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나폴리의 아름다움을 극찬했다. “나폴리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이야기하고, 그림을 그렸던가. 하지만 나폴리는 그 모든 것 이상이다. 나폴리의 풍경은 사람의 감각을 잃게 한다.” 그리고 괴테가 이 책에서 소개한 뒤 더욱 유명해진 말이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도시 나폴리’인 만큼, 도시의 풍경이 뛰어나다는 주장일 테다. 밀라노가 북부 이탈리아 문화의 중심이라면, 남부 이탈리아 문화의 중심은 나폴리다. 그런데 밀라노 같은 북부 산업도시를 본 뒤, 나폴리에 도착한다면, 아마 여행객들은 괴테의 말을 믿기 어려울 것 같다. 풍광 이전에 혼란과 가난에 먼저 압도되기 때문이다. 나폴리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며칠 동안의 여행으론 불가능할 것 같다. 누군가에겐 괴테와 같은 아름다운 기억을, 또 누군가에겐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억을 남길 수 있는 두 얼굴의 도시가 나폴리일 것이다.
웨스 앤더슨의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2004)은 허먼 멜빌의 장편소설 <모비 딕>에서 모티브를 따온 코미디다. 해양연구가 스티브 지소(빌 머레이)와 그 일행은 해저 탐험을 하며, 관련 영화를 만들고, 영화제작을 통해 다시 투자를 받아 연구를 지속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일행 중 한명이 괴물 상어에 먹히는 바람에, 스티브 지소가 ‘복수’를 계획하며 영화는 전환점을 맞는다. 이때부터 스티브 지소는 <죠스>(1975)를 쫓는 선장 혹은 경찰서장처럼 상어잡이에 열을 올린다. ‘만사가 귀찮은’ 캐릭터로 유명한 빌 머레이가 복수를 결심하며 상어잡이에 나서는 게 영 어색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때 생각지도 않았던 ‘아들’ (오언 윌슨)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웨스 앤더슨 특유의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이 빚는 흥미로운 코미디로 제 모습을 찾아간다.
영화 도입부에서 스티브 지소 일행이 출항을 앞두고, 그리스신화의 그림으로 장식된 옛 극장에서 영화 시사회를 진행하고, 인터뷰도 하고, 뒤이어 선상 파티도 여는 곳이 바로 나폴리와 그 바로 앞의 바다다. 오래된 도시 속의 따뜻한 느낌이 나는 노란색 집들, 무뚝뚝하고 약간 괴짜인 현지의 이탈리아 사람들, 그리고 조명으로 장식된 제법 아름다운 스티브 지소의 요트가 서로 어울려, 영화는 도입부에서부터 유럽의, 아니 지중해의 매력을 물씬 풍긴다. 게다가 지소 일행으로 나오는 브라질 가수 세우 조르지가 부르는 포르투갈어 버전의 데이비드 보위 노래들은 이런 이국 정서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음악 팬들에겐 포르투갈어로 불러진 보위의 노래들만으로도 이 영화는 매력적일 테다). 선원들도 미국인, 이탈리아인, 브라질인, 독일인, 스페인인, 인도인, 러시아인, 일본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스티브 지소의 해저생활>은 나폴리를 중심으로, ‘지중해의 낭만’을 자극한다. 지중해에서 만날 만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땅에는 거의 머물지 않고, 대부분 바다 위를 떠돈다. 그것 자체가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유혹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사회질서로부터 벗어난 바다 위의 작은 배, 배 위로 불어오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분위기, 그리고 그 배에 늘 떠도는 세우 조르지의 기타와 이국적인 노래는 아마 대부분의 관객에게 지중해로의 환상여행을 유혹할 것 같다.
스티브 지소의 요트 뒤로 보이는 나폴리 해변은 아스라한 조명을 받아, 대단히 환상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나폴리의 해변은 괴테 같은 문인들에 의해, 또 많은 영화들에 의해 여러 번 강조됐다. ‘파노라마’라는 말, 곧 카메라로 패닝하며 바라볼 만큼 거대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나폴리의 해변을 묘사하는 데 제격인 용어일 테다. 반원형의 바닷가 모습은 해안에 중세의 성들을, 해변도로 뒤로 도시와 언덕을, 그리고 저 멀리 베수비오 화산을 끼고 있어, 괴테의 상찬이 과장이 아님을 확인케 한다. 이렇듯 나폴리의 절경은 대개 바닷가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로셀리니의 시선, ‘죽음의 존엄’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기행>(1954)은 나폴리의 특징인 해변 풍경을 시퀀스 전환용처럼 이용하고 있다.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끝나고, 다음 사건이 새로 시작될 때, 나폴리의 바닷가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식이다. 이를테면 주인공들이 나폴리에 도착해 맞은 첫 아침, 열린 호텔 창문을 통해 나폴리 어부들의 외침이 들리는데, 카메라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며 천천히 저 멀리 바다로부터 시작하여 호텔 건너편의 베수비오 화산,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바닷가와 해안도로 옆의 건물들을 보여주는 식이다. 보통 ‘나폴리의 파노라마’라고 불리는 이런 장면들을 로셀리니는 반복해서 이용하며, 바다의 도시 나폴리의 특성을 반추시키는 것이다.
로셀리니가 나폴리에서 강조하는 것은 종교적 비합리성의 문화다. 영화는 영국인 부부인 알렉스 조이스(조지 샌더스)와 캐서린 조이스(잉그리드 버그먼)의 시점에서 그려지는데, 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캐릭터인 남편의 눈에 나폴리는 이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겨운 곳이기도 하다. 도로 위의 차들은 제멋대로 다니고, 게다가 아직도 소떼가 차도를 막아선다. 곳곳에 성상들이 넘치고, 그런 성상들 앞에서 성호를 긋는 나폴리 사람들의 독실한 가톨릭 신앙도 그에겐 미신인지 종교인지 헷갈린다. 게다가 무슨 낮잠(시에스타)을 그리 오래 잘까? 합리성의 입장에서 보면, 나폴리에는 쓸데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알렉스는 나폴리에 와서도 영국에 있을 때와 비슷하게, 바에 가서 술을 마시거나 클럽에서 즐기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건 영국에서도 가능한 소일거리일 테다. 다. 영화는 영국인 부부인 알렉스 조이스(조지 샌더스)와 캐서린 조이스(잉그리드 버그먼)의 시점에서 그려지는데, 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캐릭터인 남편의 눈에 나폴리는 이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겨운 곳이기도 하다. 도로 위의 차들은 제멋대로 다니고, 게다가 아직도 소떼가 차도를 막아선다. 곳곳에 성상들이 넘치고, 그런 성상들 앞에서 성호를 긋는 나폴리 사람들의 독실한 가톨릭 신앙도 그에겐 미신인지 종교인지 헷갈린다. 게다가 무슨 낮잠(시에스타)을 그리 오래 잘까? 합리성의 입장에서 보면, 나폴리에는 쓸데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알렉스는 나폴리에 와서도 영국에 있을 때와 비슷하게, 바에 가서 술을 마시거나 클럽에서 즐기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건 영국에서도 가능한 소일거리일 테다.
반면에 캐서린은 나폴리에 점점 매력을 느낀다. 거리를 뛰어다니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젊은 엄마들, 임신부들, 짐을 잔뜩 싣고 다니는 조그만 체구의 노새들까지, 캐서린의 눈에 나폴리는 활기를 가진 매력적인 도시로 다가온다. 그런가 하면 나폴리에는 동시에 ‘죽음의 존엄’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기도 하다. 남편은 카프리로 혼자 놀러가고, 캐서린은 그래서 작정하고 나폴리 여행을 즐긴다. 그런데 그 여행을 통해 죽음과 강한 친화력을 가진 나폴리의 독특한 문화에 점점 매혹돼가는 것이다.
캐서린은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Museo archeologiconazionale di Napoli)에서, 로마인들에 의해 복제된 거대하고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그리스 조각들을 보며 죽음이 수천년을 넘어 바로 자기 앞에 현현하는 느낌을 받는다. 신화시대의 유적지인 ‘시빌라 쿠마나’(Sibilla Cumana, 종종 ‘쿠마이의 시벨레’라고 불리는 곳) 동굴은 로마시대 기독교인들의 공동묘지로도 쓰였는데, 그래서인 죽음의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공기가 차갑다. 또 약 4만개의 해골들을 보존하고 있는 ‘폰타넬레 묘지’(Cimiterodelle Fontanelle)에는 살아 있다는 게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죽음이 압도하고 있다. 여기는 흑사병이나 전쟁 등으로 희생된 무명의 죽음을 진혼하는 곳인데, 별다른 장식 없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해골들 앞에서, 필멸의 운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그냥 입을 다물 뿐이다.
‘죽음의 승리’를 목도하는 결정적인 순간은 영화의 결말부에 전개되는 ‘폼페이 시퀀스’일 것이다. 화산이 폭발할 때, 화산재에 묻혀 죽었던 사람들의 몸은 오랜 시간을 통해 부패해 사라졌고, 속이 비어 있는 그 장소를 찾아 석고를 부어넣으면 죽음 당시의 사람 모습이 조각처럼 재현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알렉스와 캐서린은 이혼을 작정했고, 두 사람의 사이가 아주 악화됐을 때,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뜨거운 화산재에 묻혀 죽는 그 순간에도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남녀의 (석고)몸을 보자, 캐서린은 눈물이 복받쳐 오르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로셀리니의 표현에 따르면, 대개의 외부인은 나폴리를 알렉스처럼 볼 것 같다. 혼란스럽고 가난하고 미신이 지배하고 미개하기까지 한 곳이다. <이탈리아 기행>은 그런 알렉스의 시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캐서린의 시선으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고대와 현재, 종교와 일상, 무엇보다도 죽음과 삶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공존하는 곳으로 말이다.
부활한 소돔과 고모라
하지만 최근에 발표된 나폴리 배경의 영화들은 대개 ‘마피아’ 관련 작품들이다. 외신에 소개된 나폴리 관련 기사도 주로 폭력에 관련된 것이거나, 아니면 시정이 마비돼 도로 위에 쓰레기가 널려 있는 불쾌한 뉴스가 태반이다. 나폴리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자신의 영화세계를 구축한 대표적인 감독이 지난해 타계한 프란체스코 로지다. 그는 데뷔작 <도전>(1958)에서부터 나폴리 마피아인 ‘카모라’(Camorra)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마피아’라는 용어는 조직범죄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지역에 따라 고유의 이름이 있다. 나폴리 마피아는 카모라이고, 이들은 경제적 이권 개입에 잔인하기로 유명하다(<대부> 시리즈로 유명한 시칠리아의 마피아는 ‘코자 노스트라’이며, 이들은 종종 정치권과 충돌을 빚어 악명을 날렸다).
나폴리 출신인 프란체스코 로지는 마피아들 사이의 권력다툼을 다룬 데뷔작으로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으며, 단숨에 이탈리아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마피아 묘사는 자칫 감독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로 아슬아슬했는데, 로지는 계속하여 관련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입지를 굳힌다. 특히 마피아와 정치권력을 이용한 건설업자의 부패를 다룬 <도시 위의 손>(1963)은 로지를 1960년대 이탈리아 리얼리즘의 대표작가로 각인시킨다. 가난한 도시 나폴리, 그리고 하층민들의 집에 대한 열망을 악용하여 돈을 버는 건설업자(로드 스타이거)의 모습은 너무도 생생하여 지금 봐도 섬뜩할 정도다. 돈만 노린 부실시공으로, 아파트가 갑자기 내려앉는 장면은 지금도 세상의 많은 개발지역에서 반복 되는 참상일 테다.
프란체스코 로지의 ‘나폴리 리얼리즘’을 계승한 감독이 마테오 가로네다. 첫 출세작 <박제사>(2002)의 주요 배경이 나폴리다. 카모라의 통제를 받는 박제사가 주인공인데, 마피아들은 그의 솜씨를 이용하여, 박제된 동물의 몸속에 마약을 숨겨 유통시킨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나폴리의 을씨년스런 건물들, 칠이 벗겨진 집들, 지역 전체가 버려진 것처럼 황량한 마을들의 모습이 나폴리의 현실을 한눈에 보여준다. 게다가 아무 데서나 너무 쉽게 보이는 총들은 나폴리에 안전이란 게 있을지 의문이 들게 한다. 가난과 범죄의 인상이 나폴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가로네가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아 일약 유명 감독으로 주목받게 된 작품은 <고모라>(2008)인데, 이 작품은 카모라의 악행을 기록한 로베르토 사비아노의 동명 르포를 각색한 것이다. 영화 제목 ‘고모라’(Gomorra)는 구약에 등장하는 부패 도시 고모라를 연상시키지만, 발음에서 알 수 있듯 나폴리의 마피아인 카모라도 지목하고 있다. 가로네는 카모라가 통제하고 있는 나폴리의 악명 높은 지역인 ‘스캄피아’(Scampia)에서 주로 촬영했 다. 나폴리 북쪽에 있는 스캄피아는 가난과 마약 밀매로 유명한 곳이다. 동네는 지독하게 가난하고, 주민들은 대개 마피아이거나 이와 관련된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스캄피아는 작은 나폴리, 혹은 부활한 소돔과 고모라다. 세상과 담쌓고 자기들끼리만 사는 것 같은 스캄피아는 가로네 특유의 ‘폐쇄공포증 테마’를 자극하기도 한다. 실제로 주민들은 지옥 같은 이곳에 갇혀 점점 미쳐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로네에 따르면 나폴리는 고모라다.
가난은 나폴리의 천형처럼 보인다. 그런데 발터 베냐민은 나폴리의 가난에서 지역 특유의 미덕을 읽는다. 베냐민은 1924년 나폴리 바로 앞에 있는 섬 카프리에서 라트비아 출신 볼셰비키 연극인인 아샤 라치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나폴리에서도 그 인연을 이어갔다. 베냐민에게 나폴리는 ‘사랑의 성지’다. 두 사람은 나폴리에 머물며 이 도시의 특성을 읽는 글을 (함께) 썼다. <성찰들>(Reflections)에 들어 있는 ‘나폴리’가 그 글인데, 베냐민은 나폴리의 특성을 ‘다공성’(porosity)이라고 해석했다. 구멍이 숭숭 나 있는 돌처럼, 공간 사이에 경계가 없고 서로 침투가능한 물질 같다는 것이다. 집 안에 있어야 할 가구가 거리에 나와 있고, 집 안에 있어도 바깥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상호 침투성을 상상하면 되겠다. 이런 조건 때문에 나폴리에는 ‘사적영역’이란 게 대단히 축소돼 있다고 봤다. 북유럽 문화에선 당연하게 지켜져야 할 ‘개인적인 삶’이 여기선 ‘공공의 삶’과 뒤섞인다는 것이다. 이런 다공성은 다른 추상적인 영역에까지 확장된다. 밤과 낮, 가족과 사회, 평화와 갈등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여기서 나폴리(인)의 미덕인 경계를 넘어선 무한한 상상력이 자란다고 봤다. 그 상상력이 예술의 도시 나폴리의 중요한 원천이라는 것이다.
가난을 오히려 유머의 대상으로 삼아, 웃음을 잃지 않는 나폴리 문화의 특성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는 비토리오 데시카의 <나폴리의 황금>(1954)이 대표적이다.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는데, 각 에피소드에 들어 있는 나폴리적인 특성이 바로 ‘나폴리의 황금’ , 곧 가장 소중한 가치란 것이다. 여기서 훗날 ‘이탈리아 최고의 배우’로 성장하는 나폴리 출신의 소피아 로렌이 피자집 안주인으로 나와 스타 탄생을 알리기도 했다(당시 20살). 그녀는 가난한 동네의 피자집 안주인인데, 남편 몰래 연인과 바람을 피우는 당돌한 여자다. 어느 날 너무 급하게 사랑을 나누다, 연인 집에서 반지를 잃어버렸고, 남편이 알기 전에 이 반지를 되찾으려고 동분서주하는 코미디다. 사랑에 적극적인 나폴리 사람들, 아름다운 여성 앞에선 찬사를 멈추지 않는 남자들, 남의 집 일에 발벗고 나서는 이웃들(곧 다공성의 성격), 미래에 대한 맹목적일 정도의 낙관주의 등이 이 에피소드의 소재들이다. 다른 에피소드에는 마피아의 횡포, 길거리의 가난한 아이들, 한푼도 없으면서 귀족이라고 오만을 떠는 허풍쟁이, 너무 많은 매춘부들, 심술궂은 부자들이 등장하는데, 데시카에 따르면 의미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모든 것은 ‘나폴리의 황금’이라는 것이다.
마라도나교(敎)의 성지 나폴리
가난과 관련한 나폴리 최고의 대중 스타를 꼽자면 디에고 마라도나 같다. 에미르 쿠스투리차는 2005년부터 약 3년간 그를 따라다니며 다큐멘터리 <축구의 신: 마라도나>(2008)를 만든다. 여기에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 ‘축구의 신’이 되는 마라도나의 반골 기질이 잘 드러나 있다. 마라도나가 가장 오래 선수 생활을 했던 팀이 나폴리다. 보통의 축구 스타들은 그 리그의 가장 부자 팀에서 뛴다. 이탈리아에선 단연 유벤투스, 밀란, 인테르 같은 북부의 팀들이다. 그런데 그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2년 뛴 뒤, 7년간 나폴리에서 전성기를 다 보냈다(24살부터 31살). 축구를 좋아했지만, 부자들을 위해 뛰기 싫어했던 ‘반골’ 마라도나가 선택한 차선책이었다. 나폴리 사람들은 마라도나를 마치 신처럼 대했다. 100년이 넘는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서 로마 아래의 남쪽 팀은 딱 세번 우승했는데, 두번이 마라도나가 뛸 때의 나폴리였고, 다른 한번은 전설 루이지 리바가 뛸 때의 칼리아리(1970년)이다. 마라도나는 가난한 도시 나폴리에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겼고, 마지막 우승컵도 그가 선물한 것이다.
그도 부자 클럽에서 뛰며, 더 많은 재산을 모으고, 또 그런 클럽들이 통제하고 있는 여러 좋은 자리들을 보장받고 싶지 않았을까. 마라도나가 씩 웃으며 말한다. “예수도 흔들렸는데 나라고 흔들리지 않았겠어?” 하지만 천성이 그를 나폴리에 머물게 했다. 스포츠 가운데 축구는 대표적인 친서민 종목이다. ‘가난’과 깊게 연결돼 있다. 아마 나폴리 사람들에겐 마라도나가 권세 있는 사람들이나 부자들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해 핍박받고 가난한 남부 사람들을 위해 뛰는 영웅처럼 비쳤을 것 같다. 그러기에 그에 대한 애정이 종교적일 정도로 광적이다. 나폴리로서는 도시의 성격에 맞는 축구 영웅을 가진 셈이다.
나폴리 바로 앞엔 조그만 섬이 세개 있다. 카프리, 이스키아, 프로치다라고 불리는 곳이다. 카프리뿐 아니라 다른 두 섬도 절경을 자랑한다. 다음엔 나폴리 앞의 세 섬을 찾아가겠다. <일 포스티노>(1994) 같은 영화가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