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는 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었다. 시신경에 문제가 있었고, 수술로도 어찌할 수 없었다. 예지는 듣지도 못한다. 천둥 번개가 심하게 치던 여름밤, 천둥소리에 깬 부모는 예지가 주위의 소란에 반응하지 않고 곤히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그녀의 청각에 문제가 있음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그때 예지 나이 3살이었다. 현재의 예지는 18살,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 김미영씨에게는 여전히 다 큰 아이일 뿐이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딸과의 소통은 여전히 요원하다. 어머니는 매일 예지의 일상을 일기장에 기록한다. “우리가 보기엔 아무 이유 없어 보이지만 뭔가 메시지가 들어 있을” 행동들을 관찰한다. 웃고, 춤추고, 매달리고, 자학하는 행동들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예지의 언어를 해석하려 한다. 예지는 햇살을 느끼고, 바람을 느끼고, 온 가족이 모인 집안의 따스한 공기도 느끼지만 감각을 의사로 전환하지는 못한다. 다큐멘터리 <달에 부는 바람>은 서로에게 닿을 듯 닿지 못하는 예지와 어머니의 세계를 조용히 비춘다.
이승준 감독의 전작 <달팽이의 별>(2012)은 시청각장애인 영찬씨와 척추장애를 가진 순호씨 부부의 이야기였다. 영찬씨와 순호씨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소통하고 사랑했다. 어둠과 적막의 삶에 희망이 드리울 수 있었던 건 부부가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팽이의 별>은 동화 같은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달에 부는 바람>의 모녀는 아직은 아름다운 동화를 써내려갈 수가 없다. 거실에서 열심히 화분 정리를 하고 있는 부모와 그 바로 곁에서 팔을 허우적대며 빙그르르 돌고 있는 예지의 모습이 한 화면에 담길 때, 관객은 불안하고 난처한 마음으로 예지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영화가 끝날 때쯤엔 “큰 희망이 아닌 위로를 얻는 것에 만족”하기로 한 예지 어머니의 마음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이승준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속마음을 듣는 대신 식물 키우는 일에 정성을 쏟는 모습을 통해 어머니의 ‘마음’을 읽으려 한다. 식물은 돌보는 만큼 건강하게 자라준다. 감독의 사려깊은 시선과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