제영화제의 명예를 잃었고,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잃었다. 이것은 영화계의 슬로건 설정 미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최종목표로 추구하면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 20년간 헌신적으로 영화제를 이끌어오던 상징적인 인물이 불명예퇴임하도록 방치하고 검찰에 고발될 때까지 누구도 손쓰지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너무나 큰 자괴감이 든다. 부산시와 영화제쪽의 극적인 타협(?)으로 올해 영화제는 어떻게든 열릴 것이다. 그러나 아직 영화인들의 보이콧 철회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보이콧을 철회하고 영화제에 참가한다 하더라도 예전의 부산국제영화제가 아닐 것이다. 부산시는 일단 영화제를 치르고 끝난 이후에 다시 영화제를 흔들려는 음모를 중단하고, 작금의 사태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그리고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것은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작품들이 명예롭기 위해서라도 꼭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영화인들은 기억해야 한다. 지금의 부산국제영화제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언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