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작품에 한국인 애니메이터가 참여한 건 이제 화제랄 것도 없다. 꽤 오래전부터 한국 애니메이터들은 북미 스튜디오의 핵심 인력으로 활약해왔고 눈에 띄는 성취를 거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에릭 오의 행보는 조금 특별해 보인다. 그는 2010년 픽사 입사 이후로도 개인 작업을 멈추지 않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작품들을 꾸준히 공개하며 필모그래피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픽사의 애니메이터인 동시에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에릭 오는 신작 <도리를 찾아서>에서 문어 행크의 움직임을 통해 그간의 성과를 증명했다. 한국을 찾은 그에게 대형 프로젝트와 개인적인 작업 사이 균형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
-주요 캐릭터 중 하나인 문어 행크의 애니메이터를 맡았다.
=2년 반 정도 작업했다. 초반에 성격을 잡는 것부터 움직임 연출까지 행크 캐릭터의 전체적인 틀을 잡았다. 개별 캐릭터를 각 애니메이터가 온전히 담당하는 건 픽사에서도 드문 경우인데, <도리를 찾아서>는 캐릭터들의 개성이 워낙 도드라져서 깊이와 완성도를 더하고자 이런 방식을 취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맡은 문어 행크는 연체동물이라서 굉장히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캐릭터였다. 예술적인 표현과 기술적인 정밀함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공을 들였다.
-문어를 표현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본인이 직접 캐릭터를 고른 건가.
=쌍방 모두의 선택이다. 내가 선택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선택당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웃음) 개인적으로 병행하고 있는 단편 작품들, <사과 먹는 법>(2011), <군터>(2014) 등에서 추구했던 것이 바로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이었다. 내게 있어 애니메이션은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생각’인 것 같다. 애니메이터란 손으로 캐릭터를 그리는 일종의 연기자다. 각자 좋아하는 연기, 잘하는 연기가 있다. 단편 작업을 통해 문어처럼 독특하고 기술적으로 구현이 쉽지 않은 움직임을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심어준 것 같다.
-그간 인터뷰에서 작가로 불리길 바란다는 희망을 밝히기도 했다. 대형 스튜디오의 일부로서의 작업과 개인 작업 사이의 간극은 어떻게 해결하나.
=픽사 내에서도 개인 작업을 따로 하는 애니메이터가 그리 많지는 않다. 워낙 일이 많으니까. 하지만 누군가가 그런 의사를 밝혔을 때 개인적인 작업을 단지 시간을 뺏는 과외활동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 픽사의 특별한 면이다. 애니메이터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일이고, 이번처럼 애니메이터로서의 나의 장기와 관심사가 픽사의 프로젝트에 반영될 수도 있다.
-그 밖에 문어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시도한 것들이 있다면.
=일단 수족관에 자주 갔다. 실제로 여러 번 만져보면서 물속과 밖의 서로 다른 질감을 익혔다. 당연한 말이지만 ‘움직임 연출’이란 단순히 기술적인 표현력 이전에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행크는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바다에 가고 싶지 않아 하는 문어다. 퉁명스러운 겉모습 이면에 마음이 여린 면이 있는 캐릭터라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다.
-<니모를 찾아서>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들었다. 그야말로 성공한 팬의 모범사례인데, <도리를 찾아서>가 니모와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일단 <도리를 찾아서>를 작업할 수 있다는 게 기쁘고 신기했다. <니모를 찾아서>는 아빠와 아들의 관계를 그린, 보편타당한 감성을 다룬다. 반면 도리는 조금 특별하다. <니모를 찾아서>에서는 건망증 심한 개그 캐릭터처럼 나왔지만 이번에는 그 캐릭터를 훨씬 깊게 파고들어간다. 도리는 어떻게 보면 장애가 있는 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애틋하고 감성적이며 울컥하는 지점이 있다. 미국에서는 확실히 공감을 불러일으키리라 보는데, 국내 정서에는 어떻게 소화될지 나도 기대가 된다.