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수록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싶다.” 스무살의 손예진이 말했다(<씨네21> 313호). 복사꽃처럼 고왔던 스무살의 손예진은 <취화선>(2002)에서 화가 장승업(최민식)의 첫사랑 소운을 연기하며 스크린에 데뷔했다. 상사병으로 앓다 일찍 세상을 뜨고 마는 소운은 장승업의 기억에, 관객의 기억에 잊지 못할 여인으로 오래 남았다. 이후로도 손예진은 종종 누군가의 첫사랑이 되고는 했다. <연애소설>(2002), <클래식>(2003),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드라마 <여름향기>(2004) 등 갑자기 사랑에 빠진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청초함, 반달처럼 접히는 사랑스러운 눈웃음과 의외의 활기, 그리고 갑자기 사라져버리기라도 할 듯 꿈같은 불안이 손예진의 이미지를 완성하던 시절이었다. 영화 <외출>(2005)과 드라마 <연애시대>(2006)는 손예진을 현실의 여자로 만들었다. 그의 연기에서 순진한 낙관이 사라지고 사랑의 고통과 번뇌, 삶의 고난이 드러나기 시작한 때였다. 현실에 발 딛은 손예진은 자신이 가볼 수 있는 데까지 욕심껏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다 만난 영화 <비밀은 없다>에서 손예진은 그 역에 손예진이 아닌 다른 배우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여자를 연기한다. 연홍은 끈질기고 사랑스럽다. 묵묵하고 꾸준하게 자신만의 허들을 넘어왔던 손예진이, 앞으로 그 자신이 다시 어떻게 넘어서게 될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굉장한 캐릭터를 연성한 것이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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